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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효경 Nov 19. 2017

#16. <거꾸로 쓰는 육아일기>

넘치는 시간에 허우적거릴 날은 없다

아이들이 대학생활을 한 지 꼬박 3개월 정도가 되었다. 내가 아이들 없이 지낸 시간도 3개월이다. 이 기간 내내 나 자신을 괴롭힌 질문이 하나 있다. 아이들도 없는데 왜 이렇게 날마다 바쁘고, 한 주일이 예전보다 더 빨리 지나가는 것 같고, 쉴 틈이 없는 걸까? 아이들이 있었을 때 나는 지금보다 효율적인 사람이었나?

 

아이들이 떠나고 텅 빈 자유 시간에 허우적거리고 있을 상상은 3개월 전에 상상 속으로만 그 생명을 다했다. 감상적이고 심리적인 이유가 아니었다면 결론은 둘 중의 하나다. 아이들이 있을 때보다 바쁜 일이 많이 생겼다거나 아니면 내가 아이들이 있었을 때 엄마로서 한일이 별로 없었다거나. 그래도 아이들이 없어서 집 안이 텅 비었을 것을 염려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주로 했던 답변은 이 많은 자유시간이 주어져서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내지는 심플한 라이프스타일을 즐기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없으니 신경 쓸 일이 없어 좋습니다, 또는 롸이드 줄 일이 없어 얼마나 편한지 모르겠습니다 등등. 내 대답은 시간에 허우적거릴 정도는 아니더라도 넉넉한 물가에 발을 담그고 유유자적하는 정도는 되었었다. 

 

사실 그렇게 느끼고 있는 것도 틀림없이 맞는 말이긴 하다아이들 저녁에 뭘 먹일까 고민하지 않아도 되고, 학원에 데려다 줄 일도 없고, 주말 시간은 전적으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계획하고 만들어도 되며, 아침마다 일찍 일어나라고 실랑이를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물론, 아이들 빨래를 안 하니 2-3주 빨래를 미뤄도 사는 데 지장이 없는 것을 비롯해 이런 해방감은 46년 사는 동안 억압되었다가 인제야 누리는 새로운 차원의 자유로움이 아닐 수 없다. 대학교 4학년을 졸업하고 부모와 같이 살던 집을 떠나 유학을 나왔던 시기와 살짝 닮은 점이 없지 않지만. 아무튼, 그렇게 나는 이 자유를 누렸고 지금도 분명 누리고 있다. 이런 반복된 생활은 지난 3개월 동안 해가 뜨고 달이 뜨는 일처럼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고. 

 

그런데 나는 아직도 많이 바쁘다고 느낀다바쁘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분주하고, 공사가 다망하고, 절대 한가하지 않다. 아니 아직 시간에 허우적대지 못했다. 시간의 바다에 빠져서 날 좀 구해 주세요. 제발 좀… 하고 말해 보고 싶은 순간이 불행하게도 아직 내게 찾아오지 않았다. 그 경험은 어디 가야 할 수 있는지, 그곳은 어디에 있는지 절대 도달할 수 없는 곳인지, 혹시 존재하지 않는 곳일까 봐 이제는 두려움마저 든다.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바쁜 이유에는 공적 사적으로 이해할 만한 뭔가가 있지 않고서는 이 빼앗긴 시간에 대한 부당함을 도체 수긍할 자신이 없다. 객관적 분석을 위해 지난 3개월을 정리해 볼 필요를 느낀다. 그래, 공적으로는 내가 근무하는 대학 도서관에 크고 작은 행사가 많이 있었음을 확인했다. 80주년 행사도 있었고, 바로 밑에서 일하던 직원이 은퇴해서 챙길 일도 있었고, 학교에서 새 직원을 뽑는 일에 관여해야 할 일도 많았다. 어제는 타주로 짧은 기간이지만 출장을 다녀와야 할 일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일은 사실 늘 일어나는 일이라 특별히 지난 3개월 동안이 죽을 맛이었다고 단언할 수도 없다. 그리고 일이 아무리 많고 스트레스가 적지 않았다 해도 집에까지 일을 끌고 오는 일은 내 사전에 별로 없기 때문에 8 to 5까지 일하고 칼퇴근하는 직업상 변명할 게 별로 없다. 

