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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효경 Dec 30. 2017

#21. <거꾸로 쓰는 육아일기>

신의 아들도 피해가지 못하는 한국 국적법

인생이 참 만만하지 않습니다해외든 한국이든 대한민국의 뿌리를 가진 자들에게는 더 그렇습니다. 병역의 의무가 나라의 안보와 직결되는 남자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고요. 미국 뉴욕 맨해튼 한복판에서 미국의 시민권자로 태어났다 한들 아무 소용 없습니다. 이역만리 멀리 떨어져 있다 해도 모국이 뻗치는 손아귀에서 빠져나가기란 절대 쉽지 않음을 깨닫습니다.

 

인종차별로부터의 평등을 구현하는 일이 미국의 국가적 고민이라면한국은 모든 남성에게 병역의 의무를 평등하게 나뉘게 해야 할 문제가 있다고 할 수 있겠죠. 

 

그 목적으로, 현재 한국의 국적법에 따르면 부모 중 한 명이라도 한국인의 국적을 가지고 있을 때 자녀가 출생하면, 그 자녀는 출생지 및 거주지와 상관없이 한국 국적을 자동 부여하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교포 2세가 받아야 하는 억울하고 부당한 사례들이 참으로 비일비재하죠. 제 아들이 딱 그런 케이스에 걸려들었습니다.   

 

#7화에서 말씀드렸듯이, 별스러운 제 아들 녀석이 한국으로 대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한국으로 유학을 가는 셈이죠. 여기까지 온 길도 쉽지만은 않았더랍니다. 갑자기 푸른 초장과 같았던 아이의 인생길이 사막으로 바뀌는 듯했고, 맑았던 하늘에 먹구름이 끼어 천둥과 번개가 치는 듯한 길을 경험했으니까요. 모든 걸 내려놓고 잠시 쉼터를 찾았다 싶었는데, 지금은 온 세상이 꽁꽁 얼어붙어 버린 눈보라 속을 걷는 기분입니다. 이게 다 국적법 때문입니다. 원정 출산으로 인한 병역기피자를 색출해 내기 위해 교포들이 국적을 이탈해야 하는 번거로운 절차가 생긴 덕분이죠. 이탈하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마찰과 예상치 않은 걸림돌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눈보라가 언제 그칠지 겨울이 지나고 봄이 다시 오기는 할는지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네요. 그 눈보라 속 이야기를 지금부터 들려드릴까 합니다. 

 

엊그제 한국의 대학교 등록 예치금을 내고 기숙사 소식만 기다리고 있을 때였습니다. 학기가 시작되려면 이제 불과 두 달 정도밖에 남지 않았거든요. 아이를 한국에 언제쯤 보내야 하나 막연하게 스케줄만 생각하고 있었죠. 이김에 저도 잠깐 한국에 다녀와야 하지 않을까 하며 휴가를 낼 수 있을까 들뜬 고민을 하면서요. 그러다가 아이가 한국에 들어가려면 유학 비자를 받아 둬야 하는 게 아닐까 싶어 영사관에 연락해 보았습니다. 아이는 미국에서 태어난 시민권자이지만, 현재는 국적법으로 인해 선천적 복수국적자 즉 한국 국적이 살아 있는 상태였거든요. 지난 2월에 한국 국적 이탈 신청을 기간 내에 신청해 두긴 했지만, 이탈 신청한 지 벌써 10개월이 다 되었는데도 절차가 끝나지 않은 채 아직도 소식이 깜깜한 거예요. 절차 기간이 길어서 지난번 여름에 아이가 잠깐 한국에 어학연수 가겠다고 다녀갔을 때도 출입국 관리 사무소에 잡혀 조사를 받고 쉽게 입국하기 힘들었던 일도 있었지요. 

