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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현 Feb 20. 2016

유령



시계의 알람이 시끄럽게 울려 되고 있었다. 남자는 이불속에서 손만 뻗어 책상 위를 더듬거렸다. 하지만 그의 손에는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고, 그는 인상을 찡그리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실눈을 뜨며 초점을 잡고 책상 위를 바라 보았지만, 시계는 그곳에 없었다.


알람은 여전이 시끄럽게 울리고 있었다. 남자는  시계를 찾기 위해 방안을 뒤지기 시작했다. 화장실, 침대 밑, 책상 서랍, 있을 만한 빈 공간은 다 찾아 봤지만 시계는 그런 그를 비웃듯이 더욱 열심히 울려되고 있었다.


그의 몸이 옷장 앞에서 멈추었을 때, 시끄럽게 울리던 알람도 급작스럽게 멈추어졌다. 그는 손이 옷장 문을 열려했을 때, 문득, 어젯 밤의 일이 기억났다.


해고 통지를 받고 술에  취해 집으로 돌아왔을 때도 시계의 알람은 울리고 있었다. 언제 부터인가, 시계의 알람은 맞추어 놓은 시간에서 조금씩 밀려나서야 그 기능을 발휘했다.  배터리을 교체 해 보기도 했지만, 소용은 없었다. 십년 전, 사회에 첫발을 내 딛을때 구입한 시계다. 고장난걸 알면서도 그동안 정이들어 버리지도 못하고 그냥 사용해 왔었지만, 이제는 미련이 사라졌다. 쓸모 없는건 버려지는 것이다. 남자는 그 사실을 깨달았고, 시계를 휴지통에 넣어 버리고는 쓸모없는 새끼 라고 연신 중얼거리며 잠이 들었다.


남자는 옷장에서 시선을 거두고, 쓰레기통을 열어 확인했다. 없다. 시계는 그곳에도 없었다. 도대체 어디서 알람이 울리고 있던 것일까. 사라졌으면 조용히 처박혀 있던지.


쓸모없어.


남자는 벽에 걸린 거울을 쳐다봤다. 자신과 방 안은 어둠으로 뒤덮혀 제대로 보이지가 않았다. 커텐은 햇살을 빈틈없이 차단하고 있었고, 그 어둠의 가운데 자신이 서 있었다. 문득, 기묘한 느낌이 그를 사로 잡았다. 시선. 자신을 주시하는 타인의 시선이였다. 그는 침을 삼키며 컴컴한 자신의 방을 천천히 훝어보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다시 거울로 고개를 돌렸을 때, 한 남자가 자신을 비웃으며 거울 속에 서 있었다.


쓸모없는 것은 버려지는거야. 너는 쓸모없어.  조용히 사라져.


그는 조용히 침대로 올라가 다시 이불 속으로 파고 들었다. 남자는 그대로 잠에 빠져들었다.


방안은 남자의 숨소리만이 들려왔다. 그때, 옷장의 문이 천천히 열리는가 싶더니, 어둠을 뚫고 한 그림자가, 웅크리고 있던 몸을 펴고 바닥으로 내려왔다. 그림자는 옷깃을 스치며 남자에게 다가갔다. 그는 악몽이라도 꾸는듯, 식은땀을 흘리며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그림자의 손이 그의 머리를 쓸어 넘기며 작게 속삭였다.


걱정하지마. 당신은 쓸모없지 않아. 나에게는 소중한 사람이야. 나는 당신을 버리지 않아. 아직은


그림자는 남자의 입술에 입맞춤을 하고는 다시 옷장속으로 몸을 들이밀어 웅크리며, 어둠속으로 젖어들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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