 

그렇다면 사적으로 뭔가 더 많은 일이 일어났던가애들도 없이 남편과 달랑 둘이서 사는 퇴근 후 나의 생활에? 일주일에 저녁밥을 한 적도 손에 꼽을 정도인데 그건 아니다. 하지만, 전보다 책 읽기와 쓰기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지난 3개월간 분명히 느낀 것이지만, 내 서평의 숫자가 확연히 줄어든 것을 확인할 수 있었으니까. 적어도 1주일에 한 권 정도씩은 책을 읽고 서평을 줄줄 써 내려갈 수 있었는데 지난 3개월 동안 내 글쓰기 성적은 별로 좋지 않다. 지난 3개월간 쓴 서평이 고작 6편에 그쳤으니까. 왜? 왜? 왜? 이쯤에서 나 자신을 반성해 보기도 한다. 너무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시간이 많다고 생각하고 물처럼 낭비한 것은 아닌지.


 

아니다. 그건 아니었다. 알고 보니 나는 그동안 많이 아팠다. 몹쓸 병에 걸린 것은 아니지만, 병원 신세를 지며 지난 3개월을 보냈다. 아직도 병원 예약이 끝나지 않았을 정도다. 지난 병원 기록을 대충 짚어보면 이렇다. 

 

9월 초부터 시작된 왼쪽 좌골 신경통이 갑자기 심각성을 띠며 내 관심을 끌었다. 마치 아이들이 떠나니 이제까지 참고 기다렸던 일을 시작하겠다는 기세로 왼쪽 엉덩이에서 허벅지 그리고 무릎을 거쳐 종아리로 전해지는 신경의 저림이 허파를 찌르듯 나를 놀라게 했다. 신경의 그 빠른 움직임이 있고 나면 허벅지 아래로 다리가 끊어질 것 같은 느낌이 뒤따랐다. 이미 오른쪽 허리 아래쪽에 있는 디스크 L4-L5의 이상으로 인해 오른쪽 다리 저림에 익숙한 나였지만, 왼쪽에서 시작된 새로운 신경의 자극은 전에 없이 날카로웠다. 오른쪽에 있던 문제가 왼쪽으로 모두 이사를 했는데 좀 더 큰 집으로 이사를 해서 문제가 배 이상으로 커진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주치의를 만나 상의하고 그 뒤로 MRI를 찍고 척추 전문의를 만나 왼쪽 같은 자리 L4와 L5 사이, 그리고 L5와 S1 사이에 새로운 디스크 문제가 생겼음을 확인했다. 의사에 의사를 만나고 진찰과 진찰이 이어졌다. 오른쪽 디스크 문제처럼 물리치료를 다시 시작하는 게 좋겠다는 의사 제안에 나는 통증이 너무 심하니 물리치료도 좋지만 일단 스테로이드 주사를 놔 달라고 부탁했다. 통증이 너무 심해 당장 통증을 좀 가라앉힐 대책이 내게는 그 무엇보다도 절실했다. 어쩌면 나의 서평의 숫자가 줄어든 이유에는 통증때문에 오래 동안 자리에 앉아 있지 못한 점도 있었으리리라.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기로 (물론 해결법이 아닌 통증을 잡을 요령으로) 날짜를 잡고 새로 처방한 약을 받아왔다. 타이레놀은 통증에 들지 않았기에 주사를 맞기 전까지 통증을 해결하기 위해 Tramadol이라는 (소위 소량의 마약성 진통제) 약을 처방받았다. 

