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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효경 Jul 05. 2018

#41, <거꾸로 쓰는 육아일기>

‘매우 형편없음’에서 ‘아주 형편없지만은 않음’

마더스 데이 이후로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흘렀네요. 바쁘기도 했지만, 사실 쓸 거리가 별로 없기도 했습니다. <거꾸로 쓰는 육아일기>가 만 1년도 채 못 돼 끝이 나고 마는 건가 하는 씁쓸한 상상을 잠시 저도 해 봤더랍니다. 보글보글 끓던 냄비가 한순간에 가라앉듯 대학 간 아들을 보낸 엄마의 들썩대던 마음에 적응이라는 것이 이렇게 순식간에 오는가 싶기도 했습니다. 어찌 되었든 잠시 쉬어 갈 수 있어 좋았고, 잠잠한 그 상태를 계속 누리고도 싶었습니다. 아무 일도 없지 않았던 건 아니었지만, 넘어진 김에 쉬어 간다고 주저앉고 나니 일어나기 싫어진 마음도 없지 않아 있었고요. 그렇게 앉아 있으면 마치 계속 쉴 수 있다고 믿고 싶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니 기록하지 않고, 쓰면서 가슴을 다시 휘젓지 않으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잊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고 나니 한국에 있는 아들 녀석은 대학 생활의 첫 학기를 마치게 되었습니다. 저는 운 좋게 한국에 나가 발표할 기회가 생겨서 아들 방학하는 시기에 맞춰 한국을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요새는 한국에 갈 일이 생기면 ‘저요!’ 하며 얌전하던 손이 자꾸 위로 올라갑니다. 피붙이 자식을 그곳에 두고 온 까닭이겠죠.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발표 장소가 있는 부산으로 향했습니다. 해운대 앞바다의 스위트룸에서 혼자 바다를 바라보는 것도 별로 흥이 나지 않더군요. 이유는 아들 녀석의 만들어 놓은 복잡한 월세 계약 때문이었습니다. 시차에 컨디션이 좋지 않고, 발표가 아직 끝나지 않아 부담스러운데, 기말고사가 남아 있다는 아들 녀석으로부터 카톡 메시지가 계속해서 날아 오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일주일 전만 해도 아들의 기숙사 퇴사 후 지낼 거처에 대한 플랜은 이러했습니다. 학교 친구들 셋과 함께 방을 나눠 쓰기로 했다면서 집을 알아보고 있다고 했죠. 한 명도 아니고 세 명, 아들까지 합이 넷이 모여 집을 쉐어한다는 게 좀 무리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오늘 날아온 카톡 메시지엔 그새 한 명이 빠지고 없었습니다. 빠져나오려고 했던 집에 사람을 대신 구해주지 못해서 결국 합류를 못 하게 되었다고 하더군요. 음… 벌써 낌새가 좋지 않았습니다. 


보증금 천만 원에 월세 76만 원으로 방이 두 칸 있는 집을 찾았는데 계약을 당장 내일 오후에 한다고 하더군요. 저는 그날 해운대 앞바다에 있었고, 다음 날 발표를 마치고 부리나케 서울로 올라가도 오후 내에 닿기는 힘들었습니다. 그건 둘째 치고, 보증금을 한 녀석이 낼 수 없는 사정이라 대신 월세를 올려 받고 본인과 다른 친구 하나가 각각 5천씩 보증금을 나눠 내기로 했다는 겁니다. 행여라도 월세가 밀리면 보증금에서 까는 게 일반인데, 이유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한 명이 보증금을 못 내겠답니다. 게다가 네 명에서 세 명으로 줄었으니 방 두 개를 쉐어하는 일도 애매한데, 한 명이 자신이 독방을 쓰겠다고 하고 월세를 좀 더 많이 내겠다는 계획이었습니다. 세 명 중의 하나는 보증금 안 내고, 또 하나는 독방을 쓰고, 제 아들은 월세가 남보다 적다고 좋아하는 눈치였는데 그래 봐야 고작 월 5만 원 적게 내는 불리한 계약서를 좋다고 쓰고 있었던 거예요.  


