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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효경 Jul 16. 2018

Tempesta Coffee 그리고 도넛

어서와~ 시애틀은 처음이지?

일주일을 기다렸다. 출근길 벨타운에 있는 커피숍을 주말에는 꼭 들러 보고 싶었다. 아주 조그만 커피숍인데 먹음직스러운 도넛이 윈도 너머 존재하는 것을 그만 보고 말았다. 이제까지 못 봤던 그런 도넛. 베이글의 원보다도 더 크고 두툼한 도넛에 달달해 보이는 토핑이 좔좔 흘러넘친다. 보기만 해도 군침이 넘어가는. 세상의 모든 도넛을 먹을 때 느끼게 되는 죄책감의 최악을 불러일으켰다. 미 전 대통령 빌 클린턴은 도넛 광이었다고 한다. 박스 채 끌어안고 먹어 치웠다는 기사를 언젠가 읽었던 기억이 난다. 대통령도 비껴가지 못하는 달달한 도넛의 유혹은 죄악시하지만 벗어나기 힘들다. 정크 푸드를 하나 먹고 나서 치러야 할 양심의 가책과 후회는 어떻게 감당한담? 그래서 출근길에는 절대 못 저지를 범죄였다. 주말의 일탈로 남겨두면서 하루하루 그 달콤함을 산처럼 쌓아가며 얼마나 고대했는지. 어젯밤엔 잠까지 설쳤다. 꿈에서 도넛을 먹는 꿈을 드디어 꾸고 말았으니까. 꿈에서 먹었지만 그 맛은 전혀 입에 남지 않고, 꿈처럼 아득하기만 하다. 평소엔 6시 반에 문을 여는데, 주말에는 8시가 되어야 문을 연다. 기상 후 아침 2시간을 아무것도 먹지 않고 기다린다. 도넛만을 온전히 느끼고 싶었던 나의 예의였을까? 아니면 도넛이 가져올 엄청난 칼로리를 의식했던 것일까? 커피 한 모금조차 입을 더럽히지 않았다. 그리고 시계가 8시를 알리자마자 문 밖을 나선다. 집에서 겨우 한 블록. 기다림은 이제 곧 끝이 난다. 가게에 들어서니 두 명의 점원이 나를 반긴다. 이렇게 작은 점포는 시애틀 어느 구석에도 본 적이 없다. 전에는 아주 조그만 바버 샵 (이발소)이었다고 한다. 벽에 붙은 하얀색 타일이 어쩌면 그때 남은 인테리어 디자인 일부일지도 모르겠다. 손님 한 명과 점원 한 명이 마주하면 가득 해지는 숍. 물론 앉아서 여유 있게 커피를 마실 의자와 탁자는 없다. 이 집만의 스페셜 커피가 뭔지 물었다. 보통 커피를 사러 가서 이런 질문을 하지 않는데, 로컬 커피숍에서만은 이런 질문을 해도 좋을 것 같았다. 커피 문외한 같아 보이긴 하겠지만, 관광객이 맛집 명소를 찾아와 명소의 명물을 찾으며 관광행위를 하면서 점원의 기분을 띄워 주고 싶었다. 뜻밖에 점원은 간판에 있는 대부분의 커피가 다 특별하다며 (진정한 점원의 자세), 포 샷 (four shots)으로 만들어진 에스프레소를 권한다. 투 샷도 많은데 포 샷이란다. 포 샷 커피를 마시고 도넛 맛을 보기도 전에 심장에 이상이 올까 두려워 지극히 평범한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이번엔 도넛을 고를 차례이다. 진열대를 빠르게 스캔해보니, 작은 점포 사이즈만큼 이곳에서 취급하는 도넛의 양도 무척 한정적이다. 겨우 한 트레이에 가득할 정도. 반 정도는 이미 트레이를 빠져나가고 없다. 옆에 붙은 고급 레스토랑 Orfeo의 키친에서 매일같이 구워내는 프레쉬한 도넛이라고 점원은 소개했다. 인터넷을 통해 물론 다 알고 있던 사실. 종류가 그리 많지 않았지만, 그중에 다섯 개를 골랐다. 마치 예쁜 액세서리를 고르는 마음으로. 신선한 여름철 베리가 가득한 도넛, 초콜릿 옷을 입고 쿠키와 머시 멜로 장식한 스모어 도넛, 아몬드 칩이 붙은 바닐라 도넛, 레몬과 피스타치오가 곁들은 도넛, 마지막 하나는 점원의 추천으로 체리와 초콜릿이 뒤엉킨 도넛이다. 기분이 좋아 평소답지 않게 팁을 잔뜩 주고 숍을 나왔다. 한 블록을 걸어가 어서 맛을 봐야 지하는 마음으로. 문을 나오면서 길거리 홈리스가 걱정이 되었다. 도넛 박스를 껴 안고 행복에 겨워 걸어가는 내 모습을 보면 미안해서 어쩌나 잠시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다행히도 노숙자와 한 명도 마주치지 않고 무사히 아파트의 요새로 들어왔다. 도넛도 무사하다. 박스를 여니 화려한 옷을 입은 도넛들이 나를 탐욕과 죄악의 세계로 단박에 밀어 넣는다. 나를 먹어봐 나를 가져봐. 기다려왔던 순간이 왔다. 입을 크게 벌리고 한 점씩 도넛을 겁탈해 간다. 아... 소문대로 쫄깃쫄깃한 도넛의 맛은 환상이다. 너를 도넛이라 부르는 것은 부당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너의 살점을 음미한다. 너의 이름을 도넛으로 욕되게 할 수는 없다. 너는 케이크와 어깨를 겨루어도 절대 부족하지 않아. 감미로운 너를 도넛 케이크라 불러주마. 혼미한 정신으로 도넛 하나를 온전히 끝냈다. 다시 박스를 고 남은 네 개의 그들을 식탐에 취해 아련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올해 남은 모든 자제심을 불러내어 뚜껑을 간신히 닫는다. 오늘 죄악은 이것 하나만으로 충분하다. 말했던가? 이 숍의 이름이 Tempesta라고. 폭풍 같은 도넛의 소용돌이에 빠진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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