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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효경 Oct 29. 2017

#12. <거꾸로 쓰는 육아일기>

핼러윈의 유령

하얀 유령들이 앞집 나뭇가지에 걸렸다. 곧 핼러윈이다. 10월의 마지막 날 저녁을 위해 미국의 아이들은 1년을 기다린다. 1년간 즐길 수 있는 캔디를 공짜로 수확하는 날이기도 하고 맘껏 자신의 핼러윈 의상을 뽐낼 기회이기도 하다. 아이들과 함께 어른들은 나눠줄 사탕을 미리미리 준비하고 집 바깥을 예쁘게(?) 장식하며 동심의 세계를 맞이한다.

 

아이들의 핼러윈 의상은 마녀나 드라큘라, 좀비에 그치지 않는다. 영화 속 각종 히로어들과 프린세스들이 총출동하는 날이기도 하다. 동물원과 수족관의 동물들도 모두 거리로 돌진이다. 위니 더 푸, 캣 인더 햇, 시리얼 박스 속의 티거, 범블비, 판다, 라이언 킹, 니모와 도리 등등 육해공의 모든 동물이 거리를 활보한다. 미디어에 알려진 캐릭터가 아닌 일상에서 자신이 꿈꾸는 직업군을 캐릭터로 선정하는 경우도 많다. 하얀 가운의 의사나 간호사, 병정 모를 쓴 군인, 운동선수, 소방관, 경찰관, 선생님, 음악가 등등 아이들이 선택한 핼러윈 의상은 저마다 꿈과 환상의 의상이 된다. 그것이 하루 저녁의 기분 좋은 판타지로 끝날 망정.    

 

핼러윈은 아이들의 잔치만은 아니다. 성인들도 아이들처럼 핼러윈 의상을 입고 파티를 하는 경우가 많다. 예전에 알 고어 부통령이 가족들과 함께 핼러윈 파티를 하는 사진을 본 적이 있었는데, 알 고어는 핼러윈 의상과 분장을 한 채로 소파에 앉아 집무 관련 서류를 열심히 보고 있고 그 주위로 아이들이 뛰어다니는 모습이었다. 세상 바쁜 부통령도 핼러윈을 즐기는 전형적인 미국 패밀리 모습이 아니었나 싶다. (사진을 아무리 찾으려해도 못 찾아 케네디 대통령 사진으로 대신)


 

핼러윈을 생각하니 유령의 집에 들어선 듯 가슴이 서늘해진다. 무시무시한 캐릭터와 의상 때문이 아니다. 두 아이를 미국에서 18년간 키우면서 한 번도 아이들과 함께 핼러윈 명절을 즐겨본 적이 없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나를 경악시킨다. 미국에 살고 있었지만 섬처럼 떠돈 삶을 산 것은 아니었는지, 일부러 나와 내 가족을 고립시키며 산 것 같아, 뭔가 잘 못 살았다는 공포심에 눈물이 날 것만 같다.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 보지 않고 살았는데, 갑자기 인제야 이런 생각이 드는 것도 똑같이 무섭긴 마찬가지다.

 

지난 수 년간 핼러윈 저녁이 되면 나는 아이들을 차에 태우고 일찌감치 교회로 향했다. 내가 다니는 한국교회에서는 핼러윈 명절에 절대적 반기를 들었고, 대신 아이들을 교회로 불러 패밀리 나이트라는 행사를 준비했다. 교회가 표방한 행사의 목적은 이렇다. 아무리 미국 땅에 이민 와 살고 있지만, 세속화된 미국의 나쁜 문화를 따르지 말고 아이들을 악한 영이 지배하는 문화에 물들지 않게 교회로 인도해야 한다. 이런 취지를 갖고 부모들에게 아이들을 핼러윈에 교회로 데려올 것을 당부했다. 물론 아이들에게 세상이 줄 수 없는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의 달콤한 캔디를 아이들에게 보장하면서.

