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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효경 Nov 12. 2017

#15. <거꾸로 쓰는 육아일기>

대학에 기부하실래요?

오늘 날아온 우편물 중 하나는 아들 녀석이 다는 학교에서 온 편지였다. 다른 우편물에 비해 눈이 갔다.

 

올 초 대학원서를 넣어 놓고 학교로부터 메일을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기다리던 시절이 문득 생각났다. 합격 불합격 통지를 알리는 학교마다 가지각색의 메일들. 어떤 학교는 선물 공세를 하기도 하고, 학교 프라이드를 위해 아이들 마음을 사로잡을 아이디어 상품들을 보내주기도 했었다. 작은 백팩에서부터 핸드폰에 장착시키는 카드홀더, 매직 글라스, 기타 등등. 학교의 로고와 대표색으로 장식된 화려한 메일들을 매일같이 뜯어보는 재미가 한때 쏠쏠했었다. 미국 대학이 학생들을 유치하기 위해 온갖 상업적이 되어가는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물론 입학 허가를 준 학교의 러브콜인 경우에 그랬고 불합격인 경우에는 그저 얇은 종이 한 장의 사무적 메일이 다였지만.

 

아이가 다니는 학교의 빨간색 로고가 다른 메일들 사이에서 반짝거렸다. 2학기 등록금을 내라는 고지서인가? 좀처럼 학교에서 메일을 받아 볼 일이 없었는데(입학이 끝났으니까), 등록금 고지서일망정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서 온 메일이라 반가운 마음으로 봉투를 열었다. 돈을 내라는 메일은 맞았다. 등록금은 아니었다. 학교에 기부하라는 메일이었다. 나도 대학에서 일하고 있어 이런 식의 메일을 대학에서 학부모들이나 장래 기부자(potential donors)들에게 보내는 일의 생리를 너무도 잘 안다. 참고로 미국 대학은 주립대라 하더라도 (사립대의 경우에는 말할 것도 없지만), 대학 재정의 많은 부분을 기부로 충당하고 있다. 졸업생들과 각계 기업인들 또는 커뮤니티의 크고 작은 기관들과 개인들을 통해서. 여기에 재학생의 부모들도 들어가지 않을 수가 없다. 내가 재직하고 있는 대학도 학부모들로부터 기부금을 뜯어내서 (표현이 적절하지 못함을 용서하라), 여러 가지 사업을 진행한다. 그중에 대학 도서관도 한몫을 한다. 부모님들의 지갑을 열게 하는데 도서관은 꽤 매력적인 공간이니까. 자녀들의 학업 증진을 위해 도서관에 돈을 기부하세요~라고 하면 대학 내 여타 다른 기관이 요구하는 것보다 부모들에게 쉽게 먹히기도 한다. 마치 도서관에 기부를 한 만큼 내 자녀가 도서관에 가서 공부할 것만 같은 착각으로 끝날 망정.

 

나는 기부 서신에서 미리 제시한 기부 항목 중에 도서관 항목이 있는지 그것부터 살폈다. 기부한 돈을 받아 사용하는 도서관 수혜자의 입장에서 또 직업 정신으로 타 대학은 어떻게 하는지 본 것이다. 이 대학의 도서관장은 펀드레이징을 열심히 하지 않는지, 네다섯 개 정도 항목 중에 도서관이 없었다. 도서관이 있었으면 내 지갑이 바로 열렸을까? 그건 장담하지 못하지만, 살짝 실망하긴 했다. 구시렁대는 내 목소리에 남편이 (이미 서신을 보고 난 후였다), 교내 안전을 위한 항목이 있던데 거기에 기부 좀 하면 어때?라고 한다. 그 학교는 험한 동네에 있으니 캠퍼스 안전을 위한 비용이 많이 필요할 거야 하는 말을 덧붙이면서.

