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국립중앙박물관 '뮷즈' 신드롬, 그 뿌리에 최순우

최효안의 <압도적 한 문장>

by 최효안

최효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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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효안의 압도적 한 문장


<그가 있었기에 최순우를 그리면서>, 김홍남 외 32명, 진인진, 2017



2025년 대한민국 문화예술계를 강타한 초유의 현상은 가히 신드롬이라 불릴 만한 국립중앙박물관의 선풍적 인기다. ‘뮷즈’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내며 잘 팔리던 박물관 문화상품은 K팝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의 캐릭터를 닮은 뮷즈들 매진 사례로 정점을 찍고 있는 가운데, 2025년 7월 한 달 관람객 수가 70만 명에 육박하며 매일 인산인해가 일상이다. 2023년 한 해 418만 명 방문으로 역대 최대 관람객을 기록했는데, 이미 올해 8월에 418만 명을 넘기며 국립중앙박물관 80년 역사상 최초로 500만 명 돌파가 확실시된 상황이다.

이 같은 ‘국립중앙박물관 신드롬’의 원인을 따져보면, 1945년 개관한 이래 꾸준히 우리의 빼어난 문화재를 수집, 보존, 연구, 전시한 덕분이다. 신드롬 시발점이 된 뮷즈 역시 150만 점이 넘는 세계적 수준의 소장품이 있기에 가능한 일인 것이다. 상설 전시유물만 1만여 점에 달하 는 국립중앙박물관이 오늘날 주옥같은 우리 문화유산을 소장할 수 있는 것은 수많은 이들의 노고 덕분이지만, 거기에는 혜곡 최순우의 업적이 지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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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전시실 앞, 케이팝 데몬 헌터스 인기 열풍에 인파가 몰렸다. / 사진출처. 뉴스1/민경석 기자



한국미의 아름다움을 예찬한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라는 저서로 일반인에게도 잘 알려진 최순우는 10년간 관장을 지내는 등 40년간 평생 국립중앙박물관에 헌신했다. 개성 출신인 그는 1945년 개성시립박물관 근무를 시작으로 1954년 국립박물관 보급 과장으로 전쟁통에 유실될 뻔한 우리 문화재를 지키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국립중앙박물관 보전과학실을 최초로 만들어 문화재 보존의 기틀도 다졌다. 1966년 박물관 대표로 일본에 강제 반출된 우리 문화재를 환수했고, 1974년 관장에 취임해 유럽, 미국 등지에서 우리 문화재 순회전시로 한국의 미를 세계에 알렸다. 한마디로 평생 박물관 인으로 살면서 본령인 전시기획은 물론이고 문화유산 발굴 및 유물수집과 보존 처리 그리고 조사연구는 물론 교육과 박물관 인재 양성까지 가히 ‘한국미와 한국의 마음’을 알리는 데 일생을 바쳤다.



<그가 있었기에 최순우를 그리면서>는 최순우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김홍남, 유홍준 등 전 현직 국립중앙박물관장을 비롯해 32명의 우리 예술계를 대표하는 명사들이 최순우를 기리는 글을 엮은 책. 이들이 꼽은 ‘최순우의 압도적 한 문장’은 최순우를 지극히 존경하는 이들이 꼽은 글이라 더욱 빼어나다.



‘우리 시대 최고의 안목’으로 최순우를 꼽는 유홍준은 그의 존재 자체가 한국 미술의 축복이라고 말한다. 유홍준이 환상적이라고 칭송한 부석사 무량수전을 예찬한 최순우의 명문(名文)은 김형국 서울대 명예교수 역시 뽑은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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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학자 최순우 최순우 옛집 사랑채에서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를 집필했다 / 사진출처. 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 홈페이지




“소백산 기슭 부석사의 한낮, 스님도, 마을 사람도 인기척이 끊어진 마당에는 오색 낙엽이 그림처럼 깔려 초겨울 안개비에 촉촉이 젖고 있다. 무량수전, 안양문, 조사당, 응향각들이 마치 그리움에 지친 듯 해쓱한 얼굴로 나를 반기고, 호젓하고도 스산스러운 희한한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나는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사무치는 고마움으로 이 아름다움의 뜻을 몇 번이고 자문자답했다.”


건축가 김수근은 최순우가 도자기는 물론, 공예, 건축, 현대미술, 조형에 심지어 고전음악과 무용까지 모든 예술에 탁월한 ‘눈썰미’로 우리나라 예술계 전반에 크나큰 영향을 미쳤다고 말한다. 그는 특히 최순우가 한국인의 마음의 멋을 간파하는 부분에 감동한다.




“중국의 흰색은 너무 밝은 흰색이나 우리 것은 차분히 가라앉고 조용한, 힘주지 않은 흰색 곧 먼 지평선에 가까운 하늘빛이 도는 흰색이요, 조용하게 스친 흰색이다 (...) 한국인의 성품이 자연의 생김과 더불어 소박하고, 조용하며, 뽐내지 않는 마음으로 이루어졌다.”


최순우는 직접 예술가들을 독려해 우리 전통 예술을 부흥시킨 든든한 후견인이기도 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22호 매듭장인 김희진은 최순우 덕분에 국보 하회탈에 매듭을 다는 기회를 얻으며 장인으로서 기량을 키운 인물. 그녀의 일취월장에 최순우는 따뜻한 격려의 글을 남겼다. 매듭의 미를 ‘아리송하다’, ‘곰살궂다’(꼼꼼하고 자세하다)라고 표현한 부분에서 그만의 탁월한 미의식이 느껴진다.




“말이 쉽지 사뭇 버림을 받고 있던 그 아리송하고도 곰살궂은 매듭의 가지가지 짜임새와 실을 나르고 물을 들이고 끈을 짜는 일까지 내내 손수 해내야만 제맛을 찾을 수 있는 고된 과정을 20년 가깝게 외롭게 견뎌낸 그의 야무진 의지의 보람이었다.”


최순우는 국립중앙박물관을 반석 위에 올려놓은 것은 물론 우리나라 최고의 사립박물관으로 꼽히는 호암미술관, 호림박물관의 설립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삼성그룹 창업자인 호암 이병철 회장과 개성 출신 기업가 호림 윤장섭 회장이 한국 문화재를 수집하는 데 고견과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 덕분에 해외에 반출될 뻔한 국보급 문화재를 호암과 호림이 수집할 수 있었다. 특히 호림이 사립박물관을 설립하려 할 때, 당국의 허가가 나오지 않아 애를 먹자 발 벗고 나서 도움을 주기도 했다. 그 결과 1982년 한해에 동시에 호암과 호림이라는 사립박물관이 문을 연다. 최순우의 이런 노력 덕분에 우리는 전 세계인이 열광하는 국립중앙박물관은 물론 호암과 호림이라는 세계적 수준의 사립박물관을 향유할 수 있게 됐다. 정양모 전 국립 중앙박물관장이 전하는 최순우의 원칙은 이제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국제적 명소가 된 국립중앙박물관의 지표가 되길 희망한다.




“박물관이 가지고 있는 소장품, 자료는 모두 나라의 것이고, 국민의 물건이니 누구에게나 친절해라” 하시며 그 일을 돕는 사람도 공부가 된다고 일러주셨습니다. 혜곡 선생은 모든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것을 박물관의 원칙으로 여기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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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있었기에 최순우를 그리면서>, 김홍남 외 32명, 진인진, 2017 / 사진출처. © KYOBO BOOK CENTRE



최효안 북 칼럼니스트/디아젠다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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