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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효경 Mar 31. 2018

#35. <거꾸로 쓰는 육아일기>

전화는 어떻게 거는 건가요?

핸드폰 기능 중에 아마도 가장 사용하지 않는 기능이 전화를 거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적어도 저에게는 그렇습니다. 워낙 전화하는 걸 소름 끼치게 싫어하는 저인지라 웬만해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거는 일이 없습니다. 왜 그렇게 전화 거는 일이 힘들고 조심스러울까요? 문자라는 것이 존재하기 전에는 전화를 이토록 싫어하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전화 통화 자체를 싫어하는 건 아닙니다. 가까운 사람과 전화통 붙잡고 긴 시간 이야기를 하는 일이 없지 않으니까요. 근데 아주 아주 친밀한 관계가 아니라면 제가 먼저 전화를 걸기는 무척 부담스럽습니다. 제 소심한 성격 탓인지 모르겠지만 누군가에게 전화를 거는 게 마치 자는 사람을 흔들어 깨우는 것만큼이나 미안합니다. 무슨 대단한 일이라고 누군가를 호출해 불러낸다는 게 (그것도 내가 편한 시간에 마음대로) 상대방에게 누가 되는 것 같아 불편합니다. 차라리 낯선 사람을 붙잡고 길을 묻는 게 쉽겠습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시나요? 그래서 저는 전화를 걸지 않습니다. 아주 만만한(!) 사람이 아니고서는요. 제가 함부로 전화를 삑삑 눌러 댈 수 있는 편한(!)사람 말입니다. 그중에는 역시 남편이 있고, 한국에 계신 엄마나 언니 정도입니다. 가까운 친구도 문자로 물어보죠. 전화 지금 해도 괜찮을까 하고요. 어쩌면 만만하다는 표현이 맞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미 전화 통화를 자주 했던 사이어서 전화 거는 일이 불편하지 않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지 싶네요. 아무튼, 이런저런 이유로 저는 전화 거는 걸 극도로 부담스러워하는 부류의 사람입니다.   


아, 근데 말입니다. 이런 제 성향 때문에 아들과 통 전화 통화를 못 하고 있다는 겁니다. 물론 제 선택이긴 하지만, 왠지 이래도 괜찮은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우린 결코 만만한 사이는 아니지만, 모자지간이라는 가까운 사이는 아닙니까? 생각해 보니 아들과 전화 통화한 게 손가락으로 꼽습니다. 아들이 고등학교 시절에도 서로 전화로 목소리를 섞어가며 통화를 해 본 적은 자주 일어났던 현상이 아니었습니다. 요즘 세대는 친구들끼리도 전화보단 문자로 이야기하는 세대라고 하죠. 저도 아이들과 문자를 더 많이 나누었더랍니다. 문자로 빨리 답이 오지 않아 답답해하면서도 이상하게 전화 통화 버튼을 꾹꾹 누르지 못한 적이 더 많았죠. 때로는 급한 일로 전화를 걸기도 했었지만, 아들이 전화를 제때에 잘 받지 않았습니다. 한마디로 불통이 잦았던 거죠. 전화를 받지 않을 때 문자를 치면 즉각 답이 오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전화보다는 문자를 선호하는 방식을 자연스레 택하게 되었나 봅니다. 전화해서 답을 못 받는 것보단, 문자를 보내 놓고 답을 받는 게 남는 장사였으니까요. 아들의 문자는 전화보다 답의 속도가 훨씬 빠르긴 했습니다. 학교 수업 중이거나 친구들과 같이 있을 때는 전화받는 일이 수월하지 않을 때가 많으니 그렇기도 했겠죠. 그러다 보니 저도 문자로 물어볼 일이 있으면 미리미리 보내 놓고 여유 있게 답을 기다리는 습관에 길들여졌습니다. 제가 선호하는 방식이기도 했고요. 문자는 하루가 지나더라도 언젠가는 답이 오긴 오더라고요. 답할 가치를 못 느끼는 경우에 오지 않는 경우도 간혹 아주 없진 않았지만요.  


보아하니 남편도 저와 아주 다르지 않습니다. 아이들과 전화하는 일은 거의 없고, 문자로만 소통합니다. 오늘은 누구와 문자로 무슨 이야기를 오갔는지를 서로에게 보고하는 게 저희가 자녀에 대해 나누는 대화의 패턴이 되었습니다. 오늘도 남편은 아들과 나눈 문자를 자랑하듯 저에게 보여줍니다. 가끔은 무슨 정보부 스파이처럼 일급비밀을 대하듯 제 약을 올립니다. 궁금해서 보여달라고 안달복달해야 가까스로 핸드폰의 문자 메시지를 보여주는 배짱을 부립니다. 전화통화였다면 이런 유치한 짓도 하지 못했을 텐데 기록이 가능한 문자 덕분인 거죠.  


