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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효경 Dec 23. 2017

#20. <거꾸로 쓰는 육아일기>

우리 아들은 잘 때가 제일 이뻐

아이들이 세상모르게 자고 있습니다어려서도 잘 때가 제일 이쁘더니만, 다 큰 아이들이 자는 것도 이쁘네요. 곧 19세 나이를 코앞에 두고 있는 청년들을 두고 이쁘다(?)는 표현이 적절하지 않은 줄 알지만, 육아로 지친 엄마에게 잠자는 아이가 도움이 되는 건 19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하네요. 보채고 칭얼대며 같이 놀아 달라고 조르던 어린아이가 마침내 홀연히 꿈나라로 이동했을 때 아기 엄마가 맞았던 신세계. 다시 찾은 나만의 시간과 공간이 너무 좋아 마치 이 짧은 마법의 시간에서 언제 깨어날까 조심스럽기만 했던 그 기억이 다시금 떠오릅니다.

 

방학이라 두 아이가 집에 오고 나니 분주해졌습니다삼시 세끼를 챙기는 일도 그렇지만, 아이들의 소음도 만만치 않네요. 우당탕 쿵쾅은 아니더라도 아래층 식탁에 앉아 있으면 샤워하는 소리, 걸어 다니는 소리, 흥얼거리는 소리, 게임하는 소리, 유튜브 소리, 냉장고 문 여는 소리, 혼자 말 또는 지들끼리 떠드는 소리 등등 다양한 소음이 조용했던 집 안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습니다. 히터나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가 전부여서 창 밖에 지나가는 다람쥐나 새가 날고 앉는 소리까지 들리던 예전과는 달라도 한참 달라진 집 안의 소리입니다.

 

아이들이 집에 가지고 온 물건도 집 안 풍경을 하루아침에 바꾸어 놓았습니다. 커다랗고 투박한 신발이 현관을 이미 점령한 지 오래이고, 깨끗했던 다이닝 테이블이 아이들의 노트북과 소지품 그리고 쓰고 난 크리넥스나 먹다 남은 쓰레기들로 하나둘 채워지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소지품만 집에 가지고 돌아온 것이 아니었어요전에 가지고 있던 무뚝뚝한 성품도 집을 나갈 때 그모습 그대로 전부 데리고 왔습니다. 말대답을 공손히 하지 않는 것에서부터 톡 쏘는 말버릇까지 소지품 챙기듯 잘 챙겨서 집에 왔습니다. 몇 번 말을 걸어 보다가 안 되겠다 싶어 한 번 화를 낼까 하다가도 집에 온 지 만 24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너무 심한 것 같아 참자, 하고 말았죠. 성깔이 장소 바뀐다고 어디 가나 싶기도 하고요. 대학 가면 철이 든다고 하더니 꼴랑 한 학기로는 철이 들기에 너무 짧은 시간이었나 봅니다.

 

어제는 오전에 치과 예약이 있어서 아이를 계속 자게 내버려 두지 못하고 깨웠어야 했습니다. 뭐 그리 이른 시각도 아니었죠. 오전 10시에 일어났으니까요. 몇 번을 깨우러 올라갔었는지 모릅니다. 첫날이라서 잠자고 있는 아이의 얼굴에 대고 나긋한 목소리로 “xx야 일어나.. 아침 먹고 치과 가야지”라고 오랜만에 엄마의 애정을 가득 담아 깨웠죠. 잠이 푹 들어 있던지라 용기를 내어 잠자던 아이의 머리를 오랜만에 쓰다듬어 보기도 했고요. 다행히도 아이의 반항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내려왔는데 여전히 주무시고 계시는 거예요. 또 올라가서 좋은 소리로 일어나라고 했죠. 마음 같아서는 이불을 확 걷어차고 “빨리 안 일어나?”라고 하고 싶었지만, 집에 돌아온 첫날이라는 이유만으로. 

