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떠났습니다.
아들이 떠났습니다. 어제 한국행 비행기를 타고 그렇게 말없이 가 버렸습니다. 자는 아이에게 잘 가라는 말 한마디만 겨우 건네고 여느 날처럼 저는 아침 일찍 출근해야 했습니다. 직장에 쌓인 일이 아니었으면 가는 아들을 배웅하러 공항이라고 나갈 수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아니, 공항은 못 가더라도 떠나기 전에 잘 가라고 전화라도 한마디 더 나누고 떠나보낼 수 있었을 텐데, 그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아침부터 시작된 회의에 점심에는 전체 직원들과의 구정맞이 점심 식사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시계를 겨우 볼 수 있을 시간이 되었을 때는 이미 아들이 탑승한 비행기는 푸른 상공 위를 쌩쌩 날고 있었으니까요. 약간은 허무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마치 눈에 밟히는 갓난아이를 집에 놔둔 채 다시 직장으로 돌아가던 그때의 기분처럼 내가 지금 잘 하고 있는가 하는 회의가 들더군요.
전날 밤 아들에게 오리엔테이션에 늦지 않게 도착하라고 얼마나 신신당부를 했는지 모릅니다. 지역 차로 인한 시차 때문에 핸드폰 알람만 의지했다가 정작 알람이 시애틀 시각으로 울릴지 모르니 (저는 그랬던 경험이 있었거든요) 핸드폰에만 의지하면 안 된다. 꼭 호텔에 모닝콜을 부탁해라. 아침에 넉넉히 시간을 두고 학교로 향해라. 마을버스를 타야 하는데 타기 전에 꼭 학교로 향하는 방향이 맞는지 확인하고 타라. 다른 방향으로 탔다가 엉뚱한 곳에 내리면 오리엔테이션은 이미 물 건너간 일이 될 수 있다. 버스를 타면 운전사 아저씨에게 꼭 정거장을 알려 달라고 부탁해라.
인터넷에 나온 연두색 마을버스의 사진까지 찾아서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아들은 아무래도 생소한 마을버스보단 익숙한 지하철을 타는 게 좋겠다고 하더군요. 생각해보니 아들 말이 틀리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환승을 한 번 해야 하긴 하지만, 학교 앞에서 내릴 수 있었습니다. 아무리 학교가 코앞이라 해도 마을버스를 타고 잘못 내리느니 비교적 정차역이 정확한 지하철을 이용하는 게 나아 보이긴 했습니다.
학교에서 한국어가 서툰 저희 아들 같은 학생을 위해 오리엔테이션 도우미를 붙여 준다고 하더니, 바로 전날이 되도록 도우미로부터 연락이 오지 않았습니다. 글로벌 서비스니 뭐니 하는 곳에서 학생 도우미로의 연결이 이렇게 허술한 가 싶어 화가 납니다. 아니나 다를까 혹시나 해서 일전에 왔던 이메일을 확인해 보니 연결해 준다는 학생 대표에게는 이메일을 보내지 않은 걸 어제서야 확인을 했습니다. 미리 확인하지 못한 제 불찰이기도 했죠. 이렇게 되면, 한국어로 진행되는 오리엔테이션을 아이가 절반도 이해하지 못할 가능성이 지극히 높습니다. 학사 일정에 장학제도 그리고 교과과정에 학교 선배들과 교수님과 만남, 이 모든 일을 아이가 어떻게 혼자 감당해 낼지 참으로 난감합니다. 하지만 아이는 제가 불안한 것만큼 걱정해 보이는 얼굴은 아니었습니다. 왜 그렇게 태연할 수 있는지 참 궁금합니다. 반면 이 엄마라는 인간은 늦잠 많은 아이가 알람 소리를 듣고 과연 혼자 호텔 방에서 일어날 수 있을 지나 걱정하고 있으니, 말 다 했죠. 이런 수준의 걱정을 하면서 아이를 과연 한국 대학에 보내는 것이 맞는 현실인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기엔 너무 늦었으니까요.
제 유학 시절을 떠올려 봤습니다. 저 역시 외국인들 틈에 끼여서 학교 수업을 귀로 들었는지 눈으로 들었는지 통 기억이 나지 않더군요. 지금이야 귀가 열려 소통에 별문제가 없지만, 25년 전 그 시절 제 귀에 알파벳이 와서 꽂히기나 했을까 싶더군요. 그래도 수업을 듣고 과제를 하고 시험도 보며 학위를 받아냈으니 기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는 유학 시절을 떠올리면 도서관에서 지내던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도서관에서 공부가 쏠쏠히 잘 됐던 것만은 아니었는데, 불안한 마음에 늘 도서관에서 살려고 노력 했던 것 같거든요. 마치 시험 전날 방의 불을 온전히 끄지 못하고 베개만 붙잡은 채 설 잠을 자는 것처럼요.
