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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효경 Apr 06. 2018

#36. <거꾸로 쓰는 육아일기>

빈 둥지에 부는 신(新) 바람

주변에서 저를 보면 한국에 있는 아들이 적응을 잘 하고 있는지 묻습니다. 이 질문을 받을 때마다 순간 멈칫거리게 됩니다. 우리 아들이 한국에서 잘 지내고 있나? 저도 잘 모릅니다. 아니, 압니다. 적어도 아들이 뭐라고 대답할지는 압니다. 암, 알고 말고요. 열에 열, 아래 세 가지 중의 하나가 늘 번갈아 가며 돌아오니까요. 1번, Everything is good. 2번, So far so good. 3번, Nothing crazy yet!  


저도 아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얼마나 궁금하겠어요? 문제는 잘 지내냐는 질문은 매우 복합적이고 다양한 마음을 담은 것인데 질문의 답은 항상 너무 허망하게 위 세 가지 중의 하나로 메아리처럼 울려온다는 거죠. 사랑한다는 말로 사랑하는 마음을 고스란히 다 담을 수 없는 것처럼 엄마가 아들에게 묻는 안부의 질문이 그런 것 같습니다. 어찌 다 말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사랑한다 백번 말해도 늘 부족하게 느껴지고, 그래서 사랑한다는 말을 하는 것조차 그 의미가 희석될까 입을 차마 열지 못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에요. 아들에게 잘 지내냐고 수없이 묻고 싶지만 묻지 못하는 마음이 그와 같습니다.    


형식적으로나마 아들의 대답만 믿고 잘 지낸다고 생각하는 게 부모로서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큰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잘 지낸다고 걍 믿어 주는 거. 그렇게 믿고 또 믿으며 믿음을 연습해 가는 거. 저도 믿음과 함께 성장해 가는 것 같습니다. 제가 성장해야 아들도 성장하겠죠? 제가 아들을 여전히 청소년 취급하면 아들은 아마 성인으로 영영 성장하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요. 아들과 동반 성장을 하며 요새는 그렇게 빈 둥지를 지키고 있습니다.   

자, 아들이 잘 지낸다니 한숨을 좀 돌리고 요새 제가 어떻게 사는지 제 이야기를 좀 할까 싶어요.     


생각해 보니 제 일상의 모습이 다소 바뀌었습니다. 문득문득 내 삶의 패턴이 달라져 가고 있음을 느낍니다. 바뀐 것에 대한 어색함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예를 들면, 남편과 둘이서 최근 한식당을 찾았을 때입니다. 한식당은 주로 아이들과 고기를 먹으러 갈 때만 찾던 곳인데 남편과 둘이 간 것부터 변화한 선택의 시작입니다. 불판을 주위로 늘 네 식구가 옹기종기 앉았었는데, 남편과 불판을 사이로 단둘이 앉고 보니 역시 남은 자리가 휑했습니다. 자리의 배치도 달랐습니다. 저희 네 식구는 늘 아이들끼리 나란히 옆으로 같이 앉고 남편과 제가 앉아서 불판을 사이로 부모와 자식팀으로 나뉘어 마주하는 게 정석이었거든요. 어느 레스토랑에 가도 늘 그렇게 앉았더랬죠. 사소한 자리 배치의 변화가 내 인생이 바뀌었다는 신호를 알려옵니다. 그렇습니다. 아이들은 이제 친구와 함께 지들끼리 한식당에 가서 고기를 먹겠죠. 그럴 것이라는 막연한 추측이 아니라 엄연한 현실입니다. 엊그제도 아들은 한식당에 가서 뭔가를 거하게 드셨더군요. 가격을 보아하니 불판을 깔고 바비큐 불을 지폈음이 틀림없습니다. 


남편과 마주 앉아서 메뉴를 스캔합니다. 아이들과 함께 왔을 때는 눈여겨보지 않았던 메뉴를 꼼꼼히 살피면서요. 불판을 피우지 않을 계획이었으니까요. 차라리 평소대로 한식당에 왔으니 바비큐를 시킬 걸 그랬나 봅니다. 의외로 둘이서 메뉴를 조정하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제가 “대구 매운탕 어때?” 하면 남편은 “그런 걸 왜 여기서 먹어?” 하고, “그럼 보쌈 먹을까?” 하면, 같은 돼지고기라며 오삼 불고기가 어떠냐고 반문합니다. 서로 먹고 싶은 것을 강하게 주장하는 건 아니었는데 그렇다고 해서 선뜻 상대방의 제안을 받아들이려고 양보하지도 않습니다. 괜히 사소한 메뉴 선택에 오랜 신경전을 벌였습니다. 결국, 다 포기하고 얼큰한 전골을 먹기로 겨우 합의를 봤습니다. 부대 전골을 먹자고 하니 별 반응이 시원찮았고, 여러 전골과 전골 사이를 돌고 돌아 애매한 두부전골로 (호불호로 갈리지 않았다는 그저 그런 이유 때문에) 낙찰을 봤습니다. 맛이 기대했던 거에 못 미쳤는데 그나마 함께 주문했던 돌솥비빔밥이 만족스러워 그것으로 겨우 마음을 달랬습니다.  