  

몇 번 실랑이를 한 뒤 겨우 일어났습니다아침 먹고 가겠냐고 했더니 노트북만 먼저 들춰보더니 아침 생각이 없다고 하더군요. 치과 예약 시간보다 한 30분 정도 여유가 있어서 몇 시까지 준비하라는 말만 하고 놔두었지요. 헐렁한 츄리닝 차림이긴 했지만, 준비가 다 된 줄 알았으니까요. 나갈 시간이 되어 문을 나서며 아이더러 가자고 했더니, 그제야 이빨을 닦고 (치과를 가니 닦은 거겠죠?), 옷을 갈아입고 그러는 겁니다. 문 앞에서 2층 계단을 올려다보며 소리를 빽 지를까 하다가 과거의 악몽이 떠올랐습니다. 아침마다 바로 그 자리에서 아이들에게 “너희들 빨리 안 나와? 지각하겠다.” 하며 고함고함 치던 저의 불행했던 그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이건 아닌데 하며, 조용히 이를 악물고 참기로 했죠. 그때의 불행이 다시 이 집에 발을 디디지 못하도록. 굳은 자세로 문 앞에 서서 아이를 기다린 게 족히 5분은 더 걸렸을 거예요. 저에게 그 5분은 마치 15분처럼 느껴졌고, 견딜 수 없는 시간처럼 느껴졌지요. 단순히 시간이 지체됨에서 받은 괴로움이라기보단(사실 5분이야 아무것도 아니니까요), 녀석의 미리미리 준비하지 못하고 막판에 가서 하는 저 고질병이 아직도 여전하다는 것을 몸소 체험하게 되는 그렇게 피하고 싶었던 불쾌감 때문이었겠죠. 아… 정말 아이들이 집에 다시 돌아온 것을 실감합니다. 변하지 않은 자신들의 모습을 고스란히 가지고 말이에요. 

 

어제는 아이가 전날 인터넷에서 주문한 옷이 배달이 되었더랍니다아이가 집에 오자마자 그다음 날 저에게 묻더군요. 나지막한 목소리로 (돈 달라고 할 때 쓰는 가장 젠틀한 목소리로), “엄마, 나 옷 사게 돈 좀 주세요” 이 말에 역시 내 아들 맞구나 했습니다. 지구가 내일 종말 할지라도 오늘 나는 인터넷 쇼핑으로 옷을 주문할 것이다. 이게 제 아들의 삶의 철학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요. “그래, 얼마나 필요한데?”하고 물었죠. 엊그제 입고 왔던 헤어진 스웨터가 하필이면 이 때 눈 앞을 스쳐갔을까요? 그렇게 주문했던 옷이 이틀 만에 도착해 집에 왔습니다. 아이는 환호성을 지르며, 정신없이 상품을 열어 보더군요. 블레이저 두 개를 샀는데, 맙소사… 그중 하나는 테일러의 실수인지 멀쩡한 재킷을 무슨 만화영화 속 아수라 백작 얼굴처럼 왼쪽과 오른쪽을 각각 다르게 만들었더군요. 지킬과 하이드 1인 2역 하는 연기자나 입을 법한 그런 연기복처럼 말이에요. 이게 제대로 된 옷인가 물을 새도 없이, 반 쪽이 각각 색깔마저 다른 옷을 입고 만족해하는 반쯤은 덜떨어진 아이의 모습에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아이는 거울에 요리조리 옷맵시를 보며 사뭇 흐뭇해했습니다. 어이없어하며 연 이은 감탄사를 남발하는 내 모습에 아이는 엄마가 요새 유행을 몰라서 그런답니다. 이런 유행은 적어도 제가 사는 시애틀 근처에서는 본 적이 없는 유행입니다. 대학생 유행이 아닌 것은 확실하고 (제 직업상), 그렇다고 한국의 아이돌 스타의 유행도 아닌 것 같은데, 미국 할리우드 셀럽의 스타일인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무슨 유행이 이 지구 상에서 일어나고 있는지 도무지 모르겠지만, 심지어 블래이저 뒤 아래 단의 길이마저 다르게해서 이렇게 평범한 사람의 심장을 놀라게 할 패션이라는 것이 도대체 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 대목에서 아들 녀석의 반응을 심각하게 떠본 중요한 질문이 하나 있었습니다

 

야, 너 패션을 이렇게 좋아하니 (그것도 남들이 이해할 수 없는 시대를 앞서가는 패션으로), 패션계를 네 장래 커리어로 삼아야 하는 거 아냐?” 저는 이 말을 두렵지만 정말 진지한 마음에서 했습니다. 아이의 재능이 패션에 있다면 이 길이야말로 저 아이가 걸어가야 할 바른길이라는 생각에. 비록 제 마음에 내키는 일은 아니었지만, 이제껏 아들의 관심이 패션과 게임을 능가한 것을 본 적이 없기에 겸허히 인정할 수밖에 없는 지극히 당연한 생각의 고리였죠. 그랬더니 아들 녀석의 답은 일초의 주저함도 없이 의외로 명쾌합니다.