제가 전화를 잘 못 거는지라 틈만 나면 남편에게 아들한테 전화해 보라고 부탁을 합니다만, 남편도 저처럼 통화 버튼에 알레르기라도 있는 사람처럼 멀리합니다. 저도 마찬가지고요. 아들과의 전화라면 무슨 대통령과의 면담처럼 어렵게만 느껴지네요. 쉽게 전화를 거는 사람들을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습니다. 특히 친하지도 않은데 전화를 불쑥불쑥 잘 거는 사람을 보면 살짝 불쾌한 느낌마저 듭니다. 나는 못 하는 걸 너무 쉽게 하는 것이 얄미운 거죠. 이 사람 나를 만만하게 보나? 남들을 다 저처럼 생각하는 어쭙잖은 저의 오만과 편견인 줄 모르는 건 아니지만요.   


전화 때문에 은근히 신경이 곤두서네요. 문제는 문제입니다. 아들과 전화하지 않는 부모가 되었으니까요. 아들이 한 지붕 아래 살 때는 전혀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미국 동부와 서부, 한국과 미국이라는 거리를 두고 있자니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네요. 이 문제를 문제로 생각해도 될까요? 전화하지 않는 게 아니라 전화를 못 거니까 문제는 문제입니다. 전화 걸기가 무슨 고관대작과의 심각한 대화라고 아들에게 전화를 못 거냐고요. 제가 생각해도 한심한 부모입니다. 이렇게 계속 지내다가 아들 앞에서 한마디 말도 못 하고 쭈삣거리게 되는 건 아닐까요?  


누구는 저더러 페이스타임을 하라고 하더군요. 전화도 걸기 힘든데 영상 통화라니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전화로 누군가의 목소리를 불러 오기도 힘든데 얼굴까지 통째로 전부 보여 달라고 (또 현재 있는 장소까지 폭로하기를 요구하며) 호출을 한다고요? 오! 저에겐 세상에 이렇게 무례한 일도 없을 겁니다. 영상 통화는 어린아이를 둔 부모가 잠시 멀리 출장을 갔을 때 하는 그런 특별하고 부득이한 상황에서만 가능한 이벤트라고 저는 생각되거든요.  


영상 통화를 추천한 친구가 그럽디다. 전화 통화가 거북할 경우 페이스타임을 하면 입고 있는 옷이나 겉모습에 대한 이야기도 말의 소재가 될 수 있어 되레 사소한 이야기를 나누는 게 쉬워질 수도 있다면서요. 하긴 그 사소한 대화를 나누는 게 불편해서 전화 자체를 멀리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만나서 별 할 이야기가 없는데 (원래 매일 보는 사이가 아니면 할 말이 별로 없어지는 게 당연하잖아요), 전화를 붙잡고 대화를 이어가는 게 고역일 것 같습니다. 전화를 걸지 못했던 진정한 이유 중의 하나인 거죠. 잘 지내니? 밥은 먹었고? 지금 뭐하는데? 학교는 갔다 왔어? 뭐 이런 지극히 평범하고 드라이한 질문들을 어쩌다 한 번 건 전화상에서 나누기는 참 거시기합니다. 그런 대화를 하려면 차라리 전화통을 내려놓자. 뭐 이런 변명 같은 주장을 하고 싶네요.   


그렇습니다. 그래서 아들과 전화는 못 하고 문자만 가물에 콩 나듯 주고받으며 지내고 있습니다. 제 최대의 걱정은 아들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전화 통화를 하고 싶어 죽겠는데 못하는 것은 더욱더 아니고요. 사실 별로 전화 통화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합니다. 딱히 해야 할 말도 없고 멋쩍은 대화를 이어가느니 안 하는 게 속 편합니다. 


근데 뭘 걱정하냐고요? 제 진짜 걱정은 아들이 왜 우리 엄마는 내게 통 전화를 하지 않지?라고 생각할까 봐 그게 걱정입니다. 엄마는 내가 궁금하지도 않나?라고 오해할까 봐 걱정입니다. 엄마 마음은 그게 아닌데 전화하지 않는 것 하나만 보고 행여나 소식 없는 엄마에게 섭섭함을 느낄까 봐 그게 걱정입니다. 그런데도 전화통을 쉽게 들게 되지는 않네요. 워낙 숫기 없는 엄마라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숫기가 없는 것도 제가 전화를 못 거는 숨은 이유 중의 하나가 맞기는 맞을 겁니다. 아… 이러다 보면 제 사회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자아비판의 영역으로 넘어가게 될지 모르겠네요. 이놈의 전화 때문에 멀쩡한 사람이 자꾸 이상해집니다.  


남편은 저처럼 이런 일로 전혀 괘념치(!) 않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카톡에 있는 이모티콘을 사서 아들과 문자에 쓰겠다며 아까부터 전화기를 만지작거리고 있습니다.  


참, 그런데 갑자기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저는 그렇다 치고 울 아들은 왜 저에게 전화를 하지 않는 걸까요? 이 녀석도 저처럼 전화 못 거는 병을 앓고 있는 걸까요? 그렇다면 모전자전에 부전자전이 겹쳐 우리는 분명히 한 가족임이 틀림없네요. 어디 한 번 기다려 봐야겠습니다. 누구의 증세가 좀 더 심각한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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