 

잠이 올지 모른다고 했는데 약을 먹고도 별 이상이 없었다퇴근 전 1시간쯤 약을 먹고 집에 왔는데, 약 기운이 서서히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머리가 어지러워지면서 속이 메스껍고 자꾸 기대고 싶어 졌다. 남편은 교회에 가고 혼자 집에 있던 저녁이었다. 아무래도 처음 먹기 시작한 약 때문이 아닌가 싶어 약봉지를 들고 부작용에 대해 살피는데 비슷한 증상들이 있었다. 숨도 점점 가빠지고 급기야 숨쉬기가 힘들어지면서 얼굴에서 핏기가 싹 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뭔가 정신을 잃을 것 같은 상태에서 나도 모르게 911을 걸었다. 구급차가 오고 응급 처치하는 직원들이 와서 맥박과 혈압을 재고 눈을 뒤집어 까서보기도 하는 일이 순식간에 펼쳐졌다. 나는 숨쉬기가 힘들었을 뿐만 아니라 손이 점점 굳어져서 손가락을 접을 수 조차 없었다. 이런 일이 처음이라 나는 공황 상태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응급차로 응급실에 실려 가면서도 손뿐만 아니라 다리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고 굳어져 가는 것을 느끼고는 두려움에 떨며 울었다.

 

응급실에 도착해 2시간 정도가 지나자, 서서히 손과 발에 피가 다시 돌기 시작하면서 몸이 풀어지는 느낌이 들더니 정상적인 상태로 되돌아왔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의사가 심전도 검사를 하고 여러 가지 질문에 어떤 약을 먹었는지 증상은 어땠는지 질문을 하고 대답을 하는 사이 내 몸은 민망할 정도로 정상으로 돌아왔다. 의사도 약의 부작용 중의 하나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지만, 약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도 아닌데 정확히 왜 손발이 굳어지는 현상이 일어났는지에 대해서는 모르겠다는 진단만을 남겼다. 아마도 패닉 상태에 들어서 숨이 가빠지고 몸에 산소 공급이 덜해지면서 생긴 현상이 아닌가 하는 의문만 남긴 채. 


패닉 자체도 패닉이지만, 약에 대한 새로운 패닉이 생긴 것도 패닉할 일이었다. 이제부터 겁이 나서 무슨 약을 먹어야 할지 고민이 되고 겁이 나서 약을 제대로 복용하지 못할지 모른다. 듣자 하니 의외로 미국에서 의사 처방받은 약 중에 강한 것이 많다고 한다. 내 몸에 맞지 않는 약을 잘못 먹고 치사할 확률도 실제로 크다고 하니 겁이 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서 근 2주간 디스크 통증에 대한 약도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그저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을 날만 손꼽아 기다려야 했다. 온갖 희망을 주사에만 걸고서.

 

