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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효경 Mar 04. 2018

#29. <거꾸로 쓰는 육아일기>

아들 인생의 목격자로

불쌍한 울 남편입니다. 육아의 많은 부분을 놓치고 살아갑니다. 이번에도 아들이 한국에서 대학을 시작하는 역사적인 순간을 놓치게 되었네요. 뭔가 아이들의 인생에서 중요하다 싶은 순간들을 제 남편은 늘 일 때문에 양보하고 살아갑니다. 갑자기 남편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가 초등학교 킨더가튼에 들어가던 첫날도 남편은 동행하지 못했습니다. 아이랑 디즈니랜드니 뭐니 온갖 유원지를 데리고 다닌 것도 엄마인 저였지 아빠는 늘 그놈(!)의 비즈니스 때문에 함께하지 못했습니다. 제 직장이 휴가 내는 게 자유롭다는 이유로 봄방학이면 아이들을 끌고 이리저리 다닌 것은 모두 저 혼자였습니다. 어떤 엄마는 아빠가 함께 가지 못하면 아이들을 혼자 끌고 다닐 생각을 아예 하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워낙 모험심이 강한 (또는 모정이 강한) 극성 엄마이기에 혼자라도 두 아이를 끌고 미국의 동부에서 서부로 아이들을 데리고 가지 않은 곳이 없었습니다. 디즈니랜드뿐인가요? 디즈니 월드도 제가 혼자서 다 데리고 다녔습니다. 덕분에 온갖 롤러코스터랑 유니버설 스튜디오의 재미난 롸이드는 죄다 타 볼 수 있었답니다. 해리포터 파크가 처음으로 올랜도에 개방되었을 때 아이들을 데리고 가면서 엄마로서의 자긍심을 느끼기도 했으니까요. 그걸 끝으로 미국 내 모든 theme park는 화려하게 졸업하기도 했고요. 어디 미국 뿐인가요? 한국의 워터파크도 가보지 않은 데가 없다니까요. 에버랜드는 또 몇 번이나 갔던가요? 거기 갔다가 퍼레이드에서 아들 녀석 하나를 미아 만드는 줄 알고 퍼레이드 내내 가슴 졸이던 기억은 지금도 생각만으로도 저를 식겁하게 합니다.  


한국행 비행기를 타고, 남편에게 집 잘 지키고 있으라는 문자를 날렸습니다. 귀여운 집 강아지 이모콘이 하나 뜨더니 가서 아들 입학식 사진 많이 찍어오랍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남편도 가고 싶었구나. 말하진 않았지만, 아들이 한국 대학에 입학하는 모습이 보고 싶었구나. 하긴 뭐 이런 일이 자주 있는 일도 아니니까 그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특히 저희처럼 미국에서 자식을 낳아 아들을 한국으로 유학 보내는 부모의 마음은 어찌 더 짠하지 않겠어요? 하긴 제 남편이야 아들보다 훨씬 어린 나이에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이민와서, 저처럼 한국을 밥 먹듯 드나드는 사람도 아니고, 한국에 이렇다 할 가까운 가족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무엇보다 한국에서 대학 생활을 해 본 적이 없고요. 비록 멀리 떠나온 고국이지만, 그래도 남편이 저에게 입버릇처럼 얘기하는 추억거리가 있습니다. 자기가 한국에서 초등학교 다닐 때 얼마나 인기가 많았던지 아침에 학교에 가면 책상 서랍 안에 연애편지가 수북했다나 어쨌다나? 백 퍼센트 신뢰할 만한 이야기는 절대 아니겠지만, 남편도 한국에 대해 특별하고 애틋한 감정이 있나 봅니다. 그런 아련한 추억의 곳으로 아들을 대학 보내며 저와는 또 어떻게 다른 느낌을 받고 있는지 궁금하네요. 본인이 경험해 보지 못한 세계를 향해 떠나는 아들의 모습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보고 싶은 마음이야 없지 않으리라 생각됩니다.    


한편 아들 대학 입학식에 간다고 하니, 직장에서 같이 일하는 저보다 조금 더 젊은 한국 친구가 저에게 이렇게 답변을 하더군요. “아들 입학식에 진짜 가시려고요?” 그 친구 왈, 그런데 가는 거 아니랍니다. 입학식에 학생도 참석 안 하는데 부모는 더더욱 가는 게 아니라고요. 제 기억도 가물가물합니다. 물론 25년도 더 지난 이야기지만, 입학식에 갔었던지 아닌지. 저희 부모님도 입학식 구경을 하러 오셨던가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지금은 강산이 여러 번 바뀌어서 입학식에는 가지 않는 거라지만, 그래도 가보고 싶습니다. 아들이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 따라가고 싶은 마음일까요? 아들이 피츠버그에 입학했을 때도 Convocation이라는 한국식 입학식 비슷한 행사에 가지 않았었는데, 한국에서의 입학식이라니 엄청나게 가고 싶습니다. 마치 제가 다시 대학생이라도 된 듯이 이미 마음은 설레임으로 가득합니다.  


어눌한 아들이 불안해서 꼭 동행하려는 건 아닙니다. 아들을 한국으로 되돌려 보내는 마음을 입학식이라는 의식을 통해 더 깊이 짠하게 느껴보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 정체모를 느낌이 무엇인지 직면해 보고 싶은 호기심도 있습니다. 그곳에 그렇게 어색한 이방인처럼 앉아 있으면 과연 어떤 마음이 들까요? 그곳에서 19년간 다른 환경과 다른 교육을 받고 다른 언어로 자란 피부색만 같은 아이들 틈에 제 어리숙한 아들 하나를 심어 놓고 오는 게 어떤 느낌인지 도저히 가 보기 전에는 상상조차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걸 느껴보고자 어떤 유원지보다도 비싼 비행기 롸이드 값을 지불하고 떠납니다.  


아들이 시작할 새로운 인생의 챕터에 목격자가 되고 싶습니다. 아들의 머리와 가슴에 스쳐 갈 감동인지 감흥인지 뭔지 모를 그것을 가까이에서 그 현장에서 목격하고 싶은 마음 때문에 꼭 가야 합니다. 아이들이 디즈니랜드에 가서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며 부모로서 뿌듯한 마음이 드는 것과 비교할 수 있을까요? 모르겠습니다. 아직 해 보지 않아서요. 근데 아쉽게도 남편은 제가 누리는 것을 누리지 못하고, 늘 이런 아이들의 대소사에 함께하지 못하는 게 지금은 더 안타깝다는 생각뿐입니다.  


언젠가는 그렇게 저마저도 남편처럼 아들의 모든 일을 목격하지는 못하는 날이 오겠죠? 그래서 옛 어른들이 이런 말씀을 푸념처럼 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우리 아들 결혼하는 것까지는 봐야 하는데… 내지는 좀 더 오래 사시는 분들은 손자가 결혼하는 것까지 볼 수 있을까 하면서요. 저는 아들의 인생에 과연 어디까지 볼 수 있으려나요? 일단 대학부터 찍고 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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