 

순간 학기초 아들 녀석의 학교에서 있었던 살인 사건이 생각났다. 그 학교 여학생이 졸업생 남학생에게 무참하게 살인을 당한 경우였다. 아들이 학교에서 새 학기를 시작한 지 1주일이 좀 지나서였을까. 학교가 워낙 게토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어서 절대 학교 반경을 넘어서는 곳으로는 가능하면 가지 말고 조심하라고 당부했었다. 학교에서도 캠퍼스 깃발로 교내 구역을 구분해서 학생들에게 알려 주려는 의도인 양 곳곳에 깃발이 날렸다. 마치 무슨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듯한 깃발은 이곳은 우리 땅이니 맘 놓고 다녀도 좋다는 그런 이미지를 심어주고 있었다. 학교 깃발이 휘날리는 곳은 경계가 삼엄하니까(교내를 순찰하는 경찰이 가장 많은 학교 중의 하나임) 외부인들이 함부로 들어오지 말라는 뜻을 이중적으로 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반대로 깃발이 없는 것은 위험하니 발도 들여놓지 말라는 암시와 함께. 깃발 하나로 어떤 범죄를 막겠느냐마는 자녀를 이 학교에 둔 부모의 마음에는 빨간 로고를 단 학교 깃발이 캠퍼스를 힘차게 나부껴 주는 것이 위로되긴 했었다.

 

이런 곳에 아이를 두고 오면서 속으로 나는 아냐. 괜찮아. 우리 아들은 나름 담대한 면이 없지 않고 어떤 인종의 사람들과도 잘 지내는 편이니까 괜찮을 거야.” 하는 마음으로 스스로 위로하며 시애틀로 돌아왔었다. 그래도 궁금하기는 했었다. 아이가 캠퍼스를 돌아다니면서 별 두려움을 갖지는 않는지. 과연 그런 게토 가까이 캠퍼스에서 지낼 만한지. 밤늦게 돌아다니다가 이상한 사람에게 해코지를 당하지는 않았는지 궁금했었다. 그래서 학교를 시작하고 1주일 정도 지난 어느 날 안전에 대한 안부를 물었다. 그랬더니 괜찮다, But… 하면서 오늘 캠퍼스에서 한 학생이 살인을 당했다는 메일을 받았다고 했다. What??? (뭣이???) 그렇다. 내 답은 물음표를 세 개 단 그야말로, 충격 그 자체가 아닐 수 없었다. 이어지는 내 질문은 By whom?이었다. 나도 모르겠다. 왜 그 질문이 먼저 나왔는지. 탐정도 아닌 내가 살인자가 왜 그때 그렇게 궁금했었는지. 아들의 답은 나를 더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 게토에 사는 위험 주의의 이웃 사람도 아닌 이 학교에 다녔던 (하지만 졸업은 하지 못한) 학생이란다. 이 학교에 다녔던 학생이 현재 재학생을 살인했다. 맙소사. 그러면서 아들이 학교에서 받았다는 이메일을 보내줬다. 메일을 읽기 전 나는 아들에게 학생들 간에 일어난 치정 (살인자는 남자였고 피해자는 여학생이었다)라고 에두르면서 그러면 위험한 게토의 지역과는 별 문제가 없는 일이라고 나도 모르게 아들에게 설명했다. 아마도 그런 지역의 학교에 아들을 보내 놓고 마음이 편치 않았던 것을 아들과 나에게 동시에 변호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럴 거라면서 수긍하는 아들에게 사람 간 관계가 제일 중요하다며 누구든 악의를 품지 않게 남들에게 잘 대하라는 조언을 남겼다. 한 마디 더 나아가 “Treat others how you want to treated.”라는 성경 구절을 도용했더니, 아들은 샤워하러 가겠다며 내 설교를 멈추게 했다.  

 

아들을 샤워로 보내고 그날 오후 내내 나는 인터넷에서 관련 기사를 뒤졌다. 간밤에 일어난 사건이라 많은 정보가 없었다. 범행의 용의자로 누군가의 사진이 떠오르긴 했지만, 아직 정확한 조사가 완전히 끝나지 않은 모양이었다. 이 대학으로 전학을 와서 이 불행을 당하게 된 여학생의 사진도 함께 떴다. 이쁘장하게 생긴 백인 여학생이었다. 이 학생이 마지막으로 CCTV에 잡힌 것이 새벽 2시 정도에 학교 근처의 술집에서 용의자인 남자와 함께 나오는 장면이었다. 살인당한 여학생의 시신은 학교에서 꽤 먼 곳의 지역에서 발견되었는데, 남자의 할머니 집 창고라고 했다. 시신은 많이 훼손되어 있었고, 남자는 경찰에 즉각 체포되었다. 밤늦게 술집에서 둘이 같이 나와서 간 곳은 아마도 학교 근처의 남자가 살던 아파트였고, 그곳에서 살인이 이뤄지지 않았나 경찰은 그렇게 조사하고 있었다. 아파트에서 여자의 괴성이 새벽녘에 들렸다는 제보가 있었고, 혈흔도 발견이 된 모양이었다. 더 무시무시한 건 이 남자의 집에서 엄청난 양의 마약이 발견되었다고 하니 이 둘 사이의 경위가 어떻게 흘렀을지 어느 정도 상상이 간다.

