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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효경 Mar 29. 2018

#34. <거꾸로 쓰는 육아일기>

탯줄보다 강한 돈줄

우리의 대화는 주로 돈입니다. 돈이 아니었으면 우리의 대화는 오래전에 종말을 고했을지 모릅니다. 돈이 아니었으면 아들은 자신의 존재감을 우리에게 드러내지 않고도 충분히 살 수 있었겠죠. 돈이 아니었으면 부모의 실존을 아들이 기억이나 하고 지냈을까요? 


어김없이 오늘도 돈 이야기가 우리의 화제입니다. 돈에 관해서 아들은 엄마와 아빠 양쪽 모두를 균형 있게 찾습니다. 하루는 아빠, 하루는 엄마. 이렇게 골고루 양 부모를 번갈아가며 돈 달라는 소리를 해야 그나마 돈 얘기를 덜 한다고 생각한 걸까요? 어제는 아들이 남편을 찾았습니다. 늦은 시각이 다 되어 SOS 구조 요청을 해 왔습니다. 친구들과 우버를 탔는데, 우버 비용을 자신이 먼저 결제를 했고 (나중에 벤모 Venmo를 통해 받을 계획으로), 도중에 친구 녀석 하나가 차 안에서 구토를 하는 바람에 (이 녀석들 혹시 술은 먹은 게 아닐까 저는 사실 돈보다 음주에 더 신경이 쓰였습니다), 차 청소 비용으로 150불의 벌금을 내야 했다. 그런데, 은행 잔액이 충분하지 않아서 결제가 안 되었다는 메시지였습니다.  


매달 초에 용돈을 넣어주는 방식으로 아들의 은행 잔고를 관리하고 있는데 3월 말이 다 되어가니 여분의 돈이 많이 남아 있지 않았겠지요. 소식을 듣자마자 4월 용돈을 빛의 속도로 입금해 주었습니다. 돈이 필요하면 몇 초 안에 계좌이체가 되는 편리한 세상인지라 아무리 잔고가 낮아도 걱정을 하지 않고 지냅니다. 잔액이 바닥날 정도가 되면 저에게 자동으로 공지가 오도록 해 둔 알림 장치도 있고 해서요.  


한꺼번에 너무 많은 돈을 아들의 손아귀에 넣어 주면 쉽게 써 버릴까 봐 일부러 교육 차원에서 월 용돈만 입금해 주는 방식을 택했지만, 저로서도 찔끔찔끔 돈을 넣어주고 있는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습니다. 일단 자주 계좌 이체를 해야 해서 번거롭습니다. 잦은 입금으로 인해 실제로 입금한 금액보다 더 많은 돈을 쓰고 있는 불쾌한 착각이 들기도 하고요. 게다가 아들은 은행 잔고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아 보이며, 자신의 돈 관리를 하지 않아 보입니다. 별로 효과적인 돈 관리법이 아닌 셈이죠. 내년부터는 차라리 한 학기 용돈을 먼저 주고 집에 올 때까지 알아서 살림해서 쓰라고 해 볼까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돈을 절약할 방법이 된다면 말이에요.  


아직 대학 1년 차라 저도 아이도 한 달에 쓰는 용돈의 적정 액수를 정확히 책정하기 쉽지 않습니다. 사실 먹고 자는 비용 외에 대학생에게 돈 쓸 일이란 외식비와 유흥비 정도일 텐데 아들의 씀씀이를 보면 이것도 만만치 않습니다. 지난 몇 달간의 지출을 각 항목별로 조사해서 리포트를 만들어 아들의 얼굴에 들이밀고 싶은 마음입니다. 대충 제가 아들의 은행 잔고를 살펴본 바로는 먹는 비용이 대부분입니다. 식비를 제외하고는 교통비 그리고 기타 유흥 및 물건 구매를 포함한 잡비입니다. 반면, 책값이나 학업에 필요한 비용은 신기할 정도로 적습니다. 이 녀석 책도 안 사고 공부를 어떻게 하고 있는지 참 의심스럽습니다. 물론 책을 샀는데 장식용으로 처박아 두고 공부를 안 한다면 그 돈이 더 아까울지 모르겠지만요.  


뭘 그렇게 살 게 많으신지. 며칠 전에는 체육관에서 운동을 하려는데 괜찮은 운동화 한 켤레를 사야겠다고 했습니다. 그 전엔 봄방학이 되어서 친구들과 근교로 놀러 가려는데 Airbnb 숙박비를 내야 하니 돈을 더 달라고 하더군요. 봄방학 기간에는 기숙사에서 식사가 안 나오니 식비로 돈을 더 달라. 돈, 돈, 돈입니다. 물론 다 필요한 지출입니다. 

 

잔고에 돈이 충분히 있어도 아들 녀석은 제게 돈이 더 필요한 이유를 조목조목 때에 맞춰 친절하게 알려 줍니다. 학교생활은 어떠냐 학점은 잘 받고 있냐는 문자에는 답을 안 하는 거로 일관하는 애가 돈 앞에서는 철저하게 관리형 인간으로 돌변한다는 거 아닙니까? 그 녀석의 의도가 불을 보듯 훤합니다. 한 푼이라도 용돈을 더 받아내려는 속셈이겠죠. 봐라, 이렇게 돈이 이것저것 많이 드니 엄마는 계속 통장에 돈을 주입해 줘야 한다는 보고를 또박또박하는 겁니다.

