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보다 커밍아웃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아들과 저는 저녁을 먹은 후 한국어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스탠퍼드 대학교의 신기욱 교수님이 쓰신 <슈퍼피셜 코리아>의 “방향을 잃은 이상한 스펙 인플레이션”의 두 번째 문단 ‘나라를 버리고 싶다’를 떠듬떠듬 읽고 있었죠. 경쟁이 치열한 대한민국에서 스펙만 쌓으며 살아가느니 차라리 내 나라를 떠나고 싶다는 한국 대학생들의 이야기였습니다. 지금 한국의 청년들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며, 아들이 그렇게 가려고 하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민낯을 보여주고 싶어서 일부러 고른 글이었습니다.
이민에 대한 이야기가 아들과의 대화를 몰았던 걸까요? 저녁 7시가 넘어서 시작된 한국어 공부 후 이어진 아들과의 대화가 11시를 넘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꼼짝 않고 한자리에 앉아서 이렇게 장시간의 대화다운 대화를 나눈 것은 19년 만에 경험해 본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 화장실에 가고 싶어도 소중한 대화가 예서 끝날까 두려워 꾹 참고 있었죠. 아들은 저만 괜찮았다면 대화를 더 이어갈 태세였습니다. 옆방에서 도대체 모자간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신기하게 생각하던 남편이 인제 그만 들어가 자라고 서두르는 바람에 (질투였을까요?) 11시에 아쉽게 정리를 했어야 했습니다.
우리가 무슨 대화를 나누었는지 상상이나 가십니까? 여러분은 상상이 갈지 몰라도 저는 아직도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실제 상황이었다는 게 신기할 따름입니다. 우리는 두 개의 Theory를 가지고 이야기했습니다. 무슨 양자역학의 거창한 이론을 이야기한 건 아닙니다. 하지만 물리학보다도 더 심오한 자식의 마음을 연구하며 고민했던 두 가지 이론에 대해 이야기했죠. 물론 두 가지 다 제가 아이에게 소개한 이론이긴 합니다. 하나는 늘 제가 머릿속으로만 생각해 왔던 이론이었고, 다른 하나는 옆집 친구가 저를 위해 짚어준 이론이었죠.
이론을 소개하게 된 경유엔 아이의 놀라운 커밍아웃이 있었습니다. 대뜸 이렇게 도발적인 대화의 말문을 열었습니다.
“엄마는 내가 이모나 삼촌, 또는 다른 사람들에게 엄마에게 대하듯 행동할 것 같아?”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코멘트입니까? 어리둥절해 있던 저를 보며 아이는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말을 이었습니다.
“엄마랑 아빠한테만 내가 살갑지 대하지 않는다고요.”
“응? 뭐라고?”
아이의 발언에 놀랄 일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아이가 살갑지 않은 것은 이미 3살 적부터 알고 있었던 사실이었으니까요. 이런 발언을 저에게 이야기한다는 것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죠. 아이 스스로 그런 정의를 내리는 것이 신기해서 그 이유를 말해 달라고 저는 졸랐습니다. 그랬더니 아이는 자신의 성격상 다른 집 아이들처럼 엄마 아빠에게 살갑고 다정하게 대하는 것이 너무도 “cheesy” 해서 어색하고 힘들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자신의 성격에 대해 엄마인 제게 최초로 커밍아웃하는 발언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치지'하다는 이 단어의 정확한 한국어 번역은 “상당히 느끼하다 또는 닭살이 돋는다 내지는 오그라든다” 정도가 가장 근접한 표현일 것 같습니다. 자기의 성격이 워낙 닭살이 돋는 언행은 하지 못한다는 거예요. 근데 그게 부모에게는 유난히 강하게 작용하고 타인에게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게 흥미로웠습니다. 부모에게만 그래야 하는 뭔가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어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그 다음 이야기를 듣고 싶었죠. 계속 이야기를 하다보면, 저를 향한 날카로운 비판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두려움도 없지 않았습니다.