 

동네 아이들처럼 사탕을 집집이 얻으러 다니고 싶은 아이들을 데리고 나는 교회로 갔다. 교회 목사님 말씀처럼 미국의 핼러윈 문화가 악의 영에 물든 문화라고 믿었는지는 모르겠다. 고작 좀 무서운 의상을 걸쳐 입고 (대부분은 그렇지도 않지만) trick or treat? 을 외치는 귀엽다 못해 인정이 넘치는 미국의 문화를 결코 악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아이들을 데리고 집집을 방문하는 일이 귀찮아 한국 교회로 가는 편리함을 택했던 것 같다. 집으로 찾아오는 아이들에게 직접 사탕을 나눠주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도 있고, 아는 한국 엄마들과 아이들을 데리고 교회에 모여 수다를 떨고 편하게 저녁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한국 교회에서 핼러윈 나이트를 보낸 것이다. 물론 아이들은 사탕을 zip-lock 백으로 하나 가득 받아왔기 때문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까지 불평을 늘어놓지는 않았다. 교회에서 나름 재밌게 핼러윈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성경도 공부하고 언니 오빠들이 준비한 게임을 하며 재밌는 시간을 보내기도 했으니까.

 

그런데 해가 갈수록, 이제 아이들이 핼러윈을 찾지도 않는 나이가 되었는데 핼러윈에 대한 아쉬움이 망령에 시달리는 것처럼 나를 괴롭게 한다. 핼러윈에 한 번도 출석하지 않은 것이 마치 이민자로서 수십 년간 산 내 삶의 성적표에 빨갛게 그어진 낙제 점수 같다는 두려움과 창피함나를 괴롭힌다. 핼러윈처럼 가볍고 미국인 남녀노소 모두가 함께하는 문화도 드문데, 왜 굳이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나쁜 것이자 제거해야 할 것으로 여기면서 아이들에게 전수하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불신의 세상에 핼러윈만큼 이웃과 이웃이 하나가 되는 날도 없지 않고, 아이들의 유년에 사탕처럼 달콤한 추억들을 남길 수 있는 즐거운 명절인데 말이다.

 

교회에서 전달한 일방적인 메시지 탓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나 스스로 무엇이 좋고 나쁨을 판단할 수 있을 정도로 생각이 성숙하지 못했던 이유가 가장 크다. 게으름에 생각조차 하기를 꺼렸으니까. 미국 문화에 익숙하지 않았던 내가 나 편하자고 교회를 빙자해 아이들에게 문화적 격리를 만드는 줄 모르면서 말이다.

 

, 그렇다고 핼러윈을 경험하지 않았다고 해서 미국에 사는데 지장이 있거나 문제가 있는 건 절대 아니다. 설령 미국 문화 융합 점수에서 빵점을 받았다 해도 이곳에 사는 데 결격사유가 될 건 없다. 그까짓 핼러윈쯤 참여하고 말고는 개인의 자유이지 비난받을 일이 절대 아니니까.


하지만, 이 사소한 일 하나에서 나 자신이 얼마나 소극적인 이민자로 살아왔으며, 문화적으로 미국에 동화되지 않고 살고 있었는지 말하지 않아도 리트머스 실험 종이처럼 적나라하게 드러내 준다. 나의 수줍어하는 타고난 성격에, 미국이라는 땅에 와서 사는 소심함과 주눅이 더해져, 타인에 대한 무관심으로 발전해, 결국에는 비사교적 태도를 점점 굳혀가고 있는 그 모습 그대로.   

 

