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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우아맘 Jul 15. 2024

난 미국에서 3개월 동안 밥만 했다

종일 놀지 않는 전업맘입니다만.

작년 봄, 갑작스럽게 아이 둘을 데리고 신랑과 미국에 입국했다. 미국 땅을 처음 밟은 그날, 기대되고 설레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이 한가득이었다. 겁 없이 '도전'이라는 이름으로 미국행을 결정했지만, 사실 입국 준비 기간이 너무 짧아 미국에서 살 집도 정하지 못한 채, 무작정 아이들을 데리고 함께 입국했으니 말이다.


우선 미국에서 우리 가족이 지낼 집을 구하는 일이 가장 급했다. 그리고 난 아이들 픽업도 해야 할 테니 신랑과 나, 각각 차 한 대씩 우린 차 두 대가 필요했다. 또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기 위해 필요한 서류도 빠르게 준비해야 했다. 생각했던 것 보다도 해야 할 일이 훨씬 많았다. 덕분에 난 미국에 입국하고는 거의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잠시도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막상 미국에 와보니 잠시 여행을 온 것도 아니고, 역시 나의 짧은 영어로는 생활하기가 어려웠다. 실제로 미국에서 생활을 해야 하고 아이들 학교 관련해서 챙길 것도 많았다. 나의 역할이 커질수록 점점 영어로 인해 막히는 일들이 늘어났다. 영어가 더더욱 절실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에겐 영어 공부를 할 만한 시간적 여유가 전혀 없었고, 그 당시에 그런 시간을 낸다는 게 나에겐 사치였다.


남편은 방대한 양의 프로젝트와 공부를 해내느라 한국에서보다 더 얼굴 보기가 힘들어졌다. 나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집안 살림 대부분을 챙겨야 하는 상황이라 생각보다 훨씬 바빴다. 미국에서 나는 그렇게 종일 바쁜 나날을 보냈다. 그런데 그렇게 매일 바쁜 날을 보냈지만, 정작 나를 위한 시간은 전혀 나질 않았다. 그 사실이 나를 더 힘들게 했다. 나는 이렇게 종일 놀지 않는 전업맘이 되었다. 세상의 모든 '엄마'들 정말 존경한다.






나의 자존감은 어디로.


미국에서 처음 몇 달은 생각지 못한 일들까지 겹쳐 생활이 순탄치 못했다. 우선, 미국에서 우리 가족이 지낼 집을 구해야 하는데, 그 당시 구경해 볼 수 있는 집조차 거의 없었다. 집을 구하기 전까지 우리는 아이들과 저렴한 호텔에서 지내야 했다. 그 기간이 생각보다 꽤 길어졌고, 아이들에게 너무 미안했다.


그 당시, 야속하게도 환율은 사상 최고점을 찍었다. 환율은 우리에게 경제적인 부담감을 더해주었다. 또 국제 운전면허증을 신청했으나, 뭐가 문제인지 이유도 모른 채 발급이 거절되어 한 동안 운전대조차 잡을 수가 없었다. 참고로, 이곳에선  차가 없으면 마트고 공원이고 한 발자국도 나갈 수가 없다. 게다가 나의 영어 실력은 바닥을 쳤으니, 세상에 이런 감옥살이가 따로 없었다.


어느 날, 나를 돌아보니 미국에 와서 3개월 내내, 하루 종일 집안 청소하고 빨래하고 짐정리하고 가족들 밥만 하고 있었다.  미국에 오기 전 한국에서, 10년을 항상 바쁜 워킹맘으로 살아온 난, 미국에서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도 나름 보람되고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결국, 나는 분명 놀지 않는 전업맘이 되었다. 아주아주 성실한.


그 무렵, 한국에서 지인이 안부차 연락을 했다. 그냥 말 그대로 안부 인사였을 것이다. "애들은 학교 갈 테고, 남는 시간엔 뭐 해? 이제 회사 안 가고 노니까 좋지? 미국생활은 어때? 편하지? 많이 누리고 와." 난 순간 울컥했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졌다. 물론 그럴 일이 아닐 수도 있었다.


미국에 온 후,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의 자존감은 바닥을 치고 있었다. 어느 순간, 나의 '자존감'은 바닥을 드러내던 나의 '영어 실력' 보다 더 깊은 지하로 뚫고 들어가고 있었다. 어쩌면 지금 나에겐 내 '영어 실력'보다 나의 '자존감'을 회복시키는 게 더 시급한 문제일지도 모른다. 이야말로 총체적 난국이다.

아이들 데리고 미국에서 살 집 보러가는 길. 이곳엔 우리가 살 집이 있을까? 정말 호텔 생활 그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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