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주대첩을 통해 3가지 리더십을 생각해 보려 합니다.
이 무시무시한 거란의 3차 침공을 정면에서 막은 리더는 그 유명한 ‘강감찬 장군’입니다.
그런데 이 장군은 앞서 살펴본 한산대첩의 이순신 장군, 살수대첩의 을지문덕 장군과 상당히 큰 차이가 있습니다.
강감찬 장군은 무관 출신이 아닙니다.
35세에 983년에 과거시험을 봐서 장원급제한, 요즘으로 따지면 행정고시 수석합격한 사무관인 겁니다.
이분의 주요 커리어가 예부시랑 (오늘날 외교/교육부 차관), 한림학사 (왕에게 강의하고 외교문서 작성하는 관직)입니다.
아주 전형적인 문과 출신입니다.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인터넷에서 강감찬 장군을 검색하면 다른 장군들처럼 완전 무장을 하고 부리부리한 눈을 가진 그분의 영정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서울대 옆쪽에 있는 낙성대 (강감찬 장군이 탄생했다고 하는 곳) 공원에 가 보면 또 역시 완전무장하고 말을 탄 강감찬 장군의 기마청동상이 있습니다.
대충 정리가 되실 겁니다. 강감찬 장군은 커리어 대부분을 문관생활을 하다가 거란이 쳐들어오자 당시 왕인 현종이 장군으로 임명한 겁니다.
(과거에는 이런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행주대첩의 주인공인 권율 장군도 문과에 급제한 문관 출신입니다)
리더분들 놀라지 마십시오.
귀주대첩이 있던 1019년 2월에 강감찬 장군의 나이는 무려 72세입니다.
전승에 따르면 자력으로는 말 타는 것도 쉽지 않아서 주변에서 부축해서 겨우 말을 탔다고 합니다.
칼 들기도 쉽지 않았던 장군이 10만 거란군을 몰살시켜 버립니다.
어떻게 이게 가능했을까요?
비록 피지컬은 별 볼 일 없었지만, 그에게는 전쟁 전체를 꿰뚫어 볼 수 있는 시야가 있었습니다.
‘적이 무엇을 가장 원하는지’, ‘그들의 어떤 부분이 가장 취약한지’, ‘어떤 방식으로 공격해야 효과적인지’가 보인 겁니다.
거란군 입장에서 생각해 보죠.
전쟁을 길게 끌어봐야 좋을 게 없습니다.
10만 정예병으로 쳐들어왔기 때문에 군량미도 한계가 있고, 길게 끌다가 봄이 와 버리면 녹았던 땅이 질퍽거리게 됩니다.
말이 땅에서 허둥거리는 순간 머리 위로 고려군의 화살이 날아오겠죠.
더군다나 2차 침공에서 왕이 전라도 나주까지 도망을 가면서 버틴 기억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최대한 빨리 개경으로 돌진해서 왕이 도망치기 전에 잡아서 항복을 받거나 고려 왕을 요나라로 끌고 갈 계획이었습니다.
(장기나 체스해 보셔서 아시겠지만, 왕이 잡히면 끝입니다)
강감찬 장군 이전 커리어를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도 회사에서 기안문 쓸 때도 타사 벤치마킹도 하고, 경쟁사 전략도 파악하고 하는데 하물며 장군이겠습니까.
전직이 왕을 가르치고 외교문서 작성하시던 분입니다.
투구 쓰시기 전에 이미 적이 어떤 것을 원하고 있고, 어떤 전략을 구사할지 훤히 꿰뚫어 봤습니다.
그가 선택한 전술은 ‘게릴라전’입니다.
적이 전속력으로 개경을 향해 달릴 것을 알았기 때문에 정면충돌을 피하고, 적의 후미나 측면을 치는 것이었는데요.
이게 상당히 효과가 있었습니다. 흥화진, 내구산, 마탄 등지에서 적의 후미를 쳐서 무려 1만 명이나 살해하는 성과를 거둡니다.
거란은 개경 함락과 현종 포획이 목표였기 때문에 개경으로 계속 달렸는데요.
놀랍게도 강감찬 장군은 적이 개경 앞에 올 때까지 계속 ‘적의 꼬리를 자르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열심히 개성을 향하고 있노라면 뒤쪽에서 화살이 계속 날아옵니다. 숲이나 골짜기를 지날 때마다 복병이 후미를 칩니다.
결국 거란은 고생 끝에 개경 인근까지 왔지만, 이미 군량미도 많이 소진되고, 1만 명 이상 사살된 이후였습니다.
더군다나 개경까지 왔을 때는 이미 1월이 되었습니다. 영하 20~30도 추위입니다. 동상으로 인한 부상자가 속출하고 눈이 와서 말이 움직이기도 힘듭니다.
이 인원으로는 강화된 개경 수비를 뚫지 못하고 피해만 늘어나게 될 것을 인지한 거란군은 결국 철군을 하기로 합니다.
만약 고려가 강감찬 장군이 문관이기 때문에, 나이가 많아서, 말을 제대로 못 타서,
무예를 제대로 익히지 못했기 때문에 총사령관으로 그를 임명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심각한 상황이 왔을 수 있습니다.
리더에게 나이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많든 적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팀이 왜 존재하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나아갈 때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보는 시야가 나이보다 훨씬 더 중요합니다.
정작 안타까운 것은 우리가 그런 시야를 가지지 못하고 편견에 갇혀 있을 때인 거 같습니다.
일부 리더들은 ‘내가 다 해 봤는데’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물론 이 말은 수많은 경험의 축적의 결과물로 하신 말씀일 수도 있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면, 과거의 경험만 의지하고,
더 이상 시야 확대를 위해 노력을 하지 않는 경우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난 이미 끝난 사람이야’, ‘내 나이가 이미 50을 넘었는데 기회가 오겠냐’ 등의 말을 하면서
‘이제는 너의 시대가 올 거야’ 등등의 말로 더 이상의 성장을 거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판세를 읽는 시야는 ‘열린 마음’만 있다면 얼마든지 나이가 들어도 성장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지금까지 축적된 경험이 그것을 더욱 확장시켜 줄 수 있습니다.
롯데 창업주 신격호 회장께서 롯데월드타워 구상을 시작한 것은 환갑이 넘은 67세 때였습니다.
나이 많음이 시야확장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2천 년 전 그리스가 수많은 철학자를 배출한 것을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그들은 ‘아고라’에 모여 여러 주제를 자유롭게 토론했습니다.
그 토론을 통해 상대방의 의견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도 하고,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도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죠.
우리는 그 어느 시대보다 더 빨리 돌아가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사회적으로 코딩 자체에 대한 니즈가 아주 강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말만 하면 챗GPT가 코딩 코드도 짜 주는 시대입니다. 오히려 말만 하면 그걸 가지고 창작을 하는 생성형 AI가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 더욱 필요한 것은 ‘세상과 시류(時流)를 읽을 수 있는 시야’입니다.
직급과 나이에 관계없는 대화와 수용, 독서를 통한 간접경험, 업무에 대한 자발적인 학습 등등 우리도 여러 방법을 통해 얼마든지 더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실행하는 실행력이겠죠.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