특히 미국 사람들이라면 동네 이웃이든, 학교 동료든, 아이들의 친구 부모들이든, 스스로 선을 긋고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지 못했던 나 자신의 마음가짐이나 태도가 그렇다. 좀 더 적극적으로 타인과의 관계를 만들어 갈 수도 있었는데, 이런 소셜의 기회에서는 늘 자신을 뒤로 빼고 숨어 버리기로 일관했다. 이웃들과의 블록 파티에 나가지 않는 것에서부터, 옆집에 누가 이사를 와도 일부러 찾아가 인사하기는커녕 집 앞에서 마주쳐도 얼른 안으로 들어가기 일쑤였고, 앞집의 사람들과도 말 한마디 다정하게 건네지 못했다. 직장에서도 다르지 않다. 가까운 동료가 아니면 최소한의 담소만을 나누고, 최소한의 노력으로 동료들을 사귀는데 에너지를 썼다. 절대로 더 가깝게 친해지려고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색깔이 다르고 언어가 다르며 문화가 다른 우리는 절대 물과 기름처럼 가까워질 수 없다는 생각에 의존하면서. 물론 아이들 학교 친구 엄마들을 만나면서도 늘 같은 태도와 거리를 유지했는데, 그것에 익숙해지자 다른 방법은 생각하지 못했고, 하고자 노력하지도 않았으며, 어느새 그게 내 몸의 일부인 양 살았다.  

 

언어라는 장벽 때문에, 서로의 문화가 다르다는 생각 때문에, 저들과 말을 섞다가 대화가 잘 이어지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때문에, 그냥 창피하고 쑥스럽다는 생각에 가까이 가려고 하지 않았다. 원래 성격이 소심한 것도 있고 사교적이지 못한 것도 있지만, 사실 별 필요성을 느끼지도 못했다. 내 가정이 있고 한국 사람들과 교제하는 한국 교회가 있어서 더 그렇게 느꼈는지 모르겠다. 이민의 삶이 항시 외국인들과 지내야 하는지라 기회만 되면 더 한국적이 되고 더 내 안으로만 파고들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자신을 점점 더 작은 울타리에 가두게 되는 줄 모른 채, 나 편하고자 아이들까지도 엄마의 그늘에 가두는 격이 되고 만 것이 아닐까 싶다. 아이들은 부모의 소셜 능력을 그대로 닮아 가기 마련이라는데…

 

인제 와서 후회하기엔 너무 늦었는데, 왜 이런 생각이 나를 괴롭힐까 나 자신도 조금 의아하다. 유독 올해 이런 생각이 드는 건, 아이들이 없는 핼러윈을 곧 맞이해서도 이지만, 이미 다 키워버린 자식들에 대한 나의 아쉬운 마음이 남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아이들에 대한 염려 때문이다. 아이들이 미국 사회에서 좀 더 소셜한 인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한국적인 것도 좋지만, 미국의 문화도 놓치지 않고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그래서 폭넓은 인간관계와 다양한 문화를 포용할 줄 아는 아이로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일 것이다. 세상이 점점 더 각박해지고 다문화 다인종이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 땅이기에 그렇다. 엄마로서 아이들의 성장에 일조하지 못하고, 되려 안 좋은 영향을 끼친 나 자신을 향한 자아 반성의 기회이기도 하지만, 아이들에게 너희는 엄마처럼 살지 말라는 당부이기도 하다.

 

이 생각은 아마도 오랜 세월 머릿속으로는 충분히 인식하고는 있었지만 맞닥뜨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일부러 피해왔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생각하려 하지 않았다. 불편한 진실과 조우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이미 수년간 결석한 핼러윈 명절을 다시 메이크업할 수는 없었기에. 아직도 낯설고 편하지 않은 이민의 삶에서 자신이 없기에.

 

늦은 건 늦었더라도, 지금이라도 남은 생을 좀 사람답게 살아야 하지 않나 하는 자각이 든다. 불편을 감수하고라도 뭔가 지구인으로 내가 해야 할 최소한의 노력은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모든 인종이 함께 어우러져 사는 미국 땅에서 한국의 고립된 섬처럼 사는 게 점점 창피해지는 나이가 되었고, 늦게 서야 철이 든 까닭이다.    

 

올해는 꼭 핼러윈 캔디를 사서 집으로 찾아오는 아이들을 반가운 얼굴로 맞이해 주리라 다짐한다. 다시 인생을 공부하는 마음으로 핼러윈을 대해보면 어떨까?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핼러윈의 다양한 주인공들과 화해할 시간이 곧 오고 있다. 올해 나의 의상은 평범한 미국 이웃. 그것이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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