듣고 있자니 단박에 화가 나더군요. 오랜만에 전화로 아들과 논쟁을 했습니다. 칠칠치 못해 제일 불합리한 거래를 받아 가지고 왔으니까요. 독방을 쓰겠다는 친구라는 녀석은 같은 학교 4학년 선배라는데, 한국에서 쫌 살아 본 녀석이라 이런 거지 같은 계약을 어리숙한 후배 아들에게 내민 것이 아닌가 싶어 약이 올랐습니다. 얍삽한 남의 집 아들에게 열을 받았다기보단, 세상 물정 모른 채 당하기만 하는 제 자식에게 화가 치밀었죠. 해운대 바다를 바라보며 얼마나 악을 썼는지 모릅니다. 카톡 전화가 이유 없이 자주 끊겨 짜증이 더하기도 했고요. 이런 불리한 계약서에 엄마는 절대로 돈을 낼 수 없다고 해운대 앞바다를 바라보며 고래고래 엄포를 놓았죠. 내일 당장 계약서를 쓰겠다는 아들에게 청천벽력과도 같은 선포일 줄 알면서도 제 화를 이렇게 하지 않고는 다스리기가 힘들었답니다. 사태의 심각성을 뒤늦게 깨달은 아들은 뭐가 부당한 계약인지에 대해 꼬치꼬치 캐묻더니, 강경한 엄마의 태도에 밀려 할 수 없다는 듯이 알았다며 수화기를 마지못해 내려놓더군요. 전화를 끊고 나니, 내일 기말고사 마지막 시험이라는데 내가 너무 심했나 싶어 자책이 들기도 했습니다. 아들한테는 서울에 친척들이 수두룩하니 걱정하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았지만, 당장 기숙사 퇴사를 하고 집을 어떻게 구해야 하나 걱정이 되기도 했고요. 무엇보다도 친구들과 같이 살 거라며 신나게 계획했던 일이 수포가 되어 나름 애석해하고 있을 아들을 생각하니 제가 더 화가 났습니다. 저도 아들이 기쁘게 살기를 원하거든요. 그렇다고 이런 거지 같은 계약서를 쓸 수는 없지 않나 싶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마음만 답답했고요.  


답답한 마음에 전화를 돌렸죠. 안타깝게도 언니는 수요 예배를 본다며 전화를 받을 수 없었고, 가까운 친구한테 카톡을 보냈습니다. 상황이 아래와 같은데 이런 계약서를 써도 괜찮은지 물었죠. 저도 한국 물정을 잘 모르니 제 속단이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요.  


천만 원 보증금에, 월세 760인데 

1.     학생 A는 보증금 없이, 27만 원 

2.     학생 B는 보증금 5백에 월세 27만 원에 독방 

3.     학생 C는 보증금 5백에 월세 22만 원, 학생 A와 방 쉐어 


여기서 학생 C는 칠칠한 제 아들을 말합니다. 친구한테 날아온 답장은 단박에 “미쳤냐?” 였습니다. 그 뒤로 “A가 제일 신났네. 저게 말이 되냐? 불리한 정도가 아니고 독박이야. 장난해? 저러면 안 돼. 웃기는 애들이네.” 등등. 더 물어볼 필요도 없었습니다. 내친김에 오빠한테도 전화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는데 어떻게 생각해? 그랬더니 오빠의 대답은 좀 의외였습니다. 한마디로 말해, 아들이 맺은 계약은 절대 좋은 조건이 아니지만, 계약을 파기하고 아들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지 않음으로서 아들과의 관계에 엄청난 금이 갈 수 있다는 염려를 일러 주었습니다. 게다가 아들은 계약을 성사시키지 못한 장본인이 되어 친구들에게 미안한 존재로 남게 돼 앞으로 저들 간의 관계에도 타격이 없지 않을 거라는 겁니다. 그 모든 걸 감당하기엔 어느 정도 손해 보는 월세 금액이 차라리 낫다는 결론이었죠. 또 세 명이 같이 살다 보면 여러 가지 난처한 상황과 갈등을 접하면서 함께 사는 법을 배우게 될 테니 아주 나쁜 결정만은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행여 엄마가 우려했던 보증금 문제 등이 현실이 될 경우, 엄마 말을 앞으로는 더 신뢰할 기회가 생길 거라면서요. 듣고 보니 하나도 틀리지 않는 말이었습니다. 때로는 더 유익한 것을 얻기 위해 현재 쥘 수 있는 것을 내려놓아야 하나 봅니다. 관계가 돈보다 더 중요하기도 했고요. 물론 똑똑하면 애초부터 돈을 쓰지 않고도 머리로 많은 걸 해결할 수 있었을 수도 있겠죠.  