 

인터넷에서 조각 뉴스를 찾아 읽고 영상으로 범행이 일어났던 장소도 두 눈으로 확인하고 나니 이 학교에 아들을 보낸 것이 잘한 일인가 하는 찜찜하고 꺼림칙한 마음이 들었다. 여학생이 들어갔던 술집은 학교 캠퍼스에서 불과 몇 블록 지나지 않는 곳에 있었고, 범행이 이뤄졌던 남자가 살던 아파트도 그곳에서 멀지 않았다. 지난여름 아이를 기숙사에 데려다주고 함께 점심을 먹었던 레스토랑도 같은 블록에 있던 곳이었다.

 

살인 현장에서 2800 마일이나 떨어져 있는 엄마인 나도 이 소식을 듣고 소스라치게 놀랐는데 그곳에서 불과 몇 블록 안에 사는 아들 녀석은 얼마나 두려울까 싶다. 시애틀에서도 살인 사건이 나지 않는 건 아니다. 여기도 크고 작은 사건 사고가 있는 사람 사는 동네이긴 하지만, 아들 녀석이 집을 떠나 새롭게 정착한 낯선 도시와 낯선 학교의 낯선 동네와 낯선 기숙사에서 지내는 바로 이 시기에 교내 학생에게 사고가 났다는 것은 아이에게 적잖은 두려움을 주었을 것 같다. 무섭지 않냐고 물어봐도 아니라고 단호히 대답하기는 했지마는.

 

그 이후로 한 달쯤 지났을까? 우연히 뉴스에서 이 학교 대학생 한 명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신입생이었는데 고층 기숙사에서 떨어져 자살했다는 것이다. 캠퍼스 내 자살도 살인사건의 뉴스만큼 어느 학교에서나 일어나는 사고 중의 하나이긴 하지만, 아들 녀석이 연거푸 들었어야 할 캠퍼스 내 학생들의 연이은 죽음의 이야기가 예사롭지 않게 내게는 다가왔다. 이제 정말 아들 녀석도 성인이 되어야 할 때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성인은 준비가 되었을 때 맞이하는 게 아니라 주변 상황과 환경이 성인이 되게 만들어 주기도 하니까.

 

자살한 그 아이에 대해서는 인터넷 뉴스를 아무리 뒤져도 잡히는 게 없었다. 너무 어린아이이기도 하고, 가족들이 철저히 프라이버시를 지키고 있어서인지 모르겠지만, 아이가 무슨 연유로 자살을 선택했는지 나는 그게 무척이나 궁금했었다. 혹시 학교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교내 친구들이 따돌림을 당한 것은 아닌지, 같은 학교의 신입생으로 들어간 내 자식에게 미칠 학교의 그 어떤 문제는 아니었을까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던 것 같다. 살인 사고의 조사 경위를 그 날 이후 며칠간 자세히 좇으며 개인의 문제가 아닌 학교나 캠퍼스의 문제는 없었는지 주의 면밀하게 찾아보려는 엄마의 책임이 나를 뉴스의 글자 하나라도 놓치지 않도록 몰았던 것 같다.

 

문뜩 아이의 학교에서 온 기부 서신을 보며 지난 생각이 주마등처럼 다시 지나갔다. 아이를 이 학교에 보낸 게 잘한 일일까? 어수선한 주변의 환경을 보면 마음에 확신이 서지 않는다. 기부를 아직 하진 않았지만, 학교에 기부하면 마음이 좀 편안해지지 않을까 생각도 든다. 그래, 꼭 기부는 캠퍼스 안전을 위한 항목으로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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