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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효경 Nov 24. 2017

#17. <거꾸로 쓰는 육아일기>

해피 땡스기빙?

미국의 가장 명절다운 명절이라면 아무래도 추수감사절이다. 목요일부터 연휴로 4일을 내리 노는 날은 미국 달력에서 이날이 유일하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명절이기도 하다. 미국의 역사엔 명절이랄 것도 별로 없는데 명절이라는 그 분위기만으로도 마음이 즐거워진다. 추수와 감사라는 말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가족들이 모여 근사하게 구워진 터키를 함께 나누는 풍성한 식탁의 명절이라서 더 그렇다. 이날을 위해 많은 이들이 장거리 이동을 하고, 시장을 보고 음식을 정성스럽게 준비한다. 그동안 가족을 잊고 지냈던 집 나갔던 자식들도 하나둘 모여드는 날이다. 땡스기빙 만찬에 참석하기 위해 집으로 찾아온다. 물론 나같이 미국에 가까운 친척 없이 지내는 외로운 이민자들은 두서너 가정이 함께 모여 저녁을 하는 것으로 위로하긴 하지만.

 

나는 그것마저 올해는 하지 않기로 했다. 사실 몇 년 전부터 추수감사절에는 아이들과 네 식구가 터키 대신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를 먹는 날로 정하고 그렇게 보냈었다. 솔직히 말하면 터키는 터키 샌드위치로 족하다. 일 년에 고작 한 번 먹는 터키 만찬인데도 기다려지지 않을 정도니 굳이 찾아서 먹을 음식이 못 된다. 물론 나의 개인적인 견해이지만. 음식이 덜 까다로운 미국인들은 터키를 좋아하는 것도 같다. 아무튼, 터키를 패스하고, 조촐하고 단출하게 그렇게 네 식구가 함께 보내는 추수감사절이 나쁘지 않았다. 아니 그것으로 충분했다. 아이들이 함께 있었을 때는 아들 둘과 남편 만으로도 4인 가족이 풍성하다고 느꼈으니까. 4인 이외의 다른 가족이 필요 없다고 느껴질 정도로. 가족 이기주의적이고 지나치게 민감한 명절에 대한 내 관념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웬만큼 가깝지 않고서 이날을 혈연 가족이 아닌 주변의 지인들과 함께 보내는 것이 내게는 훨씬 더 정신적으로 부담스럽다.

 

올해는 남편과 둘이서 단출하게 추수감사절을 보내게 되었다. 시애틀에 혈연 가족이란 그와 나 딱 단둘이라고 생각하니 세상에 혼자 버려진 아이 같은 느낌이 든다. 또 저 멀리 펜실베이니아 동부와 서부에 각각 떨어져 있을 아이들을 생각하니 저들도 나처럼 버려진 아이 같은 느낌이 들지 않을까 마음이 편치 않다. 이제껏 아이들을 떠나보내고 한 번도 그리워하지 않았는데 전에 없던 감정이 한꺼번에 쓰나미처럼 몰려온다. 내 육아일기의 반전인지 명절 특유의 멜랑콜리인지 모르겠지만.

 

땡스기빙이 가까워져 오면서 주변 지인들이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냐고 물었다. 애들은 12월 방학 때 오기로 되어 있다고 대답하면서도, 감정에 휘말리지 않고 이성적으로 되려고 내심 노력했다. 땡스기빙에 아이들이 비행기를 타고 그 짧은 방학을 위해 시애틀까지 오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 바쁜 여행 철에 오고 가는 일도 번거롭고 비용도 만만치 않지만 무엇보다도 시간이 넉넉하지 않다. 그 시간에 차라리 기숙사에서 한가로이 주변 도시를 탐색하며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되려 낫다고,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 나도 그렇고 남편도 그렇고 아이들도 모두.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

 

지난주였을까? 한 아이로부터 불쑥 연락이 왔다. 학교에서 필라델피아로 떠나는 땡스기빙 버스가 있는데, 그걸 타고 다른 녀석이 있는 곳에 가서 함께 땡스기빙을 보내겠다는 메시지였다. 그렇지 않아도 너희들이 함께 모여서 같이 지내는 게 어떻겠냐고 오래전부터 물어봤던 일인지라 당연히 좋은 생각이라고 전했다. 브라더를 찾을 기특한 마음을 먹은 아이를 과하게 칭찬해 가며 버스표 사는 것을 부추겼다. 전에는 생각 없다고 하더니 혼자 기숙사에서 지내려니 그나마 6시간 멀리 있는 피붙이에게 가겠다는 마음이 들었나 보다 싶어 두 녀석이 드디어 가족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아이들로 자라나 싶어 은근히 뿌듯한 마음도 들었다. 무엇보다도 나는 아이들이 함께 지내게 돼서 마음이 한결 놓였다. 기숙사 카페테리아마저도 문을 닫는 이 기간에, 거리에 나 땡스기빙 저녁밥을 혼자 먹으며 보낼 걸 생각하니 아무리 이성이려 해도 마음이 불편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아이들이 오랜만에 다시 만나 같이 지내면 서로 학교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고 좋은 시간을 보내겠다 싶어 일거양득의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플랜이 아닐 수 없었다.

