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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효경 Feb 28. 2018

#28. <거꾸로 쓰는 육아일기>

스텔라 학점

필라델피아에 있는 아들 이야기의 계속입니다. 남편은 요새 계속 아들과 문자를 나누고 있습니다. 벌써 몇 주 째 계속되는 대화. “기숙사 신청했니?” 입니다. 옆에서 보다 못한 저는 차라리 전화를 걸어서 말하지 왜 자꾸 문자를 보내냐고 남편에게 신경질을 부립니다. 제 성화에 못 견딘 남편이 아들에게 전화를 걸지만, 아들은 전화를 받지 않습니다. 밤 12시면 아직 초저녁인데 이 녀석은 부모와 음성으로 대화하기를 단절한 듯 전화 받기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남편의 인내심도 이제 거의 바닥이 난 것 같습니다. 어쩔까 고민하다가 기숙사에 방이 겨우 두 개 남은 것을 보고는 아들 대신 등록을 하기로 했습니다.  


아들이 하기를 기다렸지만, 벌써 몇 주 째 아무 조처를 하지 않고 있는 아들 때문에 지금 있는 곳보다 무려 천 불이나 비싼 곳으로 내년부터는 가야 할 신세가 되었습니다. 아들 녀석의 투쟁인지 작전인지 저희를 향한 분노와 반항의 표출인지 모르겠지만, 2학년부터는 친구들과 학교 캠퍼스 밖 아파트에 나가서 살게 허락해 달라는 것을 반대했더니 기숙사 신청을 여태껏 미룬 것입니다. 아니, 이건 의도적인 복수인지 모르겠습니다. 아파트로 나가는 것을 반대한 저희를 비싼 돈으로 물 먹이기 위한 위대한 계략인지 모르겠습니다. 천 불이라는 돈을 보고 저는 살짝 돈에 마음이 약해지기도 했습니다. 그냥 친구들이랑 나가서 살라고 하면 어때? 하고 남편의 마음을 떠봤습니다. 남편은 저보단 단호했습니다. 저야 눈앞의 천 불이 아까웠지만, 남편은 그러다가 학점이 떨어지기라도 하면 3-4학년 장학금이 순식간에 사라져 더 큰 목돈을 잃게 된다는 논리입니다. 역시 남편은 저보다 차가운 머리와 냉정한 판단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돈 문제에 대해서는.  


물론 기숙사에 산다고 해서 학점 관리를 더 잘하고 아파트에 나가서 산다고 그렇지 못하는 것은 아닐 겁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아들에게 조건부 학점을 요구하지 않고는 걱정이 되기 때문이죠. 1년 더 기숙사에서 살면서 2학년 성적을 잘 받고 나면 기숙사에 나가게 해 주겠다는 조건을 걸었습니다. 이 조건이 아들의 성적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열심히 하려고 노력하지는 않을까 하는 안심을 부모인 저희로서는 받아 내야 마음이 놓이기 때문입니다. 1-2학년 성적을 망치면 3-4학년 장학금이 순식간에 날아가니까요. 그건 남편의 말이 절대 지당합니다. 아깝지만 천 불을 더 지급해서라도 기숙사를 신청하는 것이 이 상황에선 맞습니다.  


아들과의 기숙사 실랑이는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어느 날 퇴근 후 집에 온 남편이 “오늘 아들한테 온 문자 좀 볼래?” 하며 자신의 핸드폰을 내밀었습니다. 문자의 내용은 친구들과 아파트에 나가서 살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기숙사를 신청해야 할 시점이었죠. 남편은 누구랑 나가 살고 싶냐고 물었고, 아들은 교회에서 만난 한국 친구들이랑 살기를 원했습니다. 세 명이 아파트를 하나 구해서 나가면 기숙사보다 훨씬 가격도 저렴하다는 것을 메리트로 아들은 남편과 협상을 하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Honors 학생들만 들어가는 기숙사에 계속 머무는 게 아들에게 더 좋을 거라고 강력히 어필했죠. 아들은 지난 학기 동안 Honors 기숙사에서 얻은 게 별로 없다며 반박을 했고, 아들의 협상은 점점 집요해지며 강경해 지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성적을 핑계로 아파트로 나가면 공부 외에 신경 써야 할 일도 많고, 친구들과 어울리다 보면 학교 공부에 소홀해질 수 있다는 이유로 안 된다는 똑같이 강고한 입장이었고요. 아들이 남편과 문자로 이렇게 긴 대화를 나눈 것을 보면 아들에게도 중대사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입니다.   


남편도 완강했지만, 아들도 쉽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아파트에 나가서 살면 안 되는 이유를 논리적으로 대답해 달라고 문자가 연달아 날라 오고 있었습니다. 그쯤에서 남편은 말싸움이 더는 힘들었는지 오늘 저녁에 엄마랑 상의하고 알려주마 하고 문자를 끝냈더군요. 하하. 제가 자주 사용하는 대화법을 남편도 쓰고 있었습니다. 아이는 애나 청년이나 엄마랑 아빠가 협력! 해서 키워야 확실히 힘이 덜 드는 법이죠. 아니나 다를까 저녁 식사가 끝나고 나니 아들에게서 문자가 또르륵 날라왔습니다. 대뜸 아빠하고 상의했냐는 질문이었죠. 이렇게 아들이 애타게 제 문자를 기다리는 일도 있다니 한편으로는 고소하기도 했습니다. 너도 내 대답이 간절할 때가 있구나 하며 부모가 가진 권력의 달달한 맛을 엔조이합니다.  


