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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효경 Jan 28. 2018

#24. <거꾸로 쓰는 육아일기>

아이와 한패

아이와의 관계는 날로 우호적이지만은 않습니다. 어제는 매우 맑음이었다가 오늘은 갑자기 흐려지기도 하는 업 앤 다운의 기복을 유지합니다. 일주일 전에 아이와의 관계가 마치 시애틀 여름 날씨처럼 구름 한 점 없이 화창하고 상큼했던 하루가 있어 소개합니다.


아이와 단둘이 브런치를 먹으러 갔습니다. 시작이 좋지는 않았죠. 토요일 오전 9시 반쯤이라서 가는 곳마다 사람이 붐볐습니다. 주차하기도 쉽지 않았고, 레스토랑까지 걸어가면서 좀 더 빨리 걸어가려고 횡단보도가 아닌 건널목에서 길을 건너려다 아이의 따가운 눈치를 받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다 큰 어른이 되어서 아이에게 횡단보도를 제대로 걸으라는 언질을 받게 되는 걸 보니, 울 아이가 성인이 되긴 되었나 봅니다. 게다가 바쁜 마음에 차가 오는 걸 못 보고 달려 나가려다 아이가 기겁하며 고함을 치길래 스톱을 하기도 했죠. 아들 앞에 세 살짜리 아이가 된 느낌도 가히 나쁘진 않습니다. 옆에 서 있던 든든한 아이의 모습을 볼 수 있었으니까요. 


간신히 아침을 먹을 곳을 찾아 자리를 잡았습니다. 음식을 주문하고 어찌 된 일인지 아이와 우연히 시작된 대화가 오늘의 화려한 주제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아이와 나눈 대화 중에 이렇게 성인다운 대화는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아이는 그날 아침 저에게 새로운 세계의 가능성을 보여주었죠. 아이가 이제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니구나. 어른의 세계도 별 무리 없이 이해할 수 있는 성인이 되었구나. 게다가 생각 밖으로 생각이 유연하고 대화가 통하는 하나의 인성을 가진 인간임을 확인할 수 있었죠. 어쩌면 앞으로 서로 클릭할 수 있는 그런 사이가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상상을 맛보게 해 주었답니다. 


이 대목에서 다른 부모들은 19세 아들과 어떤 대화를 나누고 계신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네요. 어쩌면 이미 많은 분에게는 당연한 일인지 알 수 없어 제 이야기를 소개하려니 살짝 주눅이 들긴 합니다. 그래도 제가 살아내는 저만의‘엄마라는 역사책’에는 상당히 중요한 꼭짓점을 찍는 순간이라서 당당히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작정하고 아이와 대화를 나눈 건 절대 아니었습니다. 사실 아이와 단둘이 브런치를 나오면서 우리 둘이 과연 얼마나 긴 밥상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 고민이 되긴 했죠. 이럴 때 늘 보조 역할을 맡는 친근한 제 단짝이자 20년 지기 전우인 남편이 없어서 불안하기도 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는 자리에 앉자마자 핸드폰에 열중하더군요. 누군가에게 열심히 텍스트를 하고 있길래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제가 아들 친구들의 이름을 다아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묻고 봤죠. 어? 그랬더니 아는 이름입니다. 그래서 그 아이에 대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 아이의 엄마를 제가 잘 알기도 했고, 한때는 친하게 지내기도 했었던지라 아이는 되려 저에게 아이의 엄마로 화제를 돌렸습니다. 우연히 아이가 저에게 제 친구 엄마의 근황을 물었던 거죠. 그런데, 이 부분이 사실 심각하게 말하기 곤란한 부분이었습니다. 그 친구라는 엄마와 저는 절연을 한 지가 꽤 오래되었고 (죄송합니다. 이 나이에 절연이란 단어를 꺼내 실망하게 해 드려서), 그런 불편한 진실을 아이에게 알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 무척 고민이 되는 순간이었으니까요. 아이 앞에 엄마의 인격이 상실될까 봐 우려도 되었습니다. 혹시 엄마가 한때 잘 지내던 친구와 절교나 하고 다니는 사람이라고 생각할까 싶어서요. 사실 제가 생각해도 절교하고 그럴 나이는 아니니까요. 웬만하면 좋게 좋게 지내는 것이 좋은데, 저도 이런 관계는 머리에 흰털이 날 때까지 제 생애에서 경험해 보지 못했던 일이라 저 자신도 자랑스러워하는 일은 결코 아니거든요. 