 

나는 그냥 패션을 입고 즐기는 거지. 이걸 공부할 생각은 추호도 없어.”라고요. 그러시겠죠. 당연히… 뭐든 공부하는 게 쉽냐고요?!

 

한 녀석의 미친 패션을 감상하느라 정신이 혼미한데다른 녀석이 질세라 그 혼미함에 정점을 제대로 찍습니다. 


잠깐, 생각해 보니 이제까지 저희 아들 두 녀석의 패션 감각에 대해서 이 육아일기에 언급한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네요. 이들의 패션 감각으로 말하자면 이미 유아기 시절 3세에 그 화려한 데뷔를 시작했다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네요. 3세가 되기 시작하면서 자기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옷은 양말 한 짝이라도 맘대로 입으려 하지 않았거든요. 남들이 선물이라고 사다 준 멋진 옷들을 옷장 속에 그대로 처박아 두었다가 남 좋은 일만 시킨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까요. 유치원에 가면서부터 자기들이 좋아하는 옷이 아니면 절대로 입으려 하지 않았기에 옷 쇼핑을 갈 때 귀찮지만 애들을 데리고 다녀야 했다는 점. 그래서 세일할 때 아무거나 살 수 있는 쾌재를 저는 별로 누려보지 못했다는 것. 그러다가 언제부턴 가는 아이들과 옷 쇼핑 가기를 꺼려하기 시작했고(제가요! 하두 까다로워 고르는데 시간이 너무 걸려서요), 그러다 보니 아이들의 쇼핑은 백 퍼센트 온라인을 통해서만 입고되기 시작했다는 사실에 대해서요. 이건 아이들의 패션에 관한 한 단면을 말씀드리는 것이고요, 사실 그 패션의 심오한 세계란 피카소의 추상화보다도 이해하기 힘든 것이라 언제 날을 잡고 깊이 있게 이야기를 나눠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들의 패션 안목이란, 사실 색상과 디자인의 선택에 있어서 또래의 아이들로부터 추앙받는 경지에 이른 지 오래이니까요. 그것이 과연 또래의 진정한 동의를 얻어서이든 아니면 그저 독특하다는 것에 열광하는 아이들의 무모함인지 모르겠지만.

 

아까 하던 이야기를 이어서 하자면다른 아들 녀석이 저를 놀라게 했던 패션은 꼭 옷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장식품이었죠. 다름 아닌 귀고리입니다. 워낙 소싯적부터 남들 안 하는 귀에 구멍을 뚫고 십자 귀고리나 보석이 박힌 귀고리 내지는 작은 링을 걸고 다녔기에 남자아이들이 하는 귀고리라면 인제야 그다지 놀라울 것도 없습니다. 처음엔 당연히 반대했었지만, 이것도 양보하고 나니 대수롭지 않은 일이 되더군요. (아이들과의 양보는 도대체 어디가 끝인지...) 그런데, 이번에 이 녀석이 어디서 원조를 했는지 모르겠지만 귀에 찬 귀고리는 '고리'의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귀에 단 거대한 밧줄! 수준의 그것이었습니다. 거의 어깨까지 내려오려고 하는 그 길고 단단해 보이는 쇠줄의 다발이란?! 한쪽 귀 아래를 묵직하게 흐느적거리고 있었습니다. 보석이 박혀 있지는 않았지만, 실버 빛깔의 그 찬란함이란 요새 크리스마스트리의 장식보다도 더 화려했다고 해야 할까요? OMG! 는 이럴 때 써야 하는 최강의 감탄사가 맞을 것 같습니다. 오 마이 가드!!!!

 

휴가를 내고 집에만 있는데도 벌써부터 육아로 인해 몸과 마음이 몹시 피곤합니다엄마에게 아이들은 잘 때가 가장 이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세 살배기가 낮잠을 자든 19살 다 큰 아들이 늦잠을 자든 그렇게 좋더라는 누군가의 이야기가요. 이 이야기도 아이들이 자고 있으니 가능했다는 그런 이야기 말이에요.  


<참고로 지난 #19회에 드렸던 질문에 대한 정답은 시차였습니다. 좀 더 정확히 설명하면 피츠버그는 시애틀과 3시간차인데 비행기를 갈아탄 시카고는 2시간 차이였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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