외식할 때 4인 밴드에서 이젠 딸랑 남편과 나의 2인조 듀엣으로 변했습니다. 늘 제 옆자리에 앉던 남편이 어느새 마주 앉아 제 식탁의 정면 주인공이 되었고요. 옆에 앉는 것이 더 정겨운데 마주하고 앉으니 미팅하는 것처럼 어색하기도 하고, 좀 더 예의를 차려야 할 것 같은 부담이 듭니다. 정면으로 얼굴을 맞대고 보니 옆에 나란히 앉았을 때보다 거리가 멀어진 느낌도 없지 않아 듭니다. 20년도 훨씬 전에 이렇게 마주 앉아서 데이트할 때 음식을 시켜 놓고도 이야기하느라 맘껏 음식에 집중하지 못했던 제 소싯적 시절이 마구 떠오르면서요.  


달라진 것이 있다면, 대화보단 음식에 집중하는 사이가 되었다는 거죠. 허기진 배를 남편 앞에서 절대 감추지 않습니다. 남편 눈치를 보지 않고 돌솥비빔밥과 두부전골을 폭풍 흡입했으니까요. 처음엔 사이좋게 돌솥비빔밥을 각자의 그릇에 나누었습니다. 내 그릇을 다 비운 후 돌솥에 남아 있던 감칠맛 나던 비빔밥을 보며, “자기 밥 더 먹을 거야?” 하며 질문은 건성으로 던진 채 이미 제 밥숟가락은 돌솥 바닥을 벅벅 소리 내어 긁으며 입으로 옮기기에 바빴으니까요.  


전골은 남편과 둘이서 먹기에 터무니없게 너무 많았습니다. 대부분 남은 음식을 투고 박스에 그대로 가져왔습니다. 차라리 냄비를 들고 갈 걸 그랬나 봅니다. 남편은 “둘이 먹기에 너무 많지 않아?” 하며 제가 전골을 시킬 때부터 못마땅했는데, “남은 거 싸 갖고 가서 내일 자기 먹으면 되겠네” 하는 저의 단호하면서도 기쁨에 격앙된 발언 때문에 남편은 더 이상 반대를 하지 못했습니다. 전에 같으면 먹다 남은 음식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었는데, 이제 남편의 하루 한 끼만 걱정하면 되는지라 작은 양이라도 열심히 챙겨 오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남편의 눈치 아닌 눈치를 보면 컨테이너 박스 두 개에 남은 전골을 마지막 국물 한 국자까지 모조리 퍼 왔습니다. 마치 집에 먹이를 줘야 할 애완견을 챙기는 주인의 마음으로요. 


음식점에 가서 아무것도 챙겨 오지 못하는 전혀 다른 케이스도 있습니다. 한 번은 짜장면이 너무 먹고 싶어 중화요릿집에 남편과 단둘이 찾았습니다. 의례 겪는 짜장면과 짬뽕 사이의 메뉴 고민은 둘째 치고, 둘이 가니 메뉴의 가짓수가 2가지로 전락해야 했습니다. 겨우 2가지 메뉴만 시키고 나니 아이들과 함께 먹을 때보다 훨씬 만족스럽지 못하더군요. 짜장과 짬뽕 사이에서 짬뽕을 눈물겹게 포기하고, 이어 탕수육과 새우 깐풍기 사이에서 탕수육을 다음 기회로 미루는 일이 상당히 어렵더군요. 아이들이 있었으면 탕수육에 새우 깐풍기는 물론이고, 그리고 짜장과 짬뽕도 한 젓가락 정도는 얻어먹을 수 있었는데 말입니다. 2개 메뉴를 시켜 놓고도 양이 많아서 금방 배가 불러왔습니다. 남은 음식을 싸 가지고 가도 되는데, 둘이 앉아서 먹다 보니 자꾸만 짜장면 면발이 입으로 입으로 하염없이 들어가더라고요. 그 많은 양의 접시를 (참고로 이곳은 시애틀에서 양이 많기로 유명하답니다) 싹싹 비우는 사태까지 가고 말았습니다. 맛없는 두부전골은 한 국자만 먹고 고스란히 집으로 싸 갖고 왔지만, 맛있는 짜장면 그릇은 소화 기능에 무리를 주면서까지 마지막 면발까지 후루룩 해치우고 왔다는 거 아닙니까? 둘이서 식당에 갔을 때 생길 수 있는 폐단 중의 폐단입니다.     