아들에게 보낸 제 대답은 아주 간단했습니다. 남편이 이미 할 말을 다 했기 때문에 간략하게 대답해 줬죠. 엄마는 네가 아파트에 나가서 사는 것을 정말이지 지원해 주고 싶다. 단지 올해와 내년의 성적이 stellar 하다면… 스텔라라는 단어에 힘을 줘서 문자를 보내주었죠. 아마 그 문자를 읽은 아이의 눈엔 순간 별빛이 총총거렸음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스텔라, 제가 좋아하는 단어 중에 하나죠. 얼마나 똘똘한 단어입니까? 특히 학점과 연결해 쓰면 기분이 묘하게 신비해지는 단어. 아들도 그런 느낌이 들었기를 별빛을 보며 기원합니다. 아니, 아들에게는 별처럼 멀게 느껴진 단어였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들로부터 다음 문자는 없었습니다. 아무 말이 없길래 내가 너무 심했나? 하는 생각이 잠시 들긴 했습니다.  


아들이 작전을 세우는데 시간이 걸렸던 모양입니다. 이틀 후 남편이 “이것 좀 봐” 하면서 아들이 보내온 이메일(!)을 저에게 포워드해 주었습니다. 이메일? 뭘까 궁금했죠. 이메일에는 아티클이 하나 첨부되어 있었습니다. A good read! 라는 아들 녀석의 한 줄 메시지와 함께요. 무슨 논문인가 싶어 첨부 파일을 마치 미스터리 소설이라도 읽듯 단번에 열었습니다. 남편은 저 보러 읽고 답변을 대신해 주라는 거예요. 논문의 제목은 “Trashing teens”였습니다. 이 녀석이 대학을 가더니 이제 논문을 읽으라고 부모인 저희에게 선생질(!)을 합니다. 옳거니! 상대해 주려면 논문을 당연히 읽어야죠. 갑자기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논문이라면 대학 사서인 제가 학생들에게 늘 보내는 것인데 이렇게 학생으로부터 논문을 읽으라고 받으니 호기심 완전 상승입니다. 아들과 이제야 어른 같은 대화가 시작되려나 봅니다.  


논문을 읽어보니 요지는 이렇습니다. 미국의 부모들은 틴에이저들을 너무 어린아이 취급한다. 지적능력도 높고 감정 지수도 높은 틴에이저들을 성인 취급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의 능력을 맘껏 발휘할 수 없는 것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과잉보호 내지는 어린이 취급하는 일은 지난 19세기 산업혁명 시기에 적합했던 구시대적 양육 방식이다. 지금은 능력이 되는 아이들은 성인 취급을 해 주는 것이 훨씬 더 현명하게 아이들을 키우는 방법이 되어야 한다고 논문의 저자는 피력하고 있었습니다. 운전 시험을 봐서 준비된 아이들은 비교적 어린 나이에 (만 16세) 운전할 수 있게 해 주듯이 competency test를 해서 준비된 아이들은 그들에 맞는 어른 대접을 해 주자는 논지가 결론이었습니다.  


아하~ 역시 아들이 지문을 읽는 독해력이 저보다는 살짝 떨어지네요. 요 마지막 부분을 놓쳤으니까요. 처음 부분만 읽으며 틴에이저에게 모든 걸 허용해 주자는 것처럼 들리지만, 이 저자도 그런 방임을 주장하지는 않았다는 것을 우리 아들 녀석이 흥분한 나머지 놓친 겁니다. 엄마랑 아빠에게 자신을 애 취급하지 말고 아파트에 나가서 살게 해 달라고 조르기 위해 이런 논문을 보낸 줄은 알았지만, 논문의 요지를 정확히 끝까지 짚어내지를 못한 게 아파트 문제보단 제게 더 아쉽게 다가왔습니다.  


제 답장은 아주 간단했습니다. “야, 이 녀석아. 이 논문의 요점은 바로 Competency test 야. 자격이 되는 틴에이저에게 기회를 주라는 데에 있다고! 너에게 competency test란 바로 stellar grade라고. 그러니까 학점을 잘 받으라니까. 그러면 넌 기숙사를 나와 친구들과 아파트로 들어갈 수 있다고!!” 엄마도 이 저자와 똑같은 생각이라고 상기시켜 주면서 답신을 보냈습니다.  


귀여운 제 아들입니다. 귀엽지 않습니까? 제가 생각해도 아들의 상심이 얼마나 컸을까 싶긴 합니다. 풀이 죽어 있을 녀석의 얼굴을 상상해 보면 딱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순간 천 불을 더 내야했을 때 그냥 아파트로 내 보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거죠. 자식을 스포일시키는 일은 자식을 엄하게 가르치는 것보다 훨씬 더 쉬운 일임을 실감합니다. 자식이 하고 싶은 대로 다 해 주고 싶지 않은 부모가 어디 있겠어요? 아들을 위해 그렇게 하지 않는 것도 부모의 마음을 다잡아야 하는 어려운 일이거든요. 아이는 부모가 뜻대로 해 주지 않아 힘들지만, 부모인 제애게도 똑같이 고통이긴 마찬가집니다.  


근데 한 가지 의문이 남긴 합니다. 그 아티클에서처럼 제 아들이 이제껏 항변, 아니 떼를 써 온 것처럼 자신이 훨씬 더 책임감 있는 사람이 될 기회였는데, 그렇게 하루라도 빨리 성인이 되는 길을 부모인 저희 땜에 한 해 더 늦추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입니다. 아들의 능력을 믿어주며 과감하게 시도해 보고 싶어도 (멋지게 아들을 믿어주고 싶어도) 그러다가 장학금을 잃을지 모른다는 조금은 쪼잔한 이유 땜에 부모인 저희가 아이 취급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말입니다. 크게 베팅을 해야 더 성숙한 아들이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는 의문이 기숙사 신청은 이미 해 버렸는데 찜찜하게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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