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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효경 Dec 18. 2017

#19. <거꾸로 쓰는 육아일기>

셔틀, 비행기, 그리고 장발

대학 보냈던 아들이 집에 오는 길이 그렇게도 험난할 줄이야 몰랐습니다. 아니 집에서 기다리는 부모의 마음이 이렇게 험난할 줄 몰랐다고 해야 할까요? 오늘 새벽에 남편이 무슨 전화 소리가 들리지 않냐고 저를 깨우더군요. 잠결이라도 웬만하면 전화 소리 정도는 2층 침실에서도 잘 들립니다. 오늘 새벽엔 정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더군요. 전화 소리? 아무것도 안 들리는데? 하면서 코를 베개에 다시 묻고 자는 포즈를 취했죠. 남편은 이불을 박차고 아래층으로 내려가더군요. 순간, 지금 동부가 몇 시지? 새벽 4시 반이었으니까, 동부 시간으로 정확히 7시 30분. 아침 7시에 공항 가는 셔틀을 탄다고 했던 아들 녀석으로부터 전화가 온 게 아닐까 머리털이 쭈뼛하고 섰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남편의 격앙된 목소리가 들리더군요. 에쿠. 그렇지 않아도 이 녀석이 아침 일찍 오는 셔틀을 늦잠 때문에 놓치지 않을까 걱정을 하지 않은 건 아니었는데, 올 일이 왔구나 하며 이불을 박차고 단숨에 거실로 달려 나갔습니다. 내려가면서도 머릿속으로는 시간 계산을 하고 있었습니다. 설사 아침 셔틀을 놓쳤다 해도 너무 늦지 않았다면 택시라도 잡아타고 공항에 도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요. 30분 정도 늦게 택시를 탄다고 해서 비행기를 놓치지는 않겠구나 하는 생각만 잔뜩 하고 있었는데, 남편에게 전화를 받아 들자 아이는 가방이 전부 3개인데 체크인이 되지 않는다는 거예요. 순간 저는 머리가 하얘짐을 느꼈습니다. 셔틀에 승객이 많아서 짐 3개를 다 넣고 떠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했죠. 아이들이 죄다 방학을 맞아 동시에 집으로 향하는 철이니까요. 당연히 셔틀에 학생 손님이 많을테고저마다 짐을 하나둘 가져가면 작은 셔틀 버스에 사람과 짐을 다 싣지 못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전화를 했다고 생각하며,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머릿속으로 잠시 궁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가방을 하나 기숙사에 맡긴 채 그냥 셔틀을 타고 가라고 해야 하나? 셔틀을 포기하고 택시를 잡아타라고 해야 하나? 근데, 눈이 와서 택시가 이른 새벽부터 잡히긴 할라나? 등등. 어떻게 현명한 판단을 내려야 하나 정신이 없었죠. 잠결이라서 머리가 팍팍 잘 돌지 않는 것도 있었는데, 셔틀에 늦지 않을까 생각하며 깬 머리 상태라서 아들의 얘기를 셔틀의 상황으로만 생각한 거예요. 아무 말 못하고 잠시 공황 상태로 있는데, 남편이 옆에서 전화 내용을 듣더니 “체크인한다고 하잖아” 그러는 거예요. “아, 너 지금 어디서 전화하는 거야?”하고 아들에게 물었죠. 그랬더니 아들은 이미 공항에 도착했고, 가방을 체크인하려는데 가방이 3개를 다 부치려면 무려 210불이라는 어마어마한 벌금을 내라고 했다며, 그런데 자기 은행카드로는 돈이 부족해 결제가 되지 않는다는 거였어요. 그제야 안심이 되어서, 210불이라는 거금에 어이가 없다는 것도 생각할 겨를이 없이, 다만 셔틀을 놓치지 않고 무사히 공항에 도착한 게 너무나 다행이다 싶어, 걱정 말라고 하며 바로 은행에 돈을 입금해 주었습니다. 아이가 무사히 체크인을 마치고 게이트로 향한다는 메시지를 받고 안심하며 다시 잠자리에 들 수 있었고요.

