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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nt kim Jan 03. 2024

위태로운 현재의 내가 과거의 나를 원망해.

살긴 살아야겠는데,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다면 과거를 원망하자.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 ‘카모메 식당’의 사치에처럼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을 수 있는 용기를 가질 수 있어서,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가지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될 수 있어서!




내가 유일하게 유지하고 있는 모임의 멤버들은 대학을 다니던 시절, 과에서 학생회를 같이 운영한 사람들이다. 지금은 모두 내로라하는 공기업, 안정적인 공무원, 박사 학위를 가진 촉망 받는 연구원들, 그게 아니더라도 자기 밥벌이는 알아서 척척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니 졸업 후에 만났을 때 누구 하나 주눅 들지 않는다. 덕분에 대학시절의 모든 이야기는 즐거운 추억거리가 되고, 현재는 현대인이라면 가져야 할 적당한 스트레스도 가지고 있기에 서로 공감하는 이야기도 나눌 수 있다. 그리고 앞으로 당연하게 기대할 수 있고 마땅히 그려지는 미래가 있다. 모두 열심히 살아온 사람들이니 그럴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다. 또한 그들은 직업뿐만 아니라 인격적인 면으로 보더라도 깎아내릴만한 부분 없이 모두 좋은 사람들이다.


그들에 비해 대학을 거의 놀다시피 다닌 ‘나’로서는 도태되지 않고 이런 사람들과 함께 스스럼없이 어울릴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는 그 자체가 감사한 일이다.

사회적 관점에서 이들과 견주어본다면 비롯 아무것도 내세울 것 없지만 과거의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열심히 하고 있다는 자존심 하나로 그들 사이에 끼여 있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다.



나를 주눅 들지 않게 한 건, ‘믿음’



그렇게 그들 사이에서 나를 주눅 들지 않게 한 건, ‘믿음’이었다. 나는 기필코 잘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믿음.

비록 지금은 쉬는 날 하루 없이 움직이고 어쩌다가 쉬어갈 수밖에 없는 작은 여유라도 생기면 초조함을 감출 수 없지만, 이 또한 무한 경쟁 시대에 열심히 사는 ‘나’로서는 성공을 위해 감수해야 하는 즐거움이었고. 하루하루 살아내기에도 버거운 현실에 매일 사 먹어야 하는 점심값이 아까워 조금 빠른 점심을 먹고 집에서 나섰다. 출근하는 길 버스비조차 줄이고 싶어서 걷는 것이 좋다는 핑계로 왕복 2시간이 되는 거리를 폭염주의보에도 걸어 다니는 ‘나’와 나와 엮여 불쌍한 ’나의 동생‘이었다. 거기다 누군가에는 커피값밖에 되지 않는 5,000원이라도 더 벌어보겠다고 밤늦게, 어느 날은 새벽에 마치면서도 컵라면 하나 사 먹는 것을 아까워하며 순수익을 계산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굳게 믿으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그렇기 때문에 언젠가는 내가 하고 싶다고 외치고 다녔던 이 일로 인해 나도 엄마에게 명품 가방 하나 정도는 여유 있게 선물하고 보란 듯 떵떵거리며 살 수 있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또한 나를 믿고 따라와 준 나의 동생에게 따사로운 빛한줄기를 내려줄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는 날이, 하루라도 더 빨리 오기를 바라고 또 바라며 더 열심히 움직였다.




어느 겨울, 바쁘다는 핑계로 거의 2년 만에 만난 대학 시절 나의 인연들.

너무 오랜만에 나온 자리인지라 이방인과 다름없는 나를 반겨주는 착한 사람들, 오랜만에 등장한 나에게 질문이 많을 수밖에 없다. 자영업자로서 그들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살고 있는 나를 궁금해한다는 걸 알기에 나의 직업에 대한 호기심 어린 질문들도 이들에게 답할 땐 어렵지 않다. 서로의 근황을 물어보고 화기애애하고 따뜻한 자리였다. 이런 분위기를 남기는 건 역시 사진밖에 없다! 멤버가 많은 탓에 셀카로 우리 모두를 담기에는 한계가 있었고 직원분에게 부탁을 드려서 사진을 한 컷 남겼다. 이때 나는 바쁜 시간에 사진촬영을 부탁하는 게 민폐가 될까 봐 마음이 불편했고 이만큼만 찍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멤버 중 한 사람이  “HY가 이렇게 눈치를 보는 타입이었나? 왜 이렇게 눈치를 봐? 이 정도는 부탁드려도 된다!“ 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렇게 바뀌어 버린 내가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보았다.


생각해 보면 별 뜻도 없이 그냥 불쑥 내뱉은 별말도 아닌 것을. 몇 해가 지난 지금도 가끔 떠올리게 된다. 그 물음 끝에 나는 예전의 당당했던 나는 어디로 갔는가? 하는 생각에 잠기곤 한다. 교수님이 뭘 하고 싶냐고 물어봐도 당당하게 아직 모른다고, 지금은 재미있는 일을 하겠다고 스스럼없이 말했던 나였고 공대를 다니면서 전공과 전혀 관련이 없는 중학생을 가르치는 영어강사로 아르바이트를 하는 무모함을 가졌던 나였다. 나중엔 뭐라도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안 하는 것보단 해보는 게 낫다는 마인드로 살아가는 나였는데 지금의 나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지금의 내가 도통 마음에 들지 않는 요즘, 과거의 ‘나’를 생각하는 일과 지금의 ‘나’를 비교하는 일을 멈추지 못한다. 분명 나는 나의 직업을 좋아했었다. 남들과는 다른 길을 간다는 자부심과 하나하나 내 손으로 모두 만들어내는 것에 대한 성취감도 높았다. 그에 따른 금전적 보상도 나쁘지 않았기에 할만한 일이라고 생각했었고 취업하기 힘든 요즘 세상에 어쩌면 나는 나에게 잘 맞는 길을 찾은 것 같다고 안도했었다.


그러나 지금. 한때는 나의 자존감이자, 정체성이라고 당당하게 말했던 ‘나의 일’로 인해 내가 좋아하는 ‘나’는 없어졌다. 이제는 나의 직업을 물어보는 이에게 이조차 말하고 싶지 않아서 “그냥 놀고 있어요”라고 이야기하거나 ”손으로 먹고살아요.” 이 정도로만 나를 표현한다. 내 직업을 말하고 설명하는 것보다 이 나이가 들도록 변변한 직업 하나 없는 나 자신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스펙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들이라고는 내가 싫어하는 지금의 ‘일’과 관련된 것 들 뿐인데. 나는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스핀 오프 해야 할까. 아니면 아예 모든 것을 놓아야 하나? 과연 나는 놓을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일까?



머릿속 생각들을 시각화하는 작업

이런 생각들에 잠식된 내가 가끔 위태로워 보인다고 했다. 나보다 더 행복한 삶을 살기를 바라는 나의 동생이, 이제 먹고사는 건 걱정하지 말고 하고 싶은 일을 해보라고 했다. 한 가지 일만 지독스럽게 해서 그럴까.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우선은 내 머릿속 생각들을 시각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생각이 나는 대로 흘러가는 대로, 내 머릿속을 정리하는 글을 써보자.
모두 다 잠시 쉬어가며, 나중에 뭐라도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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