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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효경 Jan 02. 2018

톰 소여 vs 방탄소년단

<톰 소여의 모험> 마크 트웨인

마크 트웨인은 머리말에서 나이 든 어른들에게 이 책을 이렇게 어필하고 있다. 


“나는 주로 소년 소녀들을 즐겁게 해 주기 위해 이 책을 썼지만 그런 이유 때문에 어른들한테서 외면당하지 않았으면 한다. 한때 자신들의 모습이 어떠했는지,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고 이야기했는지, 그리고 때때로 어떤 이상한 짓에 몰두했는지 어른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회상하도록 하는 것이 내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어려서 읽었어야 했던 책인데 너무 늦게 읽어서인지 그 감동이 생각보다 못했다. 책에도 적정 나이에 맞는 유효기간이 있나 보다. 세계문학 전집에 포함되어 있기도 하고 저자가 마크 트웨인이기도 해서 어린이 책만은 아니겠지 하는 마음으로 읽었는데 역시 어린이 책에 가깝다. 


‘톰 소여의 모험’으로만 끝내기 아쉬워 어른들의 관점으로 밀착해 읽어 보려 해도 그다지 중년의 메마른 가슴을 움직이기엔 동화적 요소가 너무 강했던 것 같다. 아니면 내 동심의 세계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과거로 자취를 감추었던가. 세계 명작 동화의 화려한 그림책이 머릿속에 펼쳐졌고, TV로 보던 어린이 만화 같은 느낌이 짙게 남았다. 그래도 무려 400페이지에 달하는 책은 그 모험의 양에 있어서는 성인급으로 방대하다. 어려서 이 책을 읽었다는 남편도 책이 이렇게 두꺼웠나 했을 정도였으니까. 대부분의 어린이 동화책은 눈높이에 맞춘 축약 판임을 잊지 말자. 


마크 트웨인이 1876년에 이 책을 냈을 때는 아이들의 눈에 비친 어른 세계의 위선적 모습을 그려낸 사회 풍자적 소설로 인기가 좋았던 모양이다. 그보다 150년 정도 지난 지금의 어른 세계에서 어른의 눈으로 이 책을 읽으니 이 정도 위선이야 너무 당연한 일상이 되어 버려 그 충격이 덜하다. 


하지만, 톰 소여의 지칠 줄 모르는 모험과 미시시피강을 배경으로 하는 자연과 하나 된 동심의 세계는 지금이기에 더 많이 부러웠다. 하루하루가 저리도 신나고 재미있을까 싶어 구경만으로도 족하니 톰 소여와 함께 동심의 세계로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들게 했으니까. 톰이 누렸던 세계는 컴퓨터와 영상매체에 지배된 작금의 아이들에게는 찾아보기 힘든 황금 같은 동심의 시절이 아닐 수 없다. 나조차도 TV 만화로 어린 시절 대부분을 보냈으니까. 틈만 나면 이모 몰래 창문 밖으로 뛰어나가 노는 톰 소여와 같은 아이들은 고전 동화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광경이 되고 말았다. 


그런 의미에서 나도 150년 전 마크 트웨인이 살던 시절보다는 21세기 문명의 시기를 사는 이 시대 젊은이들과 더 공감하게 되는 게 당연한 일인가 보다. 최근 나는 뜻밖에 유년 시절로 돌아간 기분을 맛보고 있다. <톰 소여의 모험>처럼은 아니지만, 사춘기 아이들처럼 K-POP 아이돌 그룹인 ‘방탄소년단 (BTS)’에 ‘쩔어’서 지내고 있으니. 


방탄소년단은 내가 한국의 K-POP 가수로 유일하게 아는 그룹이다. 알게 된 지도 불과 한 달 남짓 되었을까? 지난 11월 AMA (American Music Award)에서 소개되기 시작한 방탄소년단의 뮤직비디오와 방송 출연 영상을 보게 된 이후로 온 정신을 쏟으며 방탄의 매력에 빠져들고 있다. 방탄소년단을 좋아하는 중년의 ‘방탕한 아줌마’ 팬덤도 존재하는지 이쯤에서 매우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어제는 ABC TV에 새해 전야 특별 프로그램에 나온 이들의 모습을 직접 내 눈으로 목격하며 열광하기도 했다. 아이들처럼 얼마나 행복했던지. 


관계도 없는 마크 트웨인의 책 서평에 한국의 방탄소년단 이야기를 두서없이 꺼내게 되었다. 최근 두 가지 전혀 다른 젊은이들의 문화를 느끼며 마음이 어려진 탓일까? 전혀 관계가 없지는 않은 것 같다. 방탄소년단의 노래 가사에는 특히 젊은 청소년들의 갈등과 고민이 잘 녹아 있는데, 톰 소여만큼의 모험심과 패기, 그리고 세상을 향한 외침과 사회적 풍자가 가득하다. 이 둘에서 찾을 수 있는 공통점이다. 


단지 시대가 다르고 모험을 펼치는 무대가 다르고 방식이 다르지만, 하나는 자연 속에서 다른 하나는 영상 속에서 어른들의 세계와는 다른 자신들 만의 신비로운 세계를 만들어 간다. 그 속에서 서로에게 힘을 주고받으며 힘차게 성장해 가는 젊음의 발랄함과 생기 가득한 에너지를 뿜어내면서. 


나는 비록 그들과 함께 호흡할 수 없는 세대가 되었지만, 젊은이들의 넘치는 모험심과 세상을 향한 도전을 보며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젊은 소년들에겐 그들 만의 세계가 있음이 눈부시게 아름답다고 생각해 보기는 오랜만에 갖는 마음일 것이다. 내가 나이 들어가고 있다는 증거일까? 젊은이가 젊은이답다는 것이 얼마나 정상적이며 칭찬할 만한 일인지 중년의 우리들이 잊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아이들일 수 있는 시기에 어른의 시선으로 아이들의 소중한 한때의 시간을 방해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과 함께.   


톰 소여와 그의 모험 친구 허클베리 핀, 그리고 방탄소년단의 일곱 친구 모두 내 눈에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들이다. 그들을 보면서(특히 방탄소년단) 앞으로 불과 몇 년만 지나도 소년티를 벗고 성인이 되어갈 상상을 해 보니 걱정스러운 마음이 먼저 든다. 누구든 방탄소년단에서 방탄중년단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는 서로를 바라보는 안타까운 마음이겠다. 


바로 그런 눈으로 올해 저들 생에 마지막 십 대를 맞이한 나의 귀여운 자녀들과 세상의 모든 아이를 바라보고자 한다. 톰 소여처럼 조금 더 유년의 시기를 남들보다 길게 산다고 해서 손해 볼 것은 없을 것 같다. 어차피 100세 시대에 사는 것이 지겹고 팍팍할지 모르는데 유년의 시절이라도 엿가락 늘이듯 늘여보는 게 나쁘지 않을 듯하다. 아님, 나처럼 중년을 살다 유년으로 돌아가기를 반복하면서 유년의 시기를 늘리는 것도 시도해 볼만한 삶의 방식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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