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
전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는 한국 가수 BTS(방탄소년단) 2집 WINGS가 ’ 16.10.10. 발매되기 직전 달에 갑자기 평소의 4배 정도 팔린 책이 있다. 바로 독일 작가 헤르만 헤세가 쓴 책 ‘데미안’이다. WINGS 앨범의 타이틀곡 ‘피 땀 눈물’이 데미안을 모티브로 한다는 얘기와, 선과 악이 함께 공존하는 키스 장면이 들어간 티저 영상은 수많은 아미(ARMY, BTS팬클럽)들에게 데미안을 통한 예습 의지를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대한민국 전 연령대가 사랑하는 세계문학 1위인 데미안은 국내에서만 200여 종이 발매 중이며 WINGS 앨범 나오기 직전 달에 1만 부가량 판매되었지만 평소에도 2,500부 정도 꾸준히 판매되고 있다. 과연 무엇이 이 책을 찾게 만들고 빠져들게 하는 것일까?
데미안은 주인공인 에밀 싱클레어의 11살 시절부터 시작한다. 어른이 된 헤세가 11살의 어린아이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을 매우 구체적이고 많은 문장으로 설명하고 있다.
"선량하고 천진스럽게 허용된 놀이를 하면서도 나는 누이들이 견디기 힘들어하는, 결국 싸움과 불행으로 끝날 정열과 과격함에 자주 휩싸이곤 했다. 그런 다음 분노가 닥쳐오면 나는 아주 역겨운 놈이 되어서 스스로 행동하고 말하는 도중에 벌써 그것이 못돼먹은 일임을 깊고도 뜨겁게 느끼는 일들을 행하고 말하고야 말았다. 그러고 나면 고약하고 어두운 후회와 참회의 시간들이 찾아왔다. 그다음 용서를 구하는 괴로운 순간들이 오고, 그제야 다시 명랑함의 광채, 분열되지 않은 고요하고 고마운 행복이 겨우 몇 시간, 또는 몇 순간 지속되었다."
싱크레어가 느끼는 감정을 그대로 느끼도록 이 감정 저 감정을 설명하고 있다. 어떻게 어릴 적 그 느낌을 떠올리고 여러 방향에서 많은 문장으로 설명할 수 있는지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은 이로 인해 독자도 본인의 비슷한 어린 시절의 기분을 떠오르게 되며 공감하게 된다. 헤세의 필력은 참으로 대단하다. 이로 인해 어른들이 흔히 무시하곤 하는 어린이들의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고민들이 ‘별 것’ 임을 깨우치게 해 준다.
"크로머의 사나운 휘파람 소리보다도 어머니가 살그머니 내게로 다가오는 게 더 두려웠다."
헤세는 '데미안' 집필 전 아버지의 죽음, 아내의 정신분열, 아들의 중병, 자신의 지병까지 겹쳐서 가정적 위기를 맞고, 정신분석 치료를 받게 된다. 구스타프 융에게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꿈에 대한 해석, 그림을 통한 회복과 치유를 받았으며 이는 데미안 안에서 그대로 활용되고 있다. 싱클레어 심경의 변화를 꿈을 통해 나타내고, 그 해석을 통해 고민하며 성장한다. 어릴 적 집 문 위에 있는 새, 베아트리체를 그리려다가 완성한 에바 부인의 얼굴, 알을 깨고 나오는 메새의 그림은 이야기 흐름을 잡아주는 매개체로서 큰 역할을 한다.
책의 주인공이 싱클레어임에도 책의 제목이 데미안인 이유가 무엇일까? 어리고 순진한 싱클레어가 자기 세상의 틀을 깨기 위한 노력을 시작한 시기와 완전히 깨고 나올 때 데미안이 있었으며, 데미안으로부터 시작되어 데미안으로 끝났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때문에 혹자는 데미안은 에밀 싱클레어 본인이다 라는 해석을 하기도 한다. 이렇게 생각하고 책을 다시 읽어보았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모든 등장인물은 별도 인물인 것으로 판단했다.
나 자신을 찾아가기 위한 모든 과정을 이끌어 준 데미안, 방황하는 과정에서 지적 호기심을 채워 주며 결국은 자신을 뛰어넘을 수 있도록 인도해 준 피스토리우스, 성숙하고 고귀한 여인으로서 진정한 사랑을 느끼게 해 준 에바 부인은 독자들로 하여금 자신에게는 어떤 멘토가 있었는지, 자신은 누구의 멘토였는지를 돌아보게 해 준다. 아무리 훌륭한 멘토가 있어도 그 멘토가 진정 훌륭한 멘토가 되기 위해서는 이를 받아들이는 멘티의 역할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나는 왜 데미안 같은 멘토가 없었는지, 나는 왜 다른 사람에게 데미안 같은 멘토가 되지 못했는지 아쉽다면 자신을 돌아봄으로써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를 두려워한다면, 그건 그 사람에게 자기를 지배할 힘을 내주었기 때문이야" - 데미안
"자신에게서 멀어지는 건 죄악이야. 사람은 거북이처럼 자신 속으로 완전히 기어들어갈 줄 알아야 하는데."