 

국적 이탈 절차라는 것이 해외에서 사는 저희와 같은 이민자에겐 어처구니없는 과정을 거치게 합니다. 국적 이탈을 위해선, 존재하지도 않았던 국적을 만드는 과정부터 필요하거든요. 그러기 위해, 18년 전 미국에서 태어난 아이의 출생 신고를 뒤늦게 한국에다 해서 억지로 국적을 만듭니다. 이탈하기 위해 국적을 만드는 한심한 구조인 셈이죠. 근데 문제는 이탈 절차가 꽤나 복잡하고 길다는 데에 문제가 있습니다. 이탈이 신청했다고 자동적으로 주어지는 것도 아니고요. 혹시라도 이탈 절차가 완전히 끝나지 않은 기간에 한국을 방문하게 되면 서류상 한국 국적 소유자가 되어 있기 때문에 미국 여권을 들고 한국에 입국할 때 문제가 발생합니다. 공항에서조차 “너 왜 한국인인데 미국 여권으로 들어오는 거야?” 하는 질문에 시달리게 되죠. 입국이 거절되는 수도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그 절차 기간을 위해 한국 여권을 만들 수도 없는 일이고요. 말하자면, 이탈할 나라에 왜 방문하는 거냐 하는 식의 대접인데 환영 받을 생각이야 추호에 없지만 불편한 것은 물론 불이익까지 생기게 하는 방식이라는 데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병역 때문에 애꿎은 교포 2세를 한국인 국적을 억지로 부여해 그걸 빌미로 오라 가라 말라 잔소리하고 성가시게 하는 과정을 거쳐야 할 필요가 있냐고요.  

 

아무튼, 바로 그 이유로 인해 지난여름 아이가 한국 대학에 원서를 넣을 때도 외국인 전형으로 넣지 못하고 애매하게 재외국민 12년 전형으로밖에 지원할 수 없었던 어이없는 사연도 꼼짝없이 받아들였어야 했습니다. 그때야 뭐 한국 대학에 원서 한 번 써 본다는 생각으로 한 것이라 치명적이라고 생각하진 않았습니다. 아이만 원했지, 부모인 저야 한국으로 대학을 보낸다는 게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합격 여부를 좌지우지할 지원자 요건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었으니까요. 

 

푸대접과 잔소리에 입학 지원 자격을 바꿔야 하는 정도로 그치면 다행이죠하지만, 그게 아이의 미래에 발목을 잡게 된다면 좀 심각한 일 아니겠어요? 이 문제가 또다시 제 아이의 발목을 잡게 생겼습니다. 3월에 시작하는 학교에 가기 겨우 두 달 전에 와서까지 한국 국적법이란 것 때문에.

 

요는 이렇습니다. 국적 이탈 절차가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한국에 나갈 수 없다는 겁니다. 체류는 둘째치고 이탈 절차가 완료되지 않은 상태에서 한국에 나가 그것도 학교에 다니게 되면 이탈을 시켜 주지 않을 위험이 있다고 합니다. 남자아이에게 한국 국적 이탈이 되지 않는다는 말은 바로 병역의 의무를 져야 한다는 얘기가 됩니다. 한국 대학에 유학 가려다가 군대 먼저 갔다 와야 한다는 얘기인 셈이죠. 이게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이야기란 말입니까?

 

아이는 한국 유학을 결정했기에이미 한 학기 다니던 피츠버그의 대학을 그만두고 모든 것을 정리하고 왔습니다. 인제 와서 국적이 탈 때문에 3월 봄학기에 입학을 못 하게 될 지경이 말이 되는 얘기인가요? 한국으로 대학 가려다가 이도 저도 아무 데도 가지 못하고 공중에 붕 뜨게 되는 엉뚱한 사고가 나게 생긴 겁니다. 

