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눈을 눈여겨볼 때 생기는 일

최효안 에세이 <내 안의 발작버튼>

by 최효안

우리나라 겨울은 참 화끈하다. 첫눈도 살포시 내리는 법이 없다.


2025년 12월 4일, 첫눈은 폭설로 시작됐다.


그것도 퇴근 시간에 맞춰 정확하게.


“서울·인천·경기 북부 대설주의보(18시 기준)”라는 재난문자를 받자마자
하늘이 기다렸다는 듯 폭설을 쏟아부었다.


공기, 비, 바람, 눈, 꽃, 하늘, 구름…
대가 없이 주어지는 자연의 선물 가운데 내가 가장 아끼는 것은 단연 눈이다.


눈은 유난히 양가감정을 일으키는 존재다.


운전할 때 눈은 공포이고 골칫거리다.
내릴 때도 위험하고, 그친 뒤엔 염화칼슘 덕에 더 미끄럽다.

하지만, 운전을 하지 않을 때 눈은 완전히 다른 얼굴을 한다.
폴폴 흩날리며 떨어지는 눈송이, 조용히 쌓여가는 순백의 풍경—
이보다 로맨틱한 장면이 또 있을까.

나는 낙상을 유난히 조심하는 사람이지만,
그래서 더 천천히 걸으며 눈을 자세히 본다.
조심스러운 발걸음 덕에 오히려 눈의 아름다움은 더 또렷하게 감상된다.

세상의 혼탁함을 꾸짖듯
순백의 결로 어디든 내려앉는 눈송이들.
매년 보는 눈이지만 매번 감탄한다.

어떤 거장의 회화도 실제 눈 오는 풍경을 온전히 담지 못한다는 사실.
자연은 자연 그대로일 때 가장 완벽하다.


특히 겨울의 절경은,
낙엽이 모두 떨어진 앙상한 가지 위에 눈이 소복이 얹힐 때 완성된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봄에는 꽃, 여름에는 신록, 가을에는 단풍을 보여준 자연이
겨울에는 잎을 비워낸 나무 위에

마침내 눈꽃을 내려 최고의 절경을 만들고 있구나.

아낌없이 베푸는 자연이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고 새삼 고맙다.


첫눈이 내렸으니, 이제 진짜 겨울이다.

올겨울만큼은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을 깊이 만끽하리라.


최효안 예술커뮤니케이터

금, 토,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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