- 데미안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지 말게. 자연이 자네를 박쥐로 만들었다면 스스로 타조가 되려고 해서는 안 돼. 예감들이 나타나면, 영혼 안에서 목소리가 말을 시작하면 그 소리에 자신을 완전히 내맡기고, 그것이 선생님이나 아버지 또는 그 어떤 신에게 어울리는 일일까 묻지 말게!" - 피스토리우스
"자네가 죽이고 싶은 인간은 아무개 씨가 아니라, 틀림없이 하나의 위장에 지나지 않을 거야. 우리가 어떤 인간을 미워한다면 우리는 그 모습 속에서 우리 안에 있는 무언가를 보고 미워하는 거지. 우리 자신 안에 없는 것은 우리를 자극하지 않는 법이니까." - 피스토리우스
"누구나 자신의 꿈을 찾아내야죠. 그러면 길이 쉬워져요. 하지만 언제까지나 지속되는 꿈은 없어요. 지난 꿈을 밀어내고 새로운 꿈이 나타나죠. 그 어떤 꿈도 꼭 붙잡으려 해서는 안 돼요." - 에바 부인
'데미안'의 주된 내용이자 주제이기도 하다. 헤세는 사람이라는 존재가 고통을 이겨내며 성장해 나가는 과정을 에밀 싱클레어라는 주인공을 통해 묘사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에밀 싱클레어의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의 변화에만 초점을 맞추고 이야기를 진행한다. 때문에 이런 말이 나올 수 있다.
"많은 이들이 채 열한 살도 되지 않은 아이가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걸 믿지 않으리란 사실을 안다. 하지만 나는 살면서 당시처럼 그토록 깊이 체험하고 고통받은 적이 드물었다."
'데미안'에서는 중요한 개념이 나온다. 바로 ‘알을 깨는 새’이다.
"새는 힘겹게 투쟁하여 알에서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
싱클레어의 꿈에 나온 알을 깨는 새의 그림을 데미안의 옛 주소로 보내니, 어떤 방법인지 모르게 자신의 책 사이에 위와 같은 말이 적힌 쪽지를 발견하게 된다.
‘줄탁동시’. '데미안'은 몰라도 새가 알을 깨고 나온다는 비유는 모두 다 알고 있는 유명한 말이다. 싱클레어는 데미안이 보낸 것이라고 추측은 하지만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아프락사스는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한 상태로 마음속에 간직하고만 있는다. 그러다가 피스토리우스를 만나며 그 의미를 깨닫게 되고 점점 자신을 찾아가기 시작한다.
“희열과 공포, 남자와 여자가 뒤섞인, 가장 거룩한 것과 추한 것이 서로 뒤엉킨, 깊은 죄가 가장 사랑스러운 무죄를 번개처럼 관통하는….”
“사랑은 천사의 모습이며 악마이고, 하나가 된 남자이며 여자이고, 인간이며 동물이고, 최고의 선이며 극단적인 악이었다.”
‘알’은 무엇일까? 진짜 나에게로 다가가기까지의 장애물로 생각할 수 있겠다, 주변의 유혹, 혼돈, 고정관념, 교육(획일화된, 종용되고 강조되는), 본능(편하고자 하고 우월하고 싶어 하는), 편협한 생각, 차별, 세상을 한 방향만 바라보며 그것이 다인 줄 아는 삶, 욕심, 무지(무지에 대한 무지) 등 어둠 속의 어둠뿐만 아니라 밝음인 척하는 어둠들이 해당한다 볼 수 있을 것이다.
‘알을 깬다는 것’은 무엇일까? 어두운 모습, 밝은 모습, 숨기고 싶은 모습, 드러내고 싶은 모습 등을 모두 포함한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나의 특성을, 진짜 꿈을, 환경에 따라 변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며 진정 내가 가고 싶은 길을 깨닫는 것, 내 질문의 답을 나에게서 찾을 수 있는 상태, 내 가치관에 대한 정립이 된 상태, 내 안에 세상이 있다는 깨달음, 그것이 ‘알을 깬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알을 깨기 위한 방법(과정)’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것이다. 데미안과 같은 멘토의 도움이 될 수도 있고 의도치 않게 주변 환경을 통해서 알을 깨거나 못 깨거나 안 깬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자신만의 기준, 성장, 철학을 가지며 자신 나름대로의 알을 깨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성공 또는 실패가 없는 내적 평화나 자기 본연을 찾는 과정이 될 것이다. 고통스럽고 힘들다고 해서 현 상황을 회피하려 하지 않고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하고 세상의 궁금증을 나름이 방법으로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 될 것이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고, 해결하고자 하는 의식적인 노력이 계속된다면 늘 주변에서 이뤄지는 평범한 일상에서도 알을 깰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두 세계에 대해 설명하면서부터 시작한다.