 

이런 딱한(?) 상황을 고려해 이탈 절차를 좀 신속하게 처리해 줄 수 있는지 출입국관리 사무소에 전화로 문의를 드렸지요. 그랬더니 국적 이탈 절차에 예외는 절대 없다고 합니다. 이렇게 사람을 물 먹이는 방법이 또 있나 싶습니다. 한 아이의 장래가 달린 일인데 절차가 빨리 되기만을 기다리라는 것은 너무 무책임한 일이 아닌가 싶네요. 그래서 또 여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한국에 일단 입국한 뒤에 이탈 절차가 완료되면 그때 한국에 있으면서 비자 신청을 받을 수 없냐고요. 이탈 전에 입국해서 체류하다가는 이탈마저 되지 않을 거라는 엄포만 받고 말았습니다. 아… 이제 어쩌면 좋죠? 설마 이 문제가 복병이 될 줄이야 상상도 하지 않고 있었던 일이었는데 말입니다. 

 

되지도 않을 하소연을 출입국 관리 사무소 직원에게 하며 이런 경우에 어떻게 해야 하냐고 볼멘소리를 해댔습니다. 그 상황에서 전화를 그냥 끊을 수는 없었거든요. 마냥 기다린다는 게 얼마나 난감한 일인지 여러분들도 상상이 가지 않으신가요? 아무리 늦어도 2월 말에는 기숙사에 들어가야 하고, 3월 초 개강인데 언제까지 이탈 절차만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잖아요. 이탈 절차 후에도 유학 비자를 받아야 하는 일 처리도 아직 남아있는데 말입니다. 한국 대학에서의 대망의 새 학기를 이렇게 황당하게 시작할 수는 아니 시작도 못 해 볼 수는 없는 일이잖아요. 

 

한국어로 말해서였는지 한국 직원에게 주저리주저리 이야기했습니다한국의 직원들이 친절해서인지 제 전화를 매몰차게 끊지는 않더군요. 직원은 잠깐 기다리라고 하더니 자기보다 위 선의 상사에게 연결하면서 뭔가 방법이 있는지 함께 모색해 주려고 노력을 하더군요. 아무리 좀 더 높은 상사가 전화기를 붙잡고 다른 방도가 없다고 같은 답을 듣게 되는 한이 있더라도, 몇 명이라도 좋으니 계속 누군가와 상의를 하고 사정을 이야기해 보는 일 밖에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거든요. 듣다 못 한직원이 출입국 관리 사무소의 본부 담당자에게 연락해 보라며 전화번호를 알려 주었고요. 

 

본부 담당자라는이 분도 제 사정에는 별 관심이 없으셨습니다다만, 원정 출산이 아닌 경우가 확실해 보이니 별 탈 없이 이탈 절차가 될 것이라는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절차를 하루라도 앞당길 수는 없다고 단호하게 말씀하시며, 나름대로 절차에 대한 상황 설명을 좀 더 자세히 해 주셨어요. 그래도 이 출입국 관리사무소의 담당 직원이라는 분으로부터 그나마 위로가 될 만한 답을 얻었습니다. 워낙 이탈 절차가 11개월에서 12개월이 걸리는 일인지라, 저희 아들의 경우 아직 11개월이 채 되지 않았기 때문에 1달 정도 기다렸다가 다시 연락하면, 그때 가서 서류에 별 하자가 없다는 전제하에, 11개월 이내에 수속할 수 있게 해 보겠다고 말입니다. 지푸라기라도 잡을 마음인데 이 말을 들으니 얼마나 마음이 한결 놓았습니다. 가능성이 전혀 없어 보이지는 않았으니까요. 감사하다고 몇 번을 전화통에 대고 고개를 숙이며 전했는지 모릅니다. 제 목소리가 미국 촌놈 아줌마의 세상 물정 모르고 고마워하는 소리처럼 들렸는지, 이 담당자라는 분은 “제가 뭐 특별한 예외로 처리해 드리는 게 아닙니다.” 하며 냉정한 마지막 멘트를 남기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래도 그가 전해 준 말 한마디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어요. 