 

웬걸? 버스표를 산 지 이틀이 지났을까? 그 녀석으로부터 다시 연락이 왔다. 필라델피아에 있는 브라더의 기숙사에 이틀 이상을 지낼 수없게 되었다는 것을 이제야 그 녀석이 알려왔다며 버스표는 이미 샀는데 어떡하냐며 화가 잔뜩 난 채 씩씩거리고 있었다. 버스표는 땡스기빙 기간 내내 한 번만 왕복하는 표고, 학교에서 학생들을 위해 전세한 것이라 돌아오는 날짜를 임의로 앞당길 수가 없었다. 나는 즉시 다른 아이에게 연락했다. 기숙사에 네 브라더를 이틀밖에 못 재운다고 들었는데, 그게 정말이냐? 혹시 연장할 수는 없느냐? 어떻게 그것도 안 알아보고 네 브라더 보러 오라고 했느냐? 등등 궁금한 게 많았다. 아들 녀석의 대답은 아주 간단했다. 별문제 없다는 투다. 그냥 오라는 거다. 와서 기숙사에 이틀은 지낸 후에 나머지 날은 방구석에 숨어 지내라면서. 물론 나에게 그 마지막 말을 하지는 않았다. 다른 녀석에게 그렇게 얘기를 했는지 이 말을 들은 녀석이 그런 푸대접을 받으면서까지 필라델피아에 갈 이유는 없다고 나에게 선포해 왔다. 순간 왜 이 녀석은 아무 죄 없는 나에게 화를 내고 있나 싶었지만, 중간에 낀 나는 이 둘을 잘 달래서 버스표와 기숙사 문제의 해결점을 찾고, 이 둘이 가능하면 땡스기빙을 함께 보내도록 그 역사적인 날을 지켜내는 게 내 임무라면 임무라고 생각하고 정신을 가다듬었다.

 

버스표의 환불과 기숙사의 게스트 규정 그리고 새 버스표와 숙박지 등을 먼저 알아보았다. 기숙사의 규정은 엄격했고, 버스표는 환불이 되는지 아들 녀석이 알아볼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땡스기빙 중에 호텔에서 지내는 것은 별로 이상적이지 다고 생각해 이미 산 버스표가 환불만 된다면 새로 그레이하운드 버스표를 사 이틀만 필라델피아에 다녀오는 것이 이 상황에선 가장 좋은 절충안이라고 나는 결론을 내렸다. 그런 제안을 나눌 새도 없이 아들 녀석은 나에게 필라델피아에 가지 않겠다며 단호히 통보해 왔다.

 

녀석은 몹시 화가 나 있었다. 버스를 타고 밤늦게 필라델피아에 내리면 어떻게 지하철을 타고 브라더 녀석의 기숙사를 찾아가야 하는지 그것을 리서치하느라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여서 준비했는지 모른다고 나에게 하소연 했다. 그렇게 자기는 준비를 철저히 했건만 다른 브라더는 자신이 기숙사에 지낼 수 있는지조차 제대로 알아보지 않았던 것에 무척 실망한 모습이었다. 더군다나 나머지 이틀을 기숙사 방에 숨어 지내라고 했으니 말도 안 되는 생각에 자신의 호의(녀석에겐 상당한 호의가 맞다)를 푸대접으로 답하는 브라더에 화가 잔뜩 나지 않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자존심 강한 이 두 녀석 간에 오갔을 험한 대화가 상상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아이들이 아직은 이런 사소한 장벽을 뛰어넘고 서로를 찾아가기엔 성숙하지 못했다. 그만큼 서로를 찾고 싶은 마음도 처음부터 없었던 거고. 엄마인 나는 그런 새로운 감정이 싹트기 시작했다고 철석같이 믿고 싶었는지 모르겠지만.

 

다행인지 아닌지 버스표는 환불이 가능했다. 환불이 가능하지 않았으면 두 녀석이 같이 지낼 수 있었을까? 두 녀석이 같이 지낼 역사적인 땡스기빙 계획은 한여름 밤의 꿈처럼 처참히 무산되었다. 물론 그 꿈은 나 혼자만의 원대한 꿈이었지만. 그 꿈에는 여러 장면이 있었는데 꿈을 깨고 났는데도 아직 눈에 선하다. 여행 준비로 가방을 싸는 모습, 다른 학생들과 함께 필라델피아행 버스에 오르는 녀석의 들뜬 모습, 난생처음 낯선 도시 필라델피아에 내려 (그것도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지하철을 타고 브라더의 기숙사를 찾아가는 녀석의 어리숙한 모습, 마침내 역에 내려 브라더를 기숙사에서 재회하는 장면 (저들이 무슨 말로 첫 대화를 나눌지 무척 궁금했다), 두 녀석이 함께 기숙사에서 밤새 게임을 하는 모습, 게임을 하다 지치면 혹시라도 서로의 대학생활이나 전공 또는 앞으로의 진로에 대한 이야기를 진지하게 나누진 않을까, 그러다가 배가 고파 먹을 것을 찾아 함께 패스트푸드를 먹고, 다음 날은 필라델피아 시내로 구경을 나갈지도 모른다. 어쩌면 의기투합해서 뉴욕으로 기차를 타고 땡스기빙 퍼레이드를 보러 과감히 여행을 떠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등등. 나는 이 둘이 함께 보낼 땡스기빙 일정을 나 혼자 신나게 그려보고 있었다. 돈이 필요하다면 넉넉하게 부쳐 줘야지 하는 땡스기빙 다운 풍성하고 넉넉한 마음을 가지고서.         

 

땡스기빙 아침이다. 간밤에 나는 아무 꿈도 꾸지 않았다. 아침에 깨자마자 든 생각은 동부의 시각이었다. 여기가 5시 30분이니 거기는 8시 30분이겠구나. 아이들은 각자의 기숙사에서 아직도 늦잠을 자고 있겠지. 오늘 아침은 마치 오지 말아야 할 때가 다가온 것처럼 그렇게 낯선 아침을 맞았다. 오늘 중으로 아이들에게 전화해야겠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화상 통화라는 걸 해 보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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