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일즈맨의 죽음> 아서 밀러
F학점을 받은 아들이 있어 본 부모라면 공감할 책? 고등학교 최종 성적의 조건부 대학 입학을 코앞에 둔 12학년 (한국식으로 고3) 자녀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성적 때문이든 뭐든 만나면 으르렁대고 싸우는 부자간의 갈등이 있는 가족에게도 물론 공감이 갈 책이다. 허구한 날 아들과 부딪히는 남편과 자식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는 아내에게도 이 책의 이야기는 마치 자기 집 거실의 풍경을 보듯 생생하게 전해진다.
전도유망했던 자식에게 가졌던 꿈이 무참하게 무너지고, 자신의 세일즈 직업도 불황을 타면서 가장이라는 아버지의 무거운 짐을 져본 이 세상의 아버지들은 어떨까? 그들 모두 이 책을 읽으며 자신과 비슷한 생을 살다 간 극 중 인물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은 물론 자기 연민을 보태 한없이 처량해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불행하게도 무거운 삶의 무게에 못 이겨 스스로 목숨을 끊은 남편의 아내나 가족에게는 눈물이 앞서 책을 읽기 힘들지도 모르겠다.
젊은 날 놈팡이 자식으로 부모 속을 어지간히 썩게 했던 자녀들은 어떨까? 극 중 첫째 아들 비프처럼 F 학점이 될 뻔했다가 간신히 구제를 받았던 내 자식에게 이 책을 마침 읽어 봤다고 하기에 호기심에 물었다. 책 어땠어?라는 질문에 아들은 세일즈맨의 어이없는 죽음을 기록한 글이라는 엉뚱하고 성의 없는 대답만 건네준다. 역시 책은 읽는 독자가 누구 인가에 따라 달리 읽힌다는 단점이자 장점이 있음을 다시금 실감한다.
어떤 책을 언제 만나는 가도 치명적이다. 난 이 책을 아들의 고등학교 졸업식 다음 날 만났다. 아들은 극 중 인물처럼 졸업반 마지막 학기의 수학 성적에서 바닥을 쳤다. 대학 합격은 오래전에 이미 받아 놨는데, 이대로 가면 수학 과목의 낙제 점수 때문에 입학 허가증이 취소될 형편이었다. 마지막 남은 고등학교 기간 내내 걱정이 산더미처럼 쌓여갔다.
남편은 이 일로 아들과 참 많이 싸웠다. 어이없는 성적을 낸 아들에게 받은 실망은 물론, 성적을 올리려고 노력하는 모습조차 보이지 않는 아들을 보며 격하게 분노했다. 자식을 잘못 키웠다는 자책과 함께. 남편이 이렇게 아들 때문에 속상해하는 모습을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남편은 입으로 불행하다는 말도 서슴지 않고 내뱉었다. 얼마나 속이 상하면 저럴까 싶었다.
엄마인 나도 올라갈 기미가 보이지 않는 아들의 성적 때문에 가슴이 쪼그라들었다. 장학금까지 받아 둔 대학 입학을 마지막 한 해의 성적 때문에 날릴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밤잠을 설치게 했다. 대학을 못 가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도 두려움이지만, 남들에게 이 사실을 어떻게 알려야 할지 벌써부터 밀려오는 창피함 때문에 매일 밤 아들의 성적을 채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불덩이 같은 성화 때문에 남편을 진정시키느라 나는 정작 아들에게 화 한 번 제대로 내지 못했던 것 같다. 서둘러 과외를 보내서 무마해보려고 해도 마음만큼 성적이 쑥쑥 올라주지 않았다.
아들에게서 최선을 다해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이라도 봤으면 남편과 나의 마음에 멍이 덜 들었을지 모르겠다. 아들 녀석은 무슨 배짱인지 공부해서 성적을 올릴 생각은 하지 않고, 밤낮 책상에 앉아 무사 태평하게 컴퓨터 게임과 딴짓을 하기가 일쑤였다. 이런 낭패감을 졸업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느껴야 했다. 온 가족이 모여 화목한 시간을 보내야 할 저녁 밥상머리는 늘 남편과 아들의 언쟁 내지는 남편의 일방적인 훈계와 격앙된 언성으로 채워지면서.
남편은 급기야 학교 선생을 만나러 찾아갔다. 아들 대신 선생에게 사정을 하고 성적을 만회할 기회를 달라고 부탁을 했나 보다. 앞으로 남은 한 달간 재시험을 쳐서 성적을 올리고 숙제를 꼬박꼬박 모두 해 오라는 분부를 받았다. 아주 절망적일 줄 알았는데, 마지막 기회가 남아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한결 놓였다. 부모로서의 자존심은 가차 없이 구겨졌지만 아들은 겨우겨우 낙제가 아닌 점수를 받아 졸업할 수 있었다.