 

아들 녀석의 돈 달라는 문자를 대할 때마다 저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 나옵니다. 부모니까 당연히 자식이 학교생활하는 데 필요한 비용을 대야 할 책임이 있긴 하지만, 제가 두 녀석의 삶에 돈줄이라는 생각이 부담스럽지 않은 건 아닙니다. 솔직히 말하면 어서 빨리 자식들이 독립하면 좋겠습니다. 자식을 위해 쓰는 돈이 결코 아까워서가 아닙니다. 아직 부양해야 할 자녀가 있는 매인 몸이라는 부채감이 싫은 거죠. 아무리 자식이라도 말입니다. 자유로운 영혼이 되기에는 아직 멀었다는 생각에 어깨가 무겁습니다.  


중년의 나이가 되었으니 이제 나만의 인생을 즐길 만할 때가 왔는가 싶은데, 자식들의 입은 전보다 더 크게 벌어져 있습니다. 둥지에서 엄마가 먹이를 가져다 주길 기다리는 어린 새들처럼요. 더 주세요. 더요 더. 그것도 한 마리가 아닌 두 마리가 입이 찢어지라 크게 벌리고 엄마를 기다립니다. 어미 새가 먹이를 가능하면 빨리, 더 많이, 퍼 나르기를 재촉하면서요.  


40대와 50대의 비애일까요? 이 시기가 자녀 교육비로 가장 큰 가계지출이 이어지는 때입니다. 여기다가 위로 노부모의 건강이 악화하기라도 해서 자식과 부모 사이에 낀 세대가 되기라도 하면 인생 최고의 경제적 위기를 맞이하기도 합니다. 40대 조기 명퇴가 빈번하고 먹고사는 일을 계속할 수 있는지 불투명한 가정을 주변에서 종종 마주합니다. 새삼 든든한 직장이 있고 건강한 육신이 있다는 게 입을 벌리고 있는 자녀들을 위해 얼마나 다행인가 싶은 생각이 드는 요즘입니다.  


적어도 앞으로 몇 년은 (아이들의 대학 졸업까지는) 경제적 긴장 속에 살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대학 교육을 잘 마치고 지들 밥벌이를 할 수 있을 정도는 되어야 할 텐데 벌써부터 걱정입니다. 계속 부모가 밑 빠진 독의 물 붓기처럼 돈을 들여 부어야 한다면 큰일이니까요. 제발 그런 위기는 오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네, 기도! 기도라고요. 

 

그러고 보니 저희 부모님께서도 제 유학을 위해 작지 않은 비용을 아낌없이 자식에게 쏟아부어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제 딴에는 공부하는 게 무슨 위세라도 된다고, 학업을 위해 부모로부터 받는 돈을 당연하게만 생각했었습니다. 제가 제 자식을 유학 보내고 학비와 생활비를 보내는 입장이 되고 나니, 그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습니다. 석사를 마치고 첫 직장을 갖자마자 기다리셨다는 듯이 제 은행에 입금을 중단하셨던 엄마의 야속했던 반응도 이제는 그 누구보다도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도 아들이 첫 직장을 갖게 되는 그 날이 와야 비로소 온전한 자유를 맛보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 날이 육아로부터 진정한 경제적 해방을 이루는 날이 되는 거겠죠? 


하긴 저희 어머님을 보니 꼭 그렇지마는 아닌 것 같습니다. 자식과 부모는 탯줄보다 더 끈끈한 돈줄로 묶인 관계가 아닌가 살짝 두렵습니다. 저를 인색한 부모라고 생각하실 분도 계실지 모르겠지만, 여력이 되는 한도에서 저 또한 여느 부모들처럼 기쁘게 자식을 위해 아낌없이 쓸 마음이 없지 않습니다. 다만, 자식이 부모의 도움 없이도 자립할 수 있을 정도로 넉넉한 삶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우선이라는 거죠. 같은 돈을 쓰더라도 반드시 도와야 하므로 돕는 것보다 안도와도 되는데 돕는 그런 여유로운 부모가 이왕이면 되고 싶은 바램입니다. 아들이 쪼들리면 제 마음도 쪼들려 괴로우니까요.  


한 가지만 더 욕심을 내자면, 스스로 자립이 가능하다면 부모의 돈을 바라지 않는 아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적어도 그 정도의 철이 들은 자식으로 키웠기를 희망합니다. 부모에게 용돈을 주거나 하는 것은 바라지도 않습니다. 물론 준다면야 달갑게 받겠지만요. 두 아들의 은행 잔고 채우는 일은 대학 때까지만 하고 끝날 수 있다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제가 자식에게 너무 비 헌신적인 엄마일까요? 세상의 수많은 어머님께 묻습니다. 설마 저만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니겠죠? 


자녀가 어려서는 돈에 구애받지 않고 가능하면 많은 걸 해 주고 싶은 마음이 컸었다면, 이제는 슬슬 더 해주면 안 될 것 같은 현실적인 걱정도 듭니다. 왜냐고요? 제가 언제까지 자녀를 위해 모든 걸 다 마련해 줄 수는 없으니까요. 너무 오래 부모의 돈줄에 묶여 지내다 보면 영영 독립하지 못할까 싶은 우려도 없지 않습니다. 때가 되면 아프지만 엄마의 탯줄로부터 분리해 온전한 한 개체로 성장하듯이 성인이 되면 부모의 돈줄로부터 독립하는 게 정상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들의 경제적 독립이 오는 날 저는 비로소 한 독립적인 인간을 만들어 냈음에 강한 자부심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둥지를 떠나 훨훨 날아가는 두 마리 새의 건강한 모습을 가슴 뿌듯하게 느끼면서요. 


저의 이런 감상에 찬물을 끼얹듯 아들로부터 메일이 하나 때맞춰 날아왔습니다. 봄철을 맞이하여 아드님께서 온갖 옷가지들을 구입했다는 쇼핑 명세서가 달린 반가운(?) 소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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