진통제와 응급실 사태로 인해 스테로이드를 맞는 일이 몹시 두려웠다척추 사이에 가는 주사를 주입해서 그 속으로 스테로이드를 내 하반신 전체에 퍼지도록 하는 일인데, 내 몸이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부작용을 일으키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밀려들었다. 약을 믿지 못한 게 아니라 내 몸을 믿지 못했다. 그래도 통증을 임시적이라도 줄일 수 있다는 희망으로 주사를 맞았다. 웬걸? 주사는 다리에 그 어떤 통증이 거할 수 없게 딱 하루만의 통증 없는 세상을 만들어 주더니, 마치 신데렐라에게 주었던 꿈과 희망이 하루 밤만에 모두 사라지고 예전의 누더기 신세로 되돌아 가듯이 그렇게 나의 통증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주사가 제대로 작용하려면 2주가 걸린다고 해서 꼬박 2주를 기다려 봐도 2주 안에 그 어떤 희망의 실마리도 내게 나타나지 않았다. 의사를 만나 지난 한 달간 있었던 약과 주사로 인한 파란만장했던 이야기들을 들려주는 것이 환자로서 내가 전할 수 있는 이야기 전부가 되고 말았다. 의사는 더 이상 너에게 해 줄 것이 없다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수술의를 만나보고 싶으면 안내를 해 주겠다는 말로 자신의 역할을 마무리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아직 수술의와는 예약하지 않은 상태다대신 지푸라기라도 잡을 마음으로 우연히 알게 된 한의사에게 침을 맡기 시작했다. 한 번 가면 2시간 정도 몸의 앞과 뒤에 침을 맞는다. 한의사가 권한 십전대보탕의 한약을 꾸준히 먹어보려고 날마다 애쓰고도 있다. 침도 하루 놓고 나면 그날만 반짝 괜찮을 뿐 다음 날이면 언제 침을 맞기라도 했냐는 듯 비웃듯 신경의 통증은 그대로 살아났다. 한의사를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서 그간 통증이 어땠는지에 대한 답을 하는 것도 얼마나 미안한지 모르겠다. 침을 맞고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통증아, 어디에 있냐? 있으면 이리 나와봐라, 하고 아무리 통증을 찾아보려 해도 한의사 앞에서는 그렇게 수줍어하고 자신을 나타내지 않는다. 그렇게 숨바꼭질을 하다가 집에만 오면 통증이 버젓이 내 몸을 짓누르고 있다. 이 망할 놈의 통증.

 

나는 지난 3개월을 이렇게 정신없이 내 몸의 통증과 싸우면서 지내느라 물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니 아이들이 없다고 해서 시간에 허우적거리며 풍덩 빠져서 여유로이 지낼 틈이 전혀 없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오후에 침을 맞으러 가야 한다. 다음 주 월요일엔 수술의와 면담을 예약해야 하고, 화요일에는 앓던 사랑니를 드디어 빼는 날이기도 하다. 평소 존재감 없이 지내던 마지막 하나 남은 사랑니까지 지금이 무슨 호기인 양 말썽을 피운다. 40년이 넘도록 잇몸 안에서 동면을 즐기던 녀석이 인제야 잇몸 밖의 세상을 구경하고자 전투적 결의를 하고 잇몸을 뚫고 내려오고 있다니 어이가 없다. 거대한 이빨 하나가 이미 잇몸 밖의 세상으로 전신을 드러내며 자리를 잡은 지 오래다. 아마 그냥 놔두면 한없이 내려올 기세이다. 주변 이빨들을 밀치며 주변 신경을 온통 자극해 가면서 말이다. 이 녀석도 통증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나에게 과시하고자 하나 보다. 내가 이제까지 그렇게 무감각한 사람이었나? 왜 통증이 한꺼번에 나에게 몰려오려는 건지.

 

… 졸지에 나는 통증의 포로가 되어 저들의 군림에 무자비하게 짓밟히고 있다. 저들은 내 시간만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정신과 몸까지 장악했다. 아픈 것도 다 때가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육아가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 내 몸을 돌봐야 할 일들이 나의 관심을 독차지하는 것이 어찌보면 가엾기도 하다. 이것이 삶의 이치인지 모르겠다. 이젠 나 자신을 돌봐야 할 시간이구나. 그동안 방치했던 내 몸의 구석구석들이 시간의 틈새를 어떻게 알고 하나둘 나를 찾아온다. 그래, 할 수 없지. 그래서 나는 또 바쁘게 살아가는구나. 시간에 허우적거릴 날이란 아마 영영 찾아오지 않을지 몰라. 그런 생각이 들자 나는 왜 그렇게 시간에 허우적거리고 싶은 걸까? 그것이 뭔지도 모르면서 그것을 갈망하는 나는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시간에 허우적대지 않아도 좋다고 스스로 처방을 내려 본다어쩌면 내게 시간을 흥청망청 쓰고 싶어 하는 잠재된 욕구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흥청망청 써서 좋을 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 시간도 마찬가지다. 너무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게 주어진 시간을 자~알 쓰는 데에 오늘 지금 이 시간을 집중하는 거다. 그것에 만족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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