아이들이 나가고 나서 남편과 제가 집에서 함께 보내는 시간의 방법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같이 유튜브를 보며 히히덕거리는 일이 부쩍 많아졌고 (주로 7080 가수들의 노래를 듣거나 옛날 연예인이 나오는 프로그램), 저녁에 식탁에 앉아 이것저것 잡담을 늘어놓으며 시간을 허송세월 하며 보냅니다. 간간히 이런 잡담 사이로 과일 접시까지 등장합니다. 과일을 먹는 행위는 저희 집 안에서 거의 찾아보기 힘든 풍경이었는데 말입니다. 그것도 남편과 둘이서 과일 접시를 마주하고 앉아 담소를 나눈다? 햐~ 아이들이 집에 없으니 집 안 풍경만 바뀌는 게 아니라 사람의 식성도 달라지네요. 원래 저희 집은 남편과 아이들이 일절 과일을 좋아하지 않아서 그간 잘 사다 두지도 않았을뿐더러 과일이 탁자의 주인공이 되는 일은 거의 전무했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뒤늦게 배의 시원하면서도 달달한 맛을 즐기기 시작하더니 최근에는 하찮게 보던 오렌지마저 무슨 닭다리 뜯듯이 잘도 뜯어먹습니다. 심지어 과일을 달라고 조르기까지 합니다. 덩달아 저도 한동안 잊고 있던 과일의 단맛을 다시 찾게 되었고요. 이런 풍경 낯설지만 달콤한 맛이 나쁘지 않습니다.    


좋은 말로는 저녁이 좀 더 여유로운 삶이 된 거죠. 늘어난 잡담과 식후의 과일 먹는 일 때문에 전보다 집에서의 제 학업 능률이 (네! 제가 하루 중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일터에서 퇴근해 집으로 온 뒤에 제 맘껏 읽고 쓰고 그야말로 노는 시간입니다) 현저히 떨어지는 것을 사실 간과할 수는 없습니다. 마치 학창 시절 옆자리 친구들과 떠드느라 자율학습 시간에 그날 마쳤어야 할 수학 정석과 성문 영어를 다 못 끝낸 찝찝한 마음 상태로 귀가하는 것에 비유할까요?     


아무튼, 우리 부부의 대화가 그간 질적으로 성장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양적으로 많아지긴 했습니다. 생각해보니 퀄리티에서는 좀 더 직설적이며 다소 외설적으로 되어갑니다. 아이들이 없다는 이유로 19 금 대화도 서슴지 않고 돌직구로 날리질 않나, 말을 가려서 해야겠다는 목적도 희박해 진지 오래입니다. 서로 간 언어 순화에 별로 신경 쓰지 않습니다. 아이같이 어린애처럼 징징대기도 하고 어리광도 피우고 아이들이 없으니 엄청 유치해집니다. 


의외로 이런 저질 대화에서 전에는 미처 맛보지 못했던 색다른 재미를 봅니다. 그래서 중년의 부부는 진솔해지다 못해 나도 모르게 노골적이 되며 조금 더 나아가 뻔뻔한 수준으로 종종 전락하게도 되는 가 봅니다. 하루 종일 정장을 입고 불편하게 지내다가 집에 와서 허름한 일상복으로 갈아입듯이 말입니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막말을 해도 괜찮은 익숙함과 편안함이 주는 장점인 거죠.      


신혼 때가 톡 쏘는 사이다 같은 맛이었다면 지금은 구수한 숭늉 같은 맛에 비유할 수 있을까요? 이런 게 같이 살아온 세월을 통해 배어 난 깊은 맛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이들이 더 장성하고 손자 손녀를 얻으며 세월의 더께를 입고 나면 어떤 맛으로 우리는 서로 변해 있을지 궁금하네요. 시어 빠진 묵은지 같은 맛이 날지 아니면 오랫동안 정성 들여 고아 낸 사골 뼈 국물 같은 맛이 날지 앞으로의 살아갈 날의 그 맛이 궁금해집니다.  


이런 저의 달라진 삶을 빈 둥지 증후군이라고 부르기엔 다소 거리가 먼 듯합니다. 아이들이 떠나고 난 저의 둥지는 자리가 빈 게 아니라, 둥지에 새로운 공간과 자리가 생긴 겁니다. 복잡다단하고 오밀조밀했던 둥지에 새로운 자리가 생기고 나니 어느새 살랑살랑 신(新) 바람이 불어옵니다.   


오늘도 아들 녀석이 신다가 놓고 간 캐주얼 신발을 꺼내 신으며 “나 댄디해진 것 같지 않아?”하며 사뭇 얼굴에 미소를 짓는 남편의 모습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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