마음을 다잡고 아들에게 연락하려던 참에 녀석에게서 메시지가 날아왔습니다.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이 녀석 기말고사 공부 안 하고 월세 생각만 하고 있었구나였지만, 그새 친구들과 긴급회의를 했는지 아들이 먼저 희소식을 알려옵니다. 다른 한 친구도 보증금을 내기로 했고, 월세는 독방을 쓰는 애가 더 많이 내도록 조정을 하겠다는 거였습니다. 보증금 낼 수 없다던 아이가 1-2시간 만에 보증금을 내겠다는 것도 이상했지만, 더는 묻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미 마음에 아들이 원하는 것을 해 주기로 마음먹은 후였으니까요. 비록 시차로 잠은 자지 못한 밤이었지만, 친구들의 동의를 끌어낸 아들이 ‘매우 형편없음’에서 ‘아주 형편없지만은 않음’으로 한 단계 성장했기에 어느 정도 마음은 놓이던 밤이었습니다. 

 

하루가 지나, 계약서를 쓰기 위해 모두가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저는 한국 물정에 빠삭한 언니를 대동했고, 아이들 셋에, 선배라는 친구의 손 윗 누나 둘이 엄마를 대신해 자리했습니다. 부동산 업자까지 포함해 무려 여덟 명이 집 하나를 계약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대 부대가 월세 계약을 쓰기 위해 좁은 오피스에 옹기종기 앉고 보니 한 식구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얍삽하다고 생각했던 아들 친구 녀석의 계약을 앞두고 좋아서 히죽거리는 얼굴이 순해 보여 밉지 않아 보이더군요. 보증금 내기로 한 다른 친구 녀석도 순진해 보였고요. 모두가 세상 물정 모르는 철부지들 같아 보였는데, 그 서글서글한 눈빛들이 착해 보여서 마음이 놓였습니다.  


부동산 업자는 한국에서는 남학생들끼리 방을 쉐어하는 일이 거의 없는데 문화가 다른지 (아마도 아이들이 영어로 소통하는 걸 듣고 미국에서 온 교포라는 걸 깨달은 눈치였습니다), 세 명이 한 집을 쓰겠다는 게 무척 의아하다고 했습니다. 한국 문화를 잘 몰랐던 저에게도 그 말은 의아했습니다. 한국 애들은 혼자 방을 쓰지 남과 쉐어하기를 싫어하는지를 통 몰랐으니까요. 아들이 한 결정이 매우 미국적인 사고방식이었나 봅니다. 아들과 같이 집을 쓰기로 한 다른 친구들도 같은 사고방식이었고요. 사람들과 어울려서 사는 것이 혼자 사는 것보다 편하진 않겠지만, 오빠가 얘기했던 사람들과 부딪혀야만 배울 수 있는 점은 많을 것 같아 굳이 이런 문화는 한국을 따라 하지 않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 세 남자의 행보가 성공적일지 무척 궁금하지만, 작은 공동체 생활에서 아들이 체험할 것들은 앞으로 살아갈 인생에 크고 작은 자국들을 남길 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실패를 통해서도 체득할 것은 있기 마련이니까요. 한국에서는 택배로 모든 게 가능한 세상인데, 미국에서 익숙했던 이케아(IKEA) 상점까지 가서 집에 들여 놓을 가구를 사러 가겠다는 세 명의 다 큰 아이들을 보며 저는 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아들이 당분간 살 거처를 마련하고 저는 또 제 삶의 터전으로 돌아왔습니다. 하늘을 날아 먹이를 나르는 어미 새가 된 느낌입니다. (비행기를 타긴 했지만, 하늘을 날긴 했죠. 먹이인 돈도 열심히 퍼다 날랐으니까요.) 집에 오니 절 쫓아 날아온 건지 제 둥지로 또 다른 아들 녀석이 날아왔습니다. 여름 학기를 마치고 방학이 되어 집으로 돌아온 쌍둥이 아들입니다. 아직은 저만의 둥지를 온전히 마련하지 못했기에 부모의 거처를 필요로 하는 아들이고요. 부모 집이라며 이렇게 오고 가는 날도 앞으로 점차 줄어들겠죠? 저마다의 둥지를 만들기 위해 아이는 오가기를 반복하며 날아오르는 연습을 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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