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효경 May 14. 2018

#39. <거꾸로 쓰는 육아일기>

지는 마더스데이

오늘은 마더스데이입니다. 이런 날이 해가 갈수록 부담스러워집니다. 교회에 가서는 “짐승만도(실제로는 ‘개’라고 명시하셨음) 못한 자식”이라는 격한 설교 내용을 들었습니다. 마음이 숙연해지기는커녕 목사님이 저렇게 막말을 해도 되는가 싶어 심기만 불편합니다. 그 불편한 심기 뒷면엔 지난주 한국에 계신 부모님께 전화 한 통 드리지 못했던 불효가 떡 하니 자리 잡고 있었으니까요. 시어머님께는 카드 한 장 없이 우편으로 보낸 꽃 배달이 은근히 마음을 불편하게 했습니다. 옆에 앉은 남편도 설교 시간 내내 한숨을 푹푹 쉬는 게 그의 심기도 편하진 않은 것 같습니다. 해가 가고 나이를 먹어도 부모님께 하는 일이 나아지지 않고 변함이 없다니 매우 한심한 일입니다. 해가 갈수록 이렇게 목사님을 통해 혼이 나는 것도 할 짓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런 날이 제정된 것을 차라리 원망해야 하나요? 이런 이야기는 세상의 모든 불효자를 위해 조용히 모른 척하고 보내면 어떨까요? 불효하는 자식도 그렇고 부모 대접 못 받는 부모도 서로 불편한 날이니 말입니다. 마더스데이 없는 나라로 이민 갈까 심각하게 고민해 봅니다. 제발 이런 날 훈계조의 설교, 이제 정말 그만 듣고 싶습니다.   


위 부모에게는 잘 못 해도 내리사랑이 있듯이, 이런 날 인간의 이기적이고 이중적인 잣대는 아이들에게 날카롭게 섭니다. 저는 부모에게 못해도 아이들은 제게 잘 하기를 바라는 못된 심보이지만, 워낙 인간이란 그렇게 타고난 것을 제가 어쩐다고 바뀔 수는 없지 않습니까? 작년까지만 해도 아이들에게 선물은 못 받아도 평소에 전혀 쓰지 않는 외계인 언어 같은 언어로 아이들이 적어 준 마더스데이 카드는 읽어 볼 수 있었습니다. 이제 그 카드마저도 소중한 옛 추억이 되었음을 깨닫습니다.  


사실 지난주부터 은근히 기대했죠. 이제 대학생 아들이 되었으니 이런 날 정도는 알아서 챙겨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요. 웬걸? 오늘 오후 12시를 기해 그것이 그릇된 망상이었음을 정확하게 깨닫습니다. 지난 18년 동안 제가 받았던 마더스데이의 카드와 선물은 모두 남편의 숨은 조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었음을 서늘한 마음으로 확인합니다. 남편이 아이들에게 “얘들아, 이번 주 마더스데이 알지?” 하고 미리미리 경고해 주던 그 중요한 역할이 빠지고 나니, 아이들의 달력에서 마더스데이는 어느새 사라지고 말았나 봅니다. 비통하네요. 온 나라가 마더스데이로 떠들썩한데 어째서 우리 아들만 그 따가운 경종을 못 듣고 있는 걸까요? 그나마 못 들어서 몰랐다면 다행일까요? 듣고도 엄마에게 돌릴 눈곱만큼의 애정이 없었던 거라면? 아… 오늘 같은 날은 우리 집 앞에 마더스데이 깃발을 조기로 내려 달아야 할 것 같습니다.   


마음에 그렇게 조용히 조기를 달았습니다. 하지만 슬프거나 눈물이 나지는 않습니다. 단지 조금 괘씸합니다. 은근 자존심이 상합니다. 내 뱃속으로 낳은 자식으로부터 이런 무시를 당하니 자존심이 짓밟혀 꿈틀 합니다. 남편을 통해 아이들에게 마더스데이인데 연락을 하라고 주문을 넣을까도 생각해 봅니다. 엎드려 절 받기라 그것도 탐탁지 않습니다. 치사한 생각이 들어 마음을 접지만, 12시가 지나고 오후가 되어가니 초조해지기도 합니다. 그런 저의 넋두리를 듣다 못 한 옆의 교회 지인분들이 저마다 조언을 주십니다. 아이들이 알아서 마더스데이를 챙기게 기다리고 있지 말고, 직접 연락을 하라는 겁니다. 전화를 걸든 문자를 보내든 마더스데이에 엄마가 섭섭하다는 얘기를 전달하라는 거예요. 아… 이건 더 자존심 상하는 일이 아니고 무엇이겠어요? 눈물로 호소해 아들의 값싼 애정을 굳이 받아내야 하는 걸까요? 마더스데이라는 이유 만으로요? 이런 구차한 사랑은 생전에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데 말입니다. 여러 가지로 엄마가 되기란 세상 끝으로 낮아지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무리 도도했던 여인도 자식 앞에서는 한없이 낮아져야 하는 이 처량함이여.  

