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효경 Feb 24. 2018

#27. <거꾸로 쓰는 육아일기>

반지의 용도

집에서 같이 지내던 아들 녀석 (지금은 한국에 간) 때문에 한동안 제게 쌍둥이 아들이 하나 더 있다는 걸 거의 잊고 지냈습니다. 필라델피아에서 추운 겨울을 (하긴 지금 시애틀이 더 춥습니다) 보내며 열공하고 있는 우리 아들이 버젓이 있는데 말입니다. 이 녀석이 1학년 2학기를 보내고 있는데 요새는 전화해도 통 받지 않고, 문자를 보내도 성의 있는 답이 오지 않습니다. 며칠 전에는 생일이라서 짠한 마음에 연락했죠. 집 밖에서 생일을 보내기는 올해가 첫 해이기도 하고, 쌍둥이 다른 녀석은 저희와 함께 생일을 보냈는데 하나만 뚝 떨어져 있으니, 한 짝만 달랑 남은 양말이나 장갑처럼 영 찝찝했더랍니다. 그렇다고 집에 있는 녀석과 대단한 생일을 지낸 것은 아닙니다. 워낙 바쁜 주에 아들 생일이 끼어 있어서 셋이서 같이 저녁을 먹은 게 고작 전부였죠. 미역국과 생일 케이크는 우리 집에서 사라진 지 수년은 된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요새도 생일이면 미역국을 드시고 계신가요?  


아무튼, 동부에 있는 아들에게 물었죠. 생일이 가까워져 오는데 뭐 갖고 싶은 거 없냐고요. 이 질문이 잘못되었다는 건 보내기 전에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뭐 갖고 싶은 게 있으면 제가 사서 보내줄 것도 아닌데 (안 보내준다는 게 아니라) 아마존에서 오더를 하면 되니까요. 굳이 제가 오더를 할 필요까지는 없다는 말씀입니다. 심플하게 은행에 돈을 부쳐주면 될 것을, 처음부터 그렇게 돈을 넣어줄까 라고 묻기가 너무 성의 없어 보일까 봐 차마 그렇게 묻지는 못했더랍니다. 최소한 생일 선물은 그렇게 질문을 해 주는 게 맞는 것 같아서요. 그랬는데 며칠이 지나도 답신이 오지 않았습니다.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사실 이 질문 전에 아들 녀석이 먼저 저에게 문자를 보내왔었습니다. 단 두 단어. “Bought a ring” 순간 깜짝 놀랐습니다. 반지? 웬 반지야? 처음엔 다른 사람에게 보낼 문자를 저에게 잘못 보낸 줄 알았습니다. 반지를 사다니 이게 무슨 소리지? 제가 반지에 경악한 것은 이 대화가 오가는 시점이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이의 생일은 발렌타인즈 데이보다 며칠 후고, 이 대화는 발렌타인즈 데이 보다 이틀 전에 오갔기 때문이죠. 대뜸 무슨 반지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다음 두 단어 “From Amazon” 하고 돌아옵니다. 제가 어디서 샀냐고 물었냐고요? 당연히 반지의 용도를 물었던 거죠. 이 반지는 도대체 무슨 용도의 것이냐고 다시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이번엔 또 두 단어로 대답을 해 옵니다. “Just because…” 아이고 맙소사. 이 녀석이 벌써 여자 친구가 생겨 반지를 사는 게 아닌가 싶어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순간 치사하게 엄마의 아마존 어카운트로 들어가서 반지를 사는 게 괘씸하기도 했고요. 그래서 다시 물었습니다. 확인은 해야 했으니까요? 그거 네 반지니? 그랬더니, 답이 무려 10분이 지나도록 오지 않았습니다. 올 게 왔다고 생각했죠. 큰일 났구나. 반지까지 주고받는 사이면, 좀 심각한 거 아냐? 하는 걱정도 들었고요. 10분 지난 뒤에 자기를 위한 반지라고 답장이 오긴 했지만, 저는 그 녀석의 답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도 믿을 수 없고요. 다른 쌍둥이 녀석에게 혹시 그 녀석이 여자 친구 생겨서 반지 산 거 같은데 너 알고 있었니?라고 물었다가 다른 녀석의 박장대소하는 소리만 귀가 쩌렁거리도록 들어야 했습니다. 농담도 그런 농담이 다 있냐는 듯 웃어 재끼는 소리를 듣고 나니 좀 마음이 놓이긴 하더군요. 그래도 그건 그 녀석의 시샘을 가장하고자 애써 호탕하게 웃은 것일 수 있기에 완전히 마음을 놓을 순 없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이어서 물었던 질문이 “네 생일이 다가오는데 뭐 갖고 싶니” 였고요. 사실 이렇게 묻고 싶지 않았죠. 그때 제 마음 같아서는 “그래? 정말 네 반지를 산 게 맞아? 그렇다면, 네 생일도 곧 다가오고 했으니 엄마 돈으로 아마존에서 구입한 그 반지는 네 생일 선물로 하면 되겠네”라고 심술 맞게 대답해 주고 싶었죠. 그런데 가격이 좀 싸더라고요. 13불. 그래서 점잖게 생일 선물로 뭘 갖고 싶냐고 물었던 건데 생일날이 올 때까지도 답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침 일찍 녀석의 은행 통장에 생일 돈을 보내 주고 생일 축하한다고 전했죠. 그랬더니 녀석의 명답 두 단어만 딸랑 도착했습니다. “Thanks Mom” 저희 아들이 언제부터 이렇게 함축적 언어만 쓰는 아이가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길게 답장을 썼습니다. “You are very welcome~”하고요.  


그렇게 생일 돈을 부쳐 주고 나서 며칠 지나서 녀석의 은행 계좌 명세를 구경하러 갔습니다. 아들의 행동반경만이 아니라 식생활과 쇼핑 및 생활 반경을 알려주는 유일한 실시간 명세서이니까요. 아들은 돈을 받을 거라 미리 예측이라도 한 것처럼 생일 전에 물건을 많이 사들였습니다. 13불짜리 반지는 엄마 돈으로 사고, 50불이 넘는 옷가지에, 내역을 알 수 없는 Venmo payment (이거 지들끼리는 좋은지 모르겠지만, 엄마인 제게는 아들의 구체적 지급 명세를 깜깜하게 가려주는 암초와 같은 존재의 앱입니다), 그리고 필라델피아 미드타운의 어느 레스토랑까지. 음… 자축을 위했는지 생일 전 지출이 상당히 높습니다. 우버를 타고 2월 14일! 에는 어딘가를 다녀오기도 했던데… 이거 걱정할 일인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발렌타인즈 데이 이후로는 부쩍 아이스크림을 사 드시고 계시기도 하고요. 음… 반지의 용도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아무리 그래도 13불짜리 반지를 여자 친구에게 선물하는 멋없는 남자가 제 아들이 아니기만을 간절히 바랍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26. <거꾸로 쓰는 육아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