저에 비교하면 아들의 상황이 그렇게 암울한 상황만은 아니라고 애써 상상해 봅니다. 정말 괜찮겠죠? 안 괜찮으면 또 어쩔 건가요? 이미 아들은 떠났고 이제 오리엔테이션을 시작으로 혼자서 대학 생활을 시작해야 하는 걸요. 에라 저도 모르겠습니다. 알아서 잘 하리라 믿어 봅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해 줄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일은 그냥 믿어주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믿지 않으면 저만 괴롭습니다. 믿지 못하면 죽을 맛이거든요. 그래서 믿기로 맘먹습니다. 언제부터 제가 현실과 세상에 매우 타협적인 부모가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나름대로 잘 적응해 보려고 합니다. 아들이 낯선 한국 생활에 적응하는 것에 비하면 저의 적응은 적응이 아니라 체념의 수준에 가까운 것일지 모르겠지만요.
아… 그렇게 아들을 보내고 어제는 감기 기운에 일찍 잠을 청했습니다. 아침에 일찍 눈이 떠지더군요. 이미 한국에 도착했을 시간이 넘었고 언니가 마중을 나갔으니 카톡으로 연락이 와 있겠거니 싶어 핸드폰을 먼저 집어 들었죠. 아들 녀석이 호텔 체크인을 마치고 환하게 웃는 사진이 떴습니다. 아들을 나 대신 맡아 공항에서 호텔까지 잘 정착시켜 준 언니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습니다. 아들에게도 이모가 있어 다행입니다. 저는 언니와 유학 시절부터 떨어져 지내와서, 잘 해야 일 년에 한 번 정도 보는 게 전부입니다. 그렇게 근 25년이 넘는 세월을 자매간 정을 나눌 새도 없이 살아왔는데, 미국에서 난 조카의 이모 노릇까지 언니에게 부여하게 될 줄은 상상도 해 보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언니에게는 자식이 없습니다. 형부와 일찍 사별해 결혼 10년 동안에도 아이가 생기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더 쌍둥이 아들을 둔 게 늘 언니에겐 죄인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지요. 근데 그 죄인 같은 마음이 이제야 아들 하나를 언니 품에 넘기고 나니 이상야릇한 감동이 운명처럼 밀려옵니다. 마치 처음부터 쌍둥이는 언니와 저를 위해 존재한 아이들이었던 것처럼요. (물론 이 대목을 제 남편과 아이들이 듣는다면 불쾌해할까요?) 언니도 다 큰 조카 녀석이 미국에서 한국으로 유학을 온다니 신이 나는 것 같긴 합니다. 외로운 언니에게 피붙이가 하나 생긴 셈이니까요. 물론 이 녀석의 진상을 언니는 아직 잘 모르니까요. 하긴 이모에게는 무뚝뚝한 제 아들이 절대 아니랍니다. 엄마는 천대해도 이모에게는 싹싹한 아들이거든요. 그래도 저는 기쁩니다. 언니는 아들에게 든든한 이모고, 아들도 이모에게 살갑게 대해서 이쁨을 받고 있으니까요.
아들은 지금 이 시각 학과별 오리엔테이션을 받고 있을 겁니다. 같은 학과 동급생들의 얼굴이 무척 궁금해지는 순간입니다. 저들의 얼굴을 볼 수만 있다면. 착하게 생긴 아이들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미국에서 온 어리숙한 제 아들에게 친절하게 대해 줄 한 명의 선한 사마리아인 같은 학생이 그곳에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근데 모진 경쟁을 뚫고 대학에 들어온 전투적이고 살기 등등한 학생들의 얼굴만 자꾸 떠오릅니다.
오늘 뉴스에 요새 대학가에는 신입생 환영회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고 합니다. 좀 더 친절하고 다정한 분위기로 변했기를 그저 바랄 뿐입니다. 한국어로 자기소개나 제대로 할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환영회라고 강제로 술을 마시는 건 아닐까 걱정입니다. 오늘부터 아들 녀석의 심장이 강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이 모든 것을 견뎌낼 수 있도록 강철 같은 심장으로 어서 빨리 바꿔끼고, 안면 근육을 탄탄하게 만든 후, 날아오는 총탄을 두 팔로 거뜬히 잘 받아내는 슈퍼맨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들은 과연 자신이 왜 거기에 가서 슈퍼맨이 되어야 하는지 생각이나 하고 있을까요? 비수처럼 날아오는 낯선 시선들을 막아내며 아들은 그렇게 적응해 갈 수 있을까요? 아들이 한국으로 가기 전보다 떠나보내고 나니 제 가슴이 본격적으로 더 파르르 떨려 옵니다. 자식 키우기가 이렇게 힘들어서야 어디 살겠냐고 외치고 싶습니다. 엄마! 엄마도 저를 유학 보내고 이런 마음이셨던가요? 갑자기 엄마를 목청껏 불러보고 싶습니다. 엄마!
아. 절 위해 너무 걱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낼모레 아들을 쫓아 저도 한국으로 잠시 들어갑니다. 시간이 맞지 않아서 같은 날 함께 나가진 못했지만, 아들을 위해 엄마인 제가 직접 가서 해야 할 일을 하기 위해 떠납니다. 아들아, 조금만 기다려라. 이 엄마가 곧 가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