 

주변의 지인분들은 저보다 몇 년 더 사셨기에 삶의 지혜를 한 수 가르쳐 주십니다. 아이에게 마더스데이에는 하늘이 두 쪽이 나도 엄마에게 꼭 연락하는 것이라는 가르침을 전달해야 한다고 하시네요. 자식에게 교육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라고 하시면서요. 저도 지난 수년간 아이들을 이 부분에서만은 철저히 교육했다고 믿었었는데 눈에서 멀어지니까 엄마를 금방 잊어버리나 봅니다. 한 지붕 밑에 있었으면, 분명히 마더스데이와 제 생일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제 입을 통해 듣지 않고는 지나치지 못했을 테니까요.  


교육을 하고 싶어서라기보단, 그렇지 않으면 하루 종일 허망하게 아이들의 연락만 기다리고 있을지 모를 저 자신을 구조해 주기 위해서 선수를 쳤습니다. 과감히 경종을 울렸습니다. 제 맘 같아서는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아?”라고 엄포를 놓고 싶었지만, 지인들의 조언을 따라 가능하면 좋은 말로 좋게 좋게 오늘 마더스데이인데 그래서 엄마가 너희들에게 연락을 못 받아서 섭섭했다고 전했습니다. 마지막에 징징대는 모습의 이모티콘을 세 개나 연이어 날리면서요. 이수일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애원하는 심순애가 되어 아들에게 매달리라는 지인들의 작전을 그대로 따랐죠. 엄마가 되는 일은 참 멀고도 험한 장정입니다. 치사한 고개를 일 년에 몇 번이고 넘어야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놈을 버릴 수 없는 절절한 사랑이니까요. 이 길의 끝에 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승리의 월계수 관도 아닐 테고 번쩍거리는 장한 어머니 금메달은 더더욱 아닐 텐데요. 아마 이 길의 끝엔 팍팍한 회한의 한숨과 회오만이 안개처럼 눈앞을 가리는 건 아닐는지요. 


아무튼 문자를 그렇게 보내고 나니 두 녀석이 동시에 답신을 보내오긴 합니다. 한 녀석은 정말 최소한의 해야 할 말만 하는 무뚝뚝한 남자가 되어 있더군요. 지면도 넓고 하니 그의 말을 그대로, 모조리, 전부, 적어 봅니다. 무려 총 네 단어나 됩니다. 아무리 엿가락처럼 늘려도 네 자로 끝납니다. “Happy mothers day mom” 이 메시지를 뚫어지게 바라보았습니다. 아들의 목소리로 변환해 다시 한번 들어봅니다. “해피 마더스 데이 맘” 맨 마지막 단어 “맘”이라는 단어의 음색이 들리는 것 같습니다. 아마 조금 성의가 있었다면 ‘마암~’ 정도가 되겠죠. 아니면 아무런 감정 없이 할 수 없이 마지막에 붙여 놓고는 ‘맘’하고 끝을 내렸는지도 모릅니다. 성조에 따라 달리 들릴 수 있는 이 짧은 네 단어를 여러 번 반복해 귓속에서 틀어봅니다만, 아들의 마음이 잘 전해지지 않습니다. 유치원 아이도 이 네 글자로 끝나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인류가 만든 문명 중 가장 자랑스러운 언어를 이렇게 최소한으로 사용해도 되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녀석의 인색한 언어 사용을 보며 대학은 뭐 하는 곳인가 회의가 밀려오네요.   


그래도 지인들은 “Thank you!”라는 메시지로 아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해야 한다고 일러 주시더군요. 엄마가 무슨 죄라고 이렇게 비참하게 몰락해도 되는 건가요?  


아들이 둘이면 뭐합니까? 다른 아들의 반응도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앞선 녀석의 간결미 쩔은 문장을 따라갈 수는 없었지만요. 그 녀석에 비교하면 이 녀석은 훨씬 더 많은 인심을 쓰긴 했습니다. 안 그래도 전화하려고 했었다고, 그런데 월요일인 줄 알았다면서… 인심이 결국 자기변명을 위해 쓴 일이긴 했지만. 그것이 설사 사실이 아니더라도, 변명을 듣는 편이 아주 조금 낫다고 해야 할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오늘 마더스데이를 마감했습니다. 지인들 말이 백배 옳았네요. 제가 연락을 먼저 하지 않았더라면, 이 두 녀석으로부터 오늘 내로 연락이 오지는 않았을 예정이 맞았으니까요. 마냥 기다리다가 기다림이 점점 노여움이 되고 마침내 격분과 울화로 이어질 뻔했던 마더스데이를 일찌감치 선처하게 된 셈이니까요.  


씁쓸한 마음이 되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시어머님께 전화를 했더랍니다. 워낙 전화하기 싫어하는데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전화기로 저도 모르게 손이 가더군요. 그러고 나서 집에 와서는 허기진 배를 달래기 위해 에이프런을 두르고 저를 위한 요리를 시작했습니다. 배가 고플 때는 아무거나 집어 먹는 게 제 일인데 오늘은 특별히 처음부터 끝까지 정성스럽게 요리를 했습니다. 자신을 위해 요리를 해서 그럴싸한 수제 햄버거를 만들어 먹고 나니 기분이 조금 좋아지더군요. 그리곤 낮잠을 한숨 잤습니다. 질펀하게 낮잠을 자고 일어났는데도 아직 마더스데이가 한참은 남았습니다. 길고 긴 하루입니다. 낮잠을 자는 남편을 깨워 시애틀 선셋을 보러 (아니 지는 마더스데이를 지긋이 바라보기 위해) 슬슬 문밖을 나가볼까 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38. <거꾸로 쓰는 육아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