그날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분명 남편이 제 옆에 있었다면 아이에게 할 말이 아니라고 저의 입을 막았을 겁니다), 마치 오래된 친구에게 털어놓듯이 사실 모두를 아이에게 전부 털어놨습니다. 그랬더니 아이의 눈이 전에 없이 초롱초롱해지면서 얼굴에 생기가 도는 신기한 반응을 보이더군요. 엄마에게 들어 본 이야기 중에 가장 흥미롭다는 표정이었습니다. 제 이야기를 듣는 내내 저를 뚫어지라 바라보며 제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까 궁금해하는 모습을 지었습니다. 아이의 반짝거리는 호기심 가득한 얼굴을 보니, 이 어른들의 한심한 세계를 어느 정도 폭로해도 좋겠다는 자신이 생기더라고요. 그래, 어른들이라고 해서 아이들보다 별반 나을 것도 없고, 세상은 네가 생각해 온 것처럼 그렇게 이상적이지만은 않으며,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늘 이성적으로만 행동하는 것도 아니다. 또,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만 않고 네가 이해 못 할 일들로 가득 찼으며, 특히 사람에 있어서는 친구라고 믿었던 사람도 하루아침에 원수 같은 사이로 추락할 수 있다는 세상만사 험난한 이야기를 이제는 시작해도 좋겠다는 엉뚱한 자신감이 아이 앞에서 생겼습니다. 


아이에게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네가 오랫동안 엄마의 친구라고 믿어왔던 그 아줌마가 사실은 엄마에게 한 번도 친구답다는 생각을 하게 해 주진 못했던 인물이었다고요. 아니, 엄마는 그 친구를 한 번도 좋아할 수 없었다고 했죠. 처음부터 잘못 끼워진 단추와도 같이 불편한 관계였다고. 예상했던 대로 아이는 제 말에 무척 의아해했습니다. 가까운 사이였다고 생각했는데 엄마가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니 의아했던 거죠. 아이는 질문하기 시작했습니다. 친구가 아닌데 왜 이제껏 가깝게 지냈고 그런 관계를 지켜 올 수 있었냐고요. 음.. 그건 네가 이해하기 쉽지 않을 콘셉트이긴 한데, 아주 가까운 친구가 아니라도 가까운 거리를 두고 지낼 수도 있고, 마음에 꼭 드는 절친이 아니라고 해서 아주 만나지 않을 이유도 없음을 설명했습니다. 제가 그 친구와 딱 고만고만한 마음으로 지냈으니까요. 그러면서 그렇게 뜨뜨미적지근한 관계로 지내면서 한 번도 친구 같은 친구라는 생각해보지 못했던 제 실제 상황을 그대로 말해 주었습니다. 


같은 학교 동창이라서 알게 된 사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한 번도 마음에 들어 본 적이 없는 친구였으니까요. 저도 그 관계 속에 있을 때 질문했던 것이기도 했죠. 만날 때마다 친구는커녕 그 친구로부터 마음에 상처가 되는 말을 자주 들어왔었으니까요. 그게 마음에 걸려 속이 상했던 적이 많았지만, 그런 관계라고 해서 다 무 자르듯 잘라야 한다고 그때는 왜 생각 못 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좀 더 저 자신을 잘 몰랐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냥 그냥 만나 오든 관계였는데, 몇 년 전에 그 관계를 완전히 청산했다고 아이에게 말해 주었습니다. 무슨 배짱이 생겨서 아이에게 이런 굳이 밝히고 싶지 않은 제 사생활에 관계된 이야기까지 하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아이의 얼굴은 여전히 호기심으로 가득했고 제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엄마는 이제 그런 친구 같지 않은 관계를 계속해서 유지하고 싶지 않다고 했죠. 물론 그럴 만한 계기가 어느 날 찾아왔었고, 더 이상은 관계 유지하기가 힘들어졌기에 용기를 내어 한 인간을 내 인생에서 지워냈던 이야기를 전부 들려주었습니다. 나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과는 더 이상 만나고 싶지 않았던 거죠. 물론 그렇게 된 계기의 가장 큰 근거로는 상대에게 되돌릴 수 없는 실망감을 느꼈고, 제 나이가 이제 오십을 코앞에 두고 있었던지라 인생을 이런 사람과 허비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크게 작용했고요. 아이에겐, 어떤 사람을 만나 교제하는지가 우리 삶에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설명해 주었답니다. 비록 엄마를 속 좁은 인간이라고 비하해 생각할지도 모를 위험을 감수하면서요. 나이가 들면 자식 앞에서도 점점 뻔뻔해지나 봅니다. 


아주 가까운 친구가 아니면 쉽게 털어 놀 수 없는 이런 이야기를 아들 녀석과 나눌 거라고는 그 날 아침 브런치를 먹으러 가면서 상상도 못 한 일이었습니다. 아침밥을 어떻게 먹었는지 통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맛있는 아침이긴 했는데 대화에 신경 쓰느라 음식에 집중할 새가 전혀 없었으니까요. 아침 먹는 내내 이렇게 긴 대화를 서로 얼굴을 제대로 바라보며 뜨겁게 나눠 본 적도 처음입니다. 레스토랑을 나올 때까지 둘 사이에 한 번도 정적이 흐른 적이 없었던 것이 신기할 정도였으니까요. 물을 따라 주러 오던 웨이트리스도 저희 대화의 진지함에 조용히 물만 따르고 돌아가는 모습을 두어 번 보았습니다.