아이의 이런 살갑지 않은 모습은 사실 제게 조금은 큰 상처이자 관계에 대한 의문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제가 기억하기로는 아이의 이런 모습은 3살 때부터 확연히 드러났었으니까요. 3주가 되자마자 아이를 아이 도우미의 손에 맡기고 직장을 나왔어야 했고, 2살 때부터는 하루 종일 보육원에 아이를 맡겨 온 인생이었거든요. 그런데 일 끝나고 아이를 찾으러 가면, 아이가 다른 아이들과 달리 두 팔 벌려 '엄마~' 하고 반갑게 달려들지 않는 거예요. 엄마가 오면 그냥 한 번 물끄러미 쳐다 볼 뿐 하던 일을 계속했죠. 멍키 바에서 거꾸로 매달려 있다거나, 샌드박스에서 손장난을 계속 치던가 하면서요. 아이도 자신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궁금해 하더군요. 네가 그랬었어 하고 얘기해 주니, 아이도 어이가 없는지 낄낄대며 웃더라고요. 하지만, 세살바기 초보 엄마였던 저에게 아이의 그런 행동이 참 이상했고, 그렇게 아이는 지금의 19세 성인이 될 때까지 무뚝뚝하고 전혀 cheesy 하지 않은 아이로 성장했습니다. 마음 한구석엔 엄마로서 아이가 저에게 밀착하지 않는 모습이 섭섭하기도 했었는데 (그래도 간간히 늘 안아 달라고 떼쓰고, 밤에는 재워 달라고 했던 기억이 많아 큰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이의 유난히 무뚝뚝한 성격이겠거니 또는 아들이라서 그렇겠지 하며 나름대로 대수롭지 않게 넘겨왔었습니다. 하지만, 아이의 그런 태도에 대해 납득할 만한 설명이 필요했었나 봅니다. 그래서 이론다운 이론을 찾아 저 나름대로 정립해 보고 있었고요.
근데 아이 자신도 저처럼 자신만의 이론을 가지고 있는 듯해 보였습니다. 자신의 행동이 왜 그런지에 묻는 엄마에게 자신도 그것을 아직 찾고 있는 중이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뭔가 집히는 게 있는 것 같긴 한데 아직 정리되지 않아서 이야기할 수는 없다고 하면서요. 이렇게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너무 궁금해지는 거예요. 그래서 제 이론을 소개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제 이론을 들으면 혹시 아이가 더 오픈해서 이야기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요. 근데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제 이론은 아니랍니다. 아니, 아이가 어떻게 알겠어요. 자신도 자신의 행동이 어디에서 근거하는지 똑바로 잘 이해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고요? 무의식적으로 또는 수면으로 드러나지 않은 심리적인 그 어떤 기재가 아이의 태도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는 오래오래 자신을 돌아보고 연구해 보지 않으면 알기 힘든 일이니까요. 그래도, 이런 대화가 갑자기 우리가 앉은 식탁 위로 떨어졌다는 것에 엄마인 저로서는 어두운 밤하늘에 지나가는 유성 한 줄기를 본 듯그렇게 흥분되지 않을 수 없었답니다.
제 이론의 하나는 아이의 태생인 쌍둥이적 기질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쌍둥이로 태어나 자랐기 때문에 엄마보다 더 밀착된 관계로 자신의 쌍둥이 형제가 대신한다는 이론이었죠. 아이는 흥미롭게 듣긴 했지만, 별로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웃어넘겼습니다. 덤으로 자기가 얼마나 쌍둥이 형제와 가깝다는 일급 비밀은 전해 들을 수 있었죠. 내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자기 형제랑 가깝다고 하니 부모인 제 마음은 그동안 이 두 녀석이 함께 치고받고 싸우면서 서로를 말로 모욕 주고 으르렁거리던 시절의 냉전이 한순간에 녹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첫 번째 이론이 아니라고 하니, 두 번째 이론을 소개하기에 거칠 것이 없었습니다. 옆집 친구의 이론인데 (아이는 먼저 이런 이야기를 제 친구와 나눈다는 것에 더 놀란 눈치이긴 했습니다), 최근에 듣게 된 이론이지만 상당히 신빙성이 있을 법하다고 전했습니다. 직장 여성으로 출산 3주 만에 복귀를 하고 아이가 생후 2년 동안 다른 도우미의 손에 키워졌다는 상황이 엄마와 아이가 만들었어야 하는 본딩의 기회를 놓치게 했다는 이론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이론이었는데, 듣고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서 최근에 깨닫게 되어 무척 충격적으로 다가온 이론이긴 했습니다. 아이와 엄마의 밀착이 이루어져야 할 가장 중요한 영유아기 시기에 엄마가 아닌 다른 아주머니와 본딩을 이루었는데, 그 본딩이 아이가 보육원에 보내지게 되면서 2년 뒤에 깨지게 되고, 그것이 충격이 되어 아이가 엄마를 봐도 별로 반갑지 않았던 이유로 작용했다는 주장이었죠. 제 친구가 이 이야기를 하면서 어찌나 자신의 경우를 가지고 증명을 하던지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었지만, 듣기엔 참 가슴 아픈 일이긴 했습니다. 지나간 세월을 돌릴 수는 없었으니까요. 되 물릴 수 없다는 황망함에 정말 이 이유라면 나는 내 커리어를 위해 아이와의 관계를 희생했다는 쓰라린 상처를 안았어야 했으니까요.