책의 극 중 아들 비프와 아버지 윌리의 이야기와 흡사하다. 비프는 고등학교에서 미식축구 선수로 대학 입학을 미리 허가받은 장래가 촉망되는 학생이었다. 그러나 마지막 학년 수학 점수에서 낙제해 대학을 가지 못하게 될 지경에 놓인다. 위급한 마음에 아들은 세일즈로 출장을 나갔던 아버지를 찾아간다. 아버지는 당장 다음 날 학교 선생을 만나 도움을 요청해보기로 하며 아들을 달래는데, 여기서 터지지 말았어야 할 사건이 터지게 된다. 아버지가 출장 중에 어머니 몰래 외도한 사실이 아들 앞에서 폭로되고 만다. 아들 비프는 아버지의 위선에 실망해 호텔을 뛰쳐나가고 그 뒤 아들은 방황하는 삶으로 전전긍긍하며 살게 된다.
이 사건은 희곡의 거의 마지막 부분에 가서야 밝혀지는데, 아들과 아버지 간에 사이가 안 좋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무엇인지 처음부터 궁금해하던 독자의 의문을 마침내 풀어 준다. 아버지의 기대를 저버리고 놈팡이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아들의 운명에 단서가 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잘못된 선택 하나가 사람의 운명을 좌지우지한다. 아들이 F 학점을 받지 않았더라면, 아버지가 외도하지 않았더라면, 아들이 그 외도 사실을 목격하지 못했더라면, 이들의 삶은 과연 얼마나 다른 길로 전환되었을까?
남편과 나는 아들의 성적으로 인해 생각하기 싫은 인생의 다른 노선을 상상해 봤어야 했다. 아들의 대학 입학이 취소된다면, 2년제 전문대학으로 다시 원서를 넣어야 했다. 그것도 이미 원서 접수의 기간이 지나 만만치 않아 보였지만. 그때 눈앞에 밀려오는 절망감이란 이루 다 말할 수가 없다.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아들에게 인생을 이렇게 한순간에 망치고 싶냐고 얼마나 다그쳤는지 모른다. 지난 11년 동안 잘 참고 견뎌온 본인의 인생이 억울하지 않냐고 따졌다. 인생의 중요한 길에서 낙오자가 될지도 모를 처량한 아들의 모습을 봐야 하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내게는 우려했던 일이 다행히 현실이 아닌 상상으로 끝났다. 동병상련의 처지에 있고 보니, 극 중 인물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가늠하기조차 벅차다. 아버지의 외도를 목격한 아들의 지워지지 않을 마음의 상처, 아들의 유망했던 장래가 쓰레기통으로 들어가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던 아버지의 상심했을 그 마음. 안타까운 건, 이 두 사람은 서로가 주고받은 상처 때문에 나머지 인생 길이 더욱 험난해진다.
아래 두 부자간의 팽팽한 대화가 앞으로 닥칠 더 큰 불행을 암시한다.
윌리 (아버지): 반항심으로 네 인생을 두 동강 냈다는 것을 알 길 바란다. 감히 나를 원망할 생각일랑 말고.
비프 (아들): 반항한 게 아니에요. 전 그냥 이렇게 생겨 먹은 놈이에요. 그뿐이라고요. 아버지는 진실을 알아야만 해요. 아버지는 누군지, 나는 누군지.
아들 비프의 절규가 가슴에 와 닿았다. 아버지는 누군지 나는 누군지 알아야 했다. 아버지는 아들 비프가 이미 잘못된 인생의 버스를 타고 먼 곳으로 떠나갈 수밖에 없음을 인식하지 못했다. 설사 인식했다 해도 현실로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다. 언제나 아버지의 마음속에는 고등학교 시절 유망한 미식축구 선수로 이름을 날리던 자랑스러운 아들만이 기억되고 있었으니까.
한순간의 실수로 인생의 버스를 잘못 탔다 해도, 그것을 바꾸고 돌이키고자 하는 의지가 강한 사람에게는 고통스럽긴 하나 바꿔 탈 기회는 아직도 존재하는 것이 인생이라고 볼 때, 아들 비프는 그 길을 걷고자 노력한 사람이라고 보기는 쉽지 않다. 그런 면에서 아버지는 아들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고, 아들에게 무지했던 자신의 어리석음이 비극을 초래했다고 봐도 무리는 아닐 것 같다.
아버지 윌리가 왜 그렇게 오랫동안 아들에 대한 희망을 놓지 못하고 무너진 꿈속에서 괴로운 삶을 살아야만 했을까 생각해 본다. 나는 그 이유를 그의 직업이라 생각한다. 세일즈맨은 항상 누군가에게 자신의 상품을 선전하고 팔아야 한다. 설사 상품이 그만큼의 가치가 없다 해도 세일즈맨의 생명은 상품의 가치에 대한 흔들림 없는 신뢰이다. 타인에게 상품을 팔기 위해 선 그런 신뢰(맹신?)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아버지 윌리가 세상을 떠나자 그의 친구가 인상적인 말을 남긴다.
“세일즈맨은 인생의 바닥에 머물러 있지 않아. 세일즈맨은 구두를 신고 하늘에서 내려와 미소 짓는 사람이야. 사람들이 그 미소에 답하지 않으면 그게 끝이지… (중략) 세일즈맨은 꿈꾸는 사람이거든. 그게 필요조건이야.”
세일즈로 인생을 세일하다 끝장난 아버지 윌리, 그에게서 인생은 세일즈가 아님을 배운다. 인생은 파는 게 아니라 사는(!)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