“한 세계는 아버지의 집안에, 명료함과 깨끗함, 부드럽고 친절한 이야기, 사랑과 존경, 지혜가 있었다. 또 다른 세계는 우리 집 한가운데서 시작하지만, 전혀 다른 세계였다. 이 두 번째 세계에는 아름답고도 무섭고, 사납고도 잔인한 일들이 사방에 있었다.”
선과 악, 좋은 것과 나쁜 것, 밝은 것과 어두운 것, 지향해야 할 것과 지양해야 할 것, 허용된 것과 금지된 것, 사회가 원하는 것과 내가 하고 싶은 것, 강한 자와 약한 자, 자신에게서 멀어지는 것과 자기 속으로 완전히 기어들어가는 것, 세상과 자아 등등... 싱클레어뿐만 아니라 우리는 이렇게 간단하게 세상 모든 것을 두 가지로 나눠서 이해하고 설명하려 한다. 이것이 편하고, 또 대비되는 것이 있어야 그것이 명료해 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어떤 것을 선택할지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그 대신, 다른 것을 선택했을 때에는 고통받고 죄의식에 빠져들게 된다.
싱클레어가 성장하면서 겪는 고통은 크게 두 가지 이유로 볼 수 있다. 선택하지 말아야 하는 것을 선택하였을 경우와 나누어졌다고 생각하는 두 가지가 상반된 두 가지가 아닌 하나에 속한 비슷한 두 가지라고 생각될 때이다.
결국 세상은 둘로 나누어진 서로 다른 세상이 아니라 하나의 세상이며, 자아도 둘로 나누어진 서로 다른 자아가 아니라 하나의 자아이며, 세상과 자아 역시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임을 깨닫게 된다. 이를 통해 진정한 자기 자신의 소리를 찾았으며, 사회에서 요구하는 행동, 생각, 성공 등을 벗어나 내가 판단한 나답게 살 수 있는 방법을 깨우친다.
헤세의 많은 글들을 보면 그가 고대 인도(베다 등)와 중국의 고전(불교, 도교 등)에 대해 관심을 많이 가졌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일원론적 관념을 일찍부터 가져온 해세는 위와 같은 결론에 도달하였던 것이다.
"과거에 존재한 적이 있는 모든 신과 악마는 모두가 우리 안에 있어. 자네가 그냥 세계를 속에 지니고만 있느냐, 아니면 그 사실을 알기도 하느냐는 아주 큰 차이가 있는 거야."
1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에 발간된 이 책은 혼란한 세상 속에서 전쟁을 일으킨 기성세대에 대한 반감, 앞으로 어떤 삶을 그려나가야 할지 막막한 젊은이들에게 자신의 길을 개척해 나가라는 명확하고 자신감 넘치는 답을 제시했기 때문에 많은 인기를 끌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는 비단 1차 세계대전 당시뿐만이 아니다. 해쳐나가기 힘든 상황에 처해있는 젊은 청년들, 잘 살고 있다 생각했지만 뒤돌아보니 뭔가 잘못된 것 같다고 방황하는 중년들에게 역시 매력적인 답을 제시하고 응원하고 있기 때문에 오랜 기간 사랑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린 자녀를 양육하는 부모가 읽으면 느낌이 또 새롭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고 자녀들의 행동을 이해하려 해도 이해할 수 없을 때, 이 책은 어린 자녀들의 마음을 생생하게 느끼도록 해 주며 이해의 방향을 조정해 줄 것이다.
솔직히 책을 읽으며 어렸을 때 읽었던 내용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더불어 술술 읽히는 그런 책이 아니었다. 한 번에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았으며, 그럴 때면 몇 번이고 반복해서 또박또박 읽어가야 이해가 될 정도였다. 청소년 필독서라고 하기는 좀 어렵지 않을까. 차라리 청소년 권장도서, 성인의 필독서라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2010년대, 2020년대에 접어들면서 우리는 점점 더 앞만 보고, 성공만을 요구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도저히 그 속도는 늦추어질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 이에 지친 많은 대중에게 자신을 스스로 위안하고 다독여주는 책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읽기 쉽고, 단순하고 직관적인 책도 힐링이 되겠지만, 같은 흐름 속에 있으나 보다 깊은 깨달음을 통해 멘탈회복에 도움이 될 고전 명작 데미안은 멘탈회복을 위한 강력한 치료제가 될 것이라 확신한다.
20대, 30대, 40대에 열심히 달리다가 나에 대해 다시 돌아보고 싶을 때, 나를 잊어가는 것 같을 때 읽으며 나의 성장 과정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고 내 속의 진짜 나를 찾아가는 과정을 가져보길 적극 권장하며 싱클레어가 최종적으로 찾은 결론으로 서평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우리 각자가 온전히 자기 자신이 되는 일, 자신 안에서 작동하는 자연의 소질에 완전히 어울리게 되어 자신의 의지에 맞게 사는 일, 불확실한 미래가 가져오는 것이 무엇이든 그에 대한 각오를 다지는 일만이 우리의 의무이며 운명이라고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