 

저는 전화를 끊고도 한참 동안 이 담당자분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하나도 잘 해준 게 없다는데 (그리고 그게 사실인데) 왜 그렇게 고마웠던 걸까 하면서 말입니다. 미국이라면 절대로 이렇게 여러 명의 안내원에 담당자까지 직접 통화할 수 없었을 것 같습니다. 담당자가 직통 전화번호까지 건네주며 한 달 후에 다시 전화하라는 말도 남기지 않았을 것 같고요. 제가 이렇게 길게 통화에 통화를 이어갈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행정 업무에서는 까다롭고 냉정하기 짝이 없는 게 미국 사람들이 일 처리 방식이니까요. 

 

하소연하는 사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주고가능하면 담당자를 통해 해결 방안을 찾아 주려고 했던 출입국관리 사무소 사람들의 친절과 배려에 같은 한국인으로서의 정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면 저만의 지나친 감상일까요? 제가 정말 미국 촌놈 아줌마가 맞는다는 증거일 뿐일까요?

 

한국에 계신 엄마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해 드렸더니엄마는 한술 더 뜹니다. 그 담당자라는 분에게 다시 전화해서 사정 설명을 더 하라는 겁니다. 아이의 딱한 사정을 자세히 알아 듣게 얘기해 주고, 한국을 얼마나 좋아하면 대학까지 가겠냐며 있지도 않았던 모국애를 앞세우라면서요. 거기다가 부모의 신원까지 밝혀 믿을 만한 신원인 것을 전달하면 더 잘 이해해 줄 거라면서요. 참고로 반공시대를 사신 저희 엄마는 신원(!)이 그렇게도 중요하신지 이 말씀을 그렇게도 자주 하십니다. 사람 일인데 인정을 앞세워야 한다느니 하시면서요. 엄마에게 저도 한 마디 전했습니다. 이 담당자가 절대로 제 사정을 봐준 건 없다고요. 특별히 대우해 주는 것도 없고, 단지 다시 전화해 변경이 가능한 범위에서 조정을 시도해 보라고 안내해 준 것 밖에는요. 엄마는 요새 문재인 정부 들어서 공직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정신 차리고 일하나 보다, 하는 말씀을 하시며 허허허 웃으셨습니다. 평소에 저보다 걱정이 많으신 엄마가 훨씬 더 걱정하지 않으시는 눈치였고요. 2월 초에는 비자 잘 받을 수 있을 거야 하시면서 마치 엄마가 출입국 관리사무소의 서류심사를 주관하는 사람의 말투처럼 말씀까지 하시네요. 그러면서 한 말씀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으셨습니다. 한국에서 대학 가기가 얼마나 힘든데, 그런 어려움도 없이 쉽게 한국으로 대학 오는 게 가당키나 한 얘기냐면서요. 

 

하하하. 이건 또 무슨 할머니다운 논리인지 모르겠습니다만, 한국으로 가는 길이 정말 어렵긴 하네요. 이 대목에서 저도 아이에게 한 마디 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야, 이것 봐라. 한국이 널 반기지 않는 것 같다. 그래도 한국에 가고 싶어?”라고요. 병역의 의무를 지지 않은 한국의 후손 남아들을 반기지 않는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아직도 끝나지 않는 문제로 인해 한국 대학 이야기로 인한 해프닝이 앞으로 두 달간은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국적 이탈은 그렇다 치고, 이제 한국 대학에 알려야 할 차례입니다. 재외국민으로 입학했는데 학교 시작하기 전에 외국인으로 자격이 변경된다. 입학과 비자를 받는 데에는 별문제가 없겠지요? 이렇게 이메일을 보내 놓고 답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국으로 대학 가는 일이 만만하지 않은 건지, 참으로 인생이 만만하지 않아 보이는 요즘입니다. 

 

한국에서는 입시 지옥에 병역의 의무를 다 지고도 꿋꿋이 살아가는 젊은 남아들이 많은데 이 정도 고민이야 고민도 아닌 거겠죠? 재외국민 전형에 외국인 자격으로 한국으로 유학 가는 신의 아들을 둔 어미가 죄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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