그 날 아이에게 강조해서 전했던 제 메시지라면, 좋은 사람을 만나 사귀기 만도 인생은 턱없이 부족하더라. 모든 사람과 친하게 지낼 필요는 없다. 절친이 많으면 좋겠지만, 숫자보단 질이 중요한 거다. 진정한 친구 하나가 마음 나눌 수 없는 친구 여럿보다 낫다. 그러나, 정말 친구라고 믿을 만한 사람은 열에 하나도 찾아내기가 쉽지 않더라. 그래도 열심히 찾아 나서라. 마음에 꼭 드는 사람을 만나기가 하늘의 별 따기처럼 쉬운 일이 아니지만, 찾기를 포기하지 않으면 반드시 나타나더라. 그런 사람을 찾아 만나고, 아니다 싶은 사람에 네 시간을 과하게 허비할 필요는 없다. 사람이란 잘 변하지 않는 성질인지라 처음에 아닌 사람은 아무리 오래 사귀어 본다 해서 크게 달라지는 법이 웬만하면 없더라. 엄마의 경우처럼 처음부터 아니었고, 사귀면서 더 아니라고 느껴왔다면, 과감히 그런 관계를 박차고 나가라. 관계를 위한 관계는 이어갈 필요 없다.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무리 제 아이라고 했지만, 제 삶의 방식과 인간관계의 방식을 아이에게 주입하게 되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되는 마음도 없지 않아 말하면서도 불안했죠. 모두가 똑같은 방식으로 사람을 사귈 필요도 또 살아갈 이유도 없으니까요. 어떤 방식이 가장 현명한 방식인지 누구도 확언할 수 없을 테고요. 그래도 나이 오십을 바라보고 있는 엄마로서 제 삶을 책임질 발언은 필요하다고 생각해 제 의견을 가감 없이 전달했습니다. 

아이의 반응이 무조건 까칠할 줄로만 알았는데 (역시 엄마는 이해하기 힘든 존재야 내지는 엄마가 너무 까다로운 거 아냐? 하는 제 아들의 평상시 말투로), 아이가 전격적으로 제 말에 긍정을 표해 옵니다. 우리 아들 녀석 다 컸네 하는 생각이 마음속으로 들었죠. 평소 제가 하는 발언에 주로 냉소적인 표정을 날리는 아들로서는 충분히 엄마를 비난할 수도 있는 주제였는데, 획기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순간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내가 이제까지 아이를 너무 어린애 취급해서 아이 같은 대화만 한 게 아니었나? 아이는 이미 어른들 수준의 대화를 하고도 남은 상태였는데 말입니다. 이제 아이에게 뭐든 다 소통할 수 있을 것 같은 친밀감을 느낍니다. 마치 가까운 절친이 되어 제 속사정을 다 들어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말입니다. 


아이가 제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이런 말까지 하더군요. ‘엄마, 근데 그 엄마 친구네 가족들은 다 비슷한가 봐.” 갑자기 귀가 번쩍했죠. ‘그게 무슨 말이야?’ 하고 궁금해서다그쳤고요. 그랬더니 그 집 아들에 대해 우리 집 아들이 느껴왔던 감정이 제가 제 친구에게 받았던 감정과 상당 부분 일치한다는 거예요. 구체적인 예가 너무 궁금해 아이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주책 맞은 엄마의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최대한 애쓰면서요. 아이는 평소 같으면 그런 자신의 속내를 이야기하지 않았을 텐데 (특히 자기 친구에 대한 험담을), 놀랍게도 자기 친구에 대해 섭섭했던 일들 또는 그 친구의 좀 이해하기 어려운 이기적인 행동들 뭐 그런 고백을 하나둘 하기 시작했습니다. 엄마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자기도 제 친구에 대해 어정쩡하게 느껴왔던 쌓였던 감정을 새롭게 직시할 수 있게 되었나 봅니다. 제가 강요해서 물은 말도 아닌데, 자진해서 제 입을 통해서 이야기를 줄줄 털어놓았으니까요. 어머나… 이럴 수가. 저는 애써 놀라는 기색을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무덤덤하게 들어주는 척만 했습니다. 속으로는 ‘이럴 수가와 역시나’를 연발하면서요. 


그 날 저는 아이와 한패가 된 느낌이었습니다. 이것도 우리 집의 내력(?)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이야기의 핵심은 아이와 제가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허심탄회하게 진솔한 대화를 처음으로 나눴다는 데에 있습니다. 이제는 엄마로서 아이를 대하는 대화보다는 아이를 제 친구처럼 또는 성장한 한 인격체로 생각하고 이야기를 나눠야 할 때가 마침내 도래했음을 두 팔 벌려 환영합니다. 그동안 입었던 엄마라는 힘든 작업복을 벗고, 아이 앞에한 나약한 인간이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사이에 인간적인 대화가 흐를 수만 있다면 한없이 더 나약해지기를 자처하고도 남겠다는 절실한 마음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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