그런데, 이 두 이론을 듣고 난 아이는 둘 다 아니라고 고개를 저었습니다. 일단 아니라고 하니 제 마음의 짐은 한결 가벼워지더군요. 아이가 자신이 고민하고 있는 이론을 끝끝내 저와 공유해 주진 않았습니다. 그래서 물었습니다. 그것이 나에 관한 것이냐 너에 관한 것이냐고요? 그랬더니 다행히도 엄마랑 관계된 것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야호! 아이 앞에서 환호성을 지르진 않았지만, 아이가 저에게 살갑게 대하지 않았던 이유가 저 때문이 일단은 아니라고 하니 아이에게 엎드려 절이라고 하며 감사해하고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제 이론이 아닌 것도 제 친구의 이론이 틀린 것도 고마울 따름이었고요. 엄마가 이론을 세워가며 고민했던 문제였다는 것에 놀라워하는 아들의 모습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괜찮습니다. 아이가 아무리 무뚝뚝해도 괜찮습니다. 살갑게 굴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지금 이렇게 이런 대화를 아이와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살가운 대화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저는 19년간 받지 못했던 그 딱딱하고 냉랭했던 우리의 관계를 이미 엊그제 우리의 대화를 통해 다 녹일 수 있었다고 장담하고 싶습니다. 아이도 그렇게 얘기하더군요. 자기가 이제 좀 철이 들고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이런 이야기를 엄마와 나누게 된다면서 스스로도 놀라는 기색이었어요. 아이가 앞으로 저에게 살갑게 대해 주려고 그러는 걸까요? 이제 엄마를 떠나 혼자 한국에 가려고 하니 마지막으로 효도 선물이라도 해야겠다고 결심한 걸까요? 아님, 엄마가 불쌍해 보였던 걸까요? 우리의 관계가 앞으로 달달해질 것 같은 예감이라면 제가 너무 성급한 거겠죠? 한국에 아들이 가게 된 것 때문에 정말 신기하고 이상한 일들이 제 생애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역시 인생은 오래 살다 볼 일입니다.
그날 밤 신이 나서 잠자리에 들면서도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힐 수 없었습니다.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남편에게 자랑했습니다. 내가 아들이랑 무슨 얘기를 나눈 줄 알아? 아들이 나한테 뭐라고 했는지 알아? 하면서 제가 했던 이론에 대한 이야기를 베개 머리맡에서 전했습니다. 그랬더니, 남편은 자기의 이론도 전달해 보라고 하더군요.
허 참… 이 집안에는 식구마다 자신의 이론이 차고 넘칩니다. 남편의 이론은 익히 들어온 것이기도 하고 (제가 불리한 이론입니다) 제가 딱히 인정할 만한 성질의 것이 아닌지라 단박에 무시해 버렸습니다. 일단 저는 콩닥거리는 가슴을 이불로 덮으며 달콤한 꿈나라로 그날은 그렇게 떠나도 옳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아이를 키우는 일은 엄마와 아빠의 수많은 이론을 필요로 하는 것 같습니다. 이 일엔 이런 이유였을거야. 저건 저래서 그랬을 거야 등등. 아이를 향한 부모의 마음은 꼭 맞는 이유를 찾느라 분주합니다. 때로는 아이가 해 주는 한 마디로 그 수 많았던 이론들이 정답이 아니었음을 깨끗이 지워 내기도 하는 줄 모르면서요.
평생 잘못된 이론을 붙들고 살 수도 있었는데, 아이의 커밍아웃이 저를 단박에 살렸답니다. 아들아, 커밍아웃해 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