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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효경 May 15. 2018

#40. <거꾸로 쓰는 육아일기>

36초의 걸작

아들로부터 영상 카드가 마더스데이 하루를 지나 도착했습니다. 어제 아들들에게 ‘엄마는 영상 카드를 받고 싶어’라고 주문을 해 두었었거든요. 듣든 말든 요구하고 싶은 것은 말하는 성격의 엄마이니까요. 그랬다니까요. 아이들이 집에 같이 지낼 때도 그렇게 선물이나 카드를 대놓고 달라고 주문하던 엄마였다 고요. 그런데 아이들이 대학을 가고 나서는 무슨 이유인지 알아서 카드를 보내주겠지 하고 손 놓고 기다리고만 있었던 거예요. 무심한 아들들에게는 단도직입적으로 주문을 해야 함을 어제 비로소 깨달았네요.


아무튼, 그렇게 영상으로 카드를 보내 달라고 주문을 했지만 받을 기대를 하지는 않았습니다. 집에 있을 때도 아이들이 비디오 찍는 것을 무척이나 싫어해서 마지못해 조르고 졸라 두어 번 받아 본 게 전부였으니까요. 마더스데이에 문자 하나 날리지 않은 애들이 엄마가 영상 카드를 보내 달라고 했다고 정말 보내주는 지극 정성을 보일까 믿기지 않았거든요. 그리고 저 사실 그렇게 꽁한 엄마 아닙니다. 어제 일은 어제로 다 잊었더랬죠. 지는 선셋과 함께 마더스데이도 바닷물에 던지고 왔거든요. 워낙 어려서부터 무뚝뚝한 아들들이어서 저들의 무심함에 이미 잘 길들어 있기도 했고요. 그런데 한국에 있는 아들로부터 뜻밖의 영상 카드 선물이 온 것입니다. 36초짜리 짧은 영상이 제게는 36만 달러만큼이나 값진 선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기세를 몰아 과한 욕심도 부렸습니다. 다른 녀석에게도 문자를 보냈거든요. “내 비디오 카드 언제 줄 거야?”라는 앙탈을 부리면서 말입니다.  


영상을 받고 신이 나서 바로 답장을 보냈습니다. 첫마디부터 “고맙다. 엄마 엄청 해피하다..”로 시작했죠.  그리고 남편에게 받은 영상을 보란 듯 쏘아 주었습니다. 이것 봐라. 나 이런 엄마야. 우리 아들 멋지지? 하면서 감동에 쩔은 멘트를 남편에게 자랑하듯 보냈습니다. 남편이 질투하는 것인지, 제가 완전히 아들의 수작에 넘어갔다며 그렇게 쉽게 말려들면 아니 된다며 아주 정색을 하고 나섭니다. 남편의 말은 이미 귀에 들어오지 않네요. 아들과 남편 중에 오늘은 아들의 손을 들어주고 싶은 날이니까요.  


영상의 내용을 여러분께 소개하기 위해 그 짧은 36초 영상을 돌리고 또 돌렸습니다. 글자 한 자라도 토씨 하나라도 틀리지 않고 그대로 전달하기 위해서요. 제게는 너무 소중한 글자들이니까요. 차마 영상을 그대로 올리지 못하는 것이 (아이의 프라이버시를 위해) 안타깝기만 하네요. 영상은 아이의 배시시 웃는 얼굴로 시작됩니다. 비디오를 찍은 배경은 아마도 학교 내 어느 곳 같아 보입니다. 아들이 이런 곳에서 공부를 하나 봅니다. 아마 쪽지를 적어 놓고 읽으면서 촬영을 했는지 자꾸 눈의 초점이 좌우로 이동합니다. 희멀건 아들의 얼굴이 스크린에 뜨니 한 번도 잘 생겼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는데 핸섬하다고 해도 좋은 대학생의 모습입니다. 입가에 내내 미소를 품고 약간은 수줍은 듯이 말하고 있습니다. 이래서 제 아들 보러 항상 웃는 얼굴을 한다고 다들 말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중간쯤 가서는 코를 안경 위로 치켜올리는 부분이 나옵니다. make you proud라는 문장 뒤에 스스로 생각해도 감동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듣고 있는 저로서도 그 부분에서 코끝이 찡끗해지더군요. 36초의 영상을 한 문장씩 풀어 긴 장문의 시처럼 늘어놓고 보니 하나의 작품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를 위해 아들이 손수 지어낸 작품 말이에요. 몇 번을 들어도 질리지 않을 최고의 작품입니다. 아들의 시에서 제가 가장 좋았던 문장에 밑줄을 그어봅니다. 한 문장에만 긋고 보니, 다른 문장이 맘에 걸려 총 3 문장에 밑줄을 그었습니다.  


자, 그럼 36초로 만들어진 제 아들의 걸작, 마더스데이 한 편을 들어보시렵니까?  


Hi Mom.

Sorry it’s late but Happy Mother’s Day.

I really was gonna to call.  

But I forgot it was Sunday not Monday.  

Anyway I hope you know that I think about you and Dad a lot.  

And I want to make you guys proud.  

I’m doing pretty well over here.  

But um.. yeah, I found a group of friends I really like.  

I’m eating well and I enjoy over here.  

So you guys don’t have to worry too much about me.  

I try to call more often but you know you can call me whenever you want as well.  

Thanks for believing in me and Happy Mother’s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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