 

새벽부터 호들갑을 떨고 나니 잠이 잘 오지 않았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며칠 전부터 아들이 집까지 무사히 잘 올 수 있을까 은근히 걱정이 되었거든요. 어젯밤에 그쪽 시간으로 알람을 맞추고 잘까 하는 생각도 하지 않은 게 아니었죠. 셔틀 시간에 늦지 않게 시간 맞춰서 애를 깨워줘야 하나 하는 걱정때문에요. 그것도 공부다 싶어 아들을 믿기로 하고 불편한 마음을 앉고 자기로 했죠. (자식을 믿고 도와주지 않는 게 내가 직접 챙기는 것보다 몇 배는 더 힘든다는 거 혹시 아시나요?!) 그렇지 않고 잤다가 새벽 전화를 받았으니 당연히 셔틀을 놓친 거로 생각했던 거였죠. 분명히 학교에서 공항까지 은근히 시간이 걸릴 거라 생각했는데, 30분 만에 도착한 시각도 착각을 일으키게 했던 이유 중의 하나였고요.


어디 이뿐이겠어요? 말하자면 걱정은 그것만이 아니었어요. 시애틀까지 오는 직항이 없는지라 시카고에서 한 번 갈아타야 하는데 중간에 갈아타는 시간이 티켓을 사고 보니까 채 1시간도 미처 되지 않는 거예요. 아이가 혼자서 비행기를 트랜스퍼해 본 적이 없었던지라 내려서 새 게이트를 잘 찾을 수 있는지, 혹시라도 연착되어서 두 번째 비행기를 놓치게 되면 어쩌나 집에 오는 길이 산 넘어 산이더라고요. 꼼꼼히 아이에게 주의를 줬고, 어떻게 게이트를 확인하는지 잘 일러주었습니다. 거기에 정신이 팔려서 사실 한 승객이 가방 3개를 들고 타면 얼마나 많은 벌금을 내고 타야 하는지 미처 생각을 못했던 거죠. 생각해 보니 요새는 1개 이상 과하게 짐을 부쳐 본 적도 없었던지라 어떤 일이 발생하게 되는지 전혀 경험이 없었던 거예요. 이런저런 생각으로 아침잠을 설치고 일어났습니다. 아이가 시카고에 내려 시애틀 비행기로 갈아타기 전에 전화하기로 했으니까 그때가 오기만을 기다리며 잠시 아침의 여유를 맛보고 있었죠.

 

여유가 너무 지나쳤던 걸까요? 시카고에서 탈 시애틀 비행기의 게이트를 찾아보고자 인터넷을 뒤져 보았습니다. 아이가 도착하면 바로 게이트를 알려 줄 요량으로요. 먼저 피츠버그에서 떠난 비행기가 연착되지는 않았을까 하는 마음으로 비행기 번호를 넣어 검색해 보니, 벌써 한 시간 전에 도착했더라고요. 이상하다 싶어, 다음 비행기를 서둘러 검색했죠. 제 눈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비행 출발 시간이 12시 15분인데 제가 검색하고 있는 순간의 시각이 12시 21분을 막 지나고 있었으니까요. 이게 어찌 된 일이지 싶었습니다. 아이가 엄마한테 전화하는 걸 잊고 비행기를 이미 탔겠지 하는 마음으로 그래도 혹시 몰라 아이에게 전화를 했어요. 그런데 전화를 찰칵하고 받는 거예요. 아직 이륙하지 않은 상태에서 좌석에 앉아서 받는 전화려니 하고 “지금 막 탑승한 거야?”라고 물었습니다. 아이 대답은 “아니, 지금 막 착륙했어요.” “뭐라고??? 지금 시카고에 착륙했다고? 시애틀행 비행기 이미 떠날 시간 지났어. 지금 빨리 뛰어서 게이트 26번으로 달려라. 이미 비행기 이륙했을지도 몰라” 아이도 어리둥절해서 급하게 게이트로 달려갔던 모양이에요. 가서 누군가에게 사정을 묻는 소리가 어렴풋이 전화선을 타고 들리더군요. 시애틀 가는 비행기 탑승이 이미 끝났냐고 아이는 물은 것 같습니다. 저는 숨을 죽이고 가슴 졸이며 듣고 있었죠. 어쩌다가 비행기가 연착해서 45분 안에 트랜스퍼를 못 마치고 시애틀 비행을 놓쳤나 싶은 낭패감을 안고서요. 그랬더니, 전화선 멀리에서 “Oh, I see…” 하는 아이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여기까지 읽으신 여러분,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요? 궁금해 죽겠는데 이 대목에서 무례하게 이야기 진행을 끊고 독자에게 느닷없이 질문이냐고요? 저도 너무 어이가 없고 황당했었던지라, 그때의 상황을 이렇게 전하지 않고는 가장 정확하고 현실감있게 여러분께 전달할 방법이 없어서 굳이 이 무례한 방법을 택합니다. 눈치 빠르신 분은 이미 간파하셨을지 모르겠지만, 정답을 맞히신 분들께 따로 상품권이라도 드리고 싶다는 얄궂은 마음이 드는걸 어찌하오리까?

