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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효경 Dec 12. 2017

#18. <거꾸로 쓰는 육아일기>

정확히 6일 뒤면...

6일 뒤면 한 아이가 오고, 다른 아이는 정확히 9일 후면 집에 옵니다. 지금은 파이널 시험 기간을 보내고 있을 겁니다. 제가 근무하는 학교도 가을 쿼터가 끝나는 마지막 주라서 학생들이 시험 준비로 분주해 보입니다. 한 손에 하얀 페이퍼를 들고 바쁘게 강의실을 드나드는 학생들도 보이고, 도서관 책상에 엎드려 있는 지친 모습의 학생도 보입니다. 스터디 그룹으로 모여 공부를 하는 학생들도 군데군데 보이네요. 다들 학기말고사를 위해 마지막 피치를 올리고 있습니다. 학기말 시험 기간에 다른 데 가지 않고, 도서관에 와 있는 학생들이야 공부하러 온 게 당연하겠죠? 저 아이들을 보면서 내 아이를 떠올립니다. 요새는 대학에서 일하는 게 그렇게 부담스러울 수가 없어요. 학생들을 볼 때마다 제 아들들 생각이 나지 않을 수 없으니까요. 이것도 불과 4년만 지나면 곧 사라질 증상이겠죠?

 

제 아들들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요? 한 녀석은 전화하면 주로 자기 기숙사 방에서 받습니다. 도대체 방에서 혼자 공부가 잘 될까 무척 걱정되네요. 차라리 도서관에 가서 있으면 맘 놓고 잠을 잘 수도 없고, 다른 학생들 공부하는 걸 보면서 불안해서 자신도 책 한 장이라도 더 읽을 것 같은데, 기숙사 독방에서 혼자 무슨 공부가 될까 심히 의심스럽습니다. 눕고 싶으면 눕고, 자고 싶으면 자고, 아무도 통제하지 않는 공간에서 혼자 공부를 잘해 나갈지 참 의심스럽네요.

 

다 큰 대학생을 놓고 왜 그렇게 의심이 많냐고요? 이 녀석의 학점이 한심해서 그렇습니다. 아무리 이 학교를 그만두고 다른 학교로 갈 예정이라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학점 관리는 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게 정상적인 학생의 생각 아닐까요? 이 녀석이 학점을 말아먹고, 부모님께 미안하다며 문자를 보내온 지가 얼마 전이었습니다. 가슴이 덜컥했죠. 마치 제가 낙제 점수를 받은 것처럼. 어이없어하는 남편은 이렇게 말하더군요. 내가 이 녀석 걱정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면서요. 참고로, 우리 집엔 쌍둥이 아이가 둘 있거든요. 늘 한 녀석이 다른 녀석보다 학업 면에서 조금 쳐지곤 했죠. 쳐지는 그 아이로 인해 걱정을 조금 더 하곤 했었는데, 지금은 그 아이가 아닌 다른 아이로 인해 걱정하고 있습니다. 고등학교 12학년이 될 때까지 사실 아이들 학업 때문에 한 번도 속을 썩거나 걱정을 하지 않아왔었는데 말이에요. 그렇게 열공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학교 성적은 늘 관리를 잘 해온다고 믿게 해 주었었는데…

 

부모가 없으면 혼자서 자기 관리를 할 줄 모르는 대학 생활을 할 준비가 전혀 안 된 아이가 아닌가 남편은 그 걱정부터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아이를 한국 대학에 보내는 게 (<#7. 거꾸로 쓰는 육아일기>에 자세히 언급되어 있습니다), 과연 올바른 선택인지 고민해야 하지 않겠냐면서요. 한국에서의 대학 생활이 더 어려우면 어려웠지 쉽지는 않을 텐데, 언어도 힘든 그곳에서 성적 관리를 과연 잘할 수 있겠냐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저도 물론 공감하는바입니다.

 

근데 저는 아직도 이 녀석의 속을 모르겠어요. 아니, 이 녀석의 능력을 정확히 가늠할 수가 없어요. 실력이 부족한 건지, 게으른 건지, 아니면 생활 방식에 문제가 있는 건지, 할 수 있는데 마음을 못 잡아서 이번 학기를 망쳐 놓은 건지, 정말 공부하기 싫은지, 대체 자신의 미래에 대한 생각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남편 말마따나 한 번도 이 아이로 인해 학업 걱정을 해 본 적이 없었는데 이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전혀 판단이 서지 않는다는 거예요. 아이와 떨어져 있는 물리적 거리만큼이나 아들 녀석의 속을 모르겠다는 생각만 깊어집니다. 전화와 문자로 아무리 얘기해도 아이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지 확신이 생기질 않네요.

 

아이가 했던 말을 다시 읽어 봤습니다. “지난 학기 동안 학업에 통 관심이 없었고, 그래서 학업을 소홀히 했으니 이번 경험을 통해 앞으로 배움에 대한 열정을 다시 키워 보는 기회로 만들어 보기를 희망한다”라고 말하더군요. 뭔가 자기 성찰을 하는 것 같긴한데, 그게 어디까지가 진실인지를 잘 모르겠습니다. 내가 키운 자식인데도 이렇게 성인이 되고 나니 참 이 녀석 속을 알 수 없어 답답하네요. 아이의 말을 오늘 천천히 다시 읽어보니, 대학 공부란 것 자체에 대한 회의를 느끼는 것으로 읽혀 며칠 전 처음 이 문자를 받았을 때보다 더 가슴이 철렁 내려앉습니다. 12학년 때도 대학에 대한 회의적인 생각이 없지 않았던 아이였긴 하지만, 그 고민을 대학에 가서 더 구체화하였다면 이건 정말 큰일이 아닐까 싶네요. 이런 거대 담론을 이야기할 준비가 엄마인 저는 되어 있지 않거든요. 평범한 엄마이니까 당연히 대학 졸업장은 따야 하는 거고, 남들 다 열심히 대학에서 공부하고 그것도 모자라 대학원도 가고 박사학위도 받고 앞으로 공부하며 살길이 창창한데, 이제 겨우 대학 1년생이 이런 고민을 한다면 엄마인 저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걸까요? 머리가 복잡합니다.

 

아직까진 열심히 부인만 하고 있습니다. 아니야, 우리 아들이 그럴 리 없을 거야. 한국으로 대학 가려고 하니 맘을 못 잡고 그냥 공부에 소홀히 했겠지. 한국 가서 정신 차리고 공부하려고 하면 잘 해낼 수 있을 거야 하면서요. 남편은 이런 저의 전면적인 부인을 보면서 어이없어하며 쓴웃음을 지어 보이네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제까지 제가 18년간 아들 녀석을 키워왔는데, 그 아들이 그렇게 갑자기 달라질 수 있을까 싶어서요. 18년간 보아 온 제가 아는 아들을 믿어보려고 합니다. 하지만, 겁이 나지 않는 건 아닙니다. 너무도 달라진 아들의 모습과 생각을 제가 이해하지 못하게 될까 봐서요. 아니, 평정을 잃은 저 자신조차도 감당하기 힘든 것은 마찬가집니다.여태껏 저는 쿨한 엄마라고 생각했는데 그 쿨함을 유지하기가 참으로 쉽지 않음을 겸허히 자백합니다.   

        

정확히 6일 뒤에, 아들이 집에 올 겁니다. 그 순간이 오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도 두렵네요. 아들은 지금 기말고사 공부를 하고 있었으면 참 좋겠는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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