 

아무튼 그렇게 호들갑을 떨고 나서야 아들이 시애틀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답니다. (지금, 화나셨나요? 정답은 다음 포스팅에 알려드리겠다고 약속드립니다) 휴우~ 참 긴 하루였네요. 새벽부터 지금 이 시각까지요.

 

아이를 데리러 남편과 함께 공항에 나가면서 가슴이 설레기는 했습니다. 멀리서 아들 얼굴을 찾으면서 가슴이 콩닥거리기도 했죠. 남편이 옆에서 “저기 멀리 서 있는 애가 우리 아들 xx가 맞아?” 하는데, 아이를 찾아 걸어가면서 쟤가 누군가 싶었습니다.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죠. 아이는 60년대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었어요. 지난여름 시애틀을 떠났을 때 그 머리 그대로 한 번도 자르지 않은 채 가발 같은 장발을 만들어 고 왔더라고요. 구멍이 숭숭 나고 올이 빠져 헤어진 검정 스웨터를 입고서요. 저 아이가 누군가 싶었죠. 태어나서 우리 아들 녀석의 이렇게 긴 헤어스타일은 본 적이 없습니다. 무슨 록 그룹의 헤드뱅잉 싱어도 아니고… 신기한 형상의 머리에만 온통 관심이 쏠려 아이를 바라보는데 아이는 씩 미소를 짓더라고요. 기념 삼아 사진도 한 장 찍었습니다. (이건 아이의 프라이버시로 공개하지 못함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검고 긴 장발 때문에 허연 얼굴은 핏기가 더 없어 보이고, 머리를 며칠 안 감았는지긴 머리 위로 기름기가 반지르르하고, 옷차림은 거의 홈리스 수준이었습니다. 남편은 옛날 가수 윤상을 닮았다면서 (윤상 씨에겐 죄송, 저는 절대 닮지 않았다고 증합니다) 인터넷에서 검색을 시작하더군요. 저는 아이의 뒤통수로 들쑥날쑥하게 자란 머리카락만 까치 궁둥이를 쳐다보듯 바라보았고요.

 

그렇게 아들이 집에 왔습니다. 차 안에서 오늘 저녁엔 한국 음식을 먹고 싶다고 태연히 주문을 하더군요. 한국 식당에 가서 비싼 음식 잘도 시켜 먹더니 웬 한국음식 타령이냐 했더니, 거긴 식당이 아니라 식료품점이었다네요. 마트에 가서 라면 사 먹은 거라면서. 어제 미리 만들어 두었던 갈비찜에 아이가 좋아하는 된장찌개와 군만두를 구워서 냈더니 허기졌던 노숙자가 밥상을 받아먹듯 밥 한 그릇을 순식간에 싹 비웠습니다. 아이는 집에 오자 마자 제 방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샤워를 하더니 항상 앉던 자기 식탁 자리에 앉아 그렇게 밥을 먹어 치웠습니다. 마치 아침에 나갔다가 저녁에 집에 돌아온 아들처럼 행동하는 아들을 보며 집이라고 편안한 마음이 드는가 싶어 헛헛한 웃음이 나네요.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나의 현장 육아가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중요한 항목 하나가 급하게 부상했습니다. 내일은 아침 일찍 미용실 예약을 하고, 아이를 데리고 헤어커트를 하러 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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