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보드를 사면서 '기회비용'과 '전략적 의사결정'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소설가 중에 조정래 선생님이 계십니다.
고등학교 시절, 야간자율학습시간에 문제집 사이에 조정래 선생님이 쓴 '태백산맥'을 몰래 끼워서 읽고 또 읽었더랬죠.
이 분이 유명한 게, 그 엄청난 분량의 소설을 타이핑하지 않고, 원고지에 쓰신다는 겁니다.
이 분은 키보드가 어떤 종류이든 상관이 없죠. 원고지만 있으면 되니깐요.
그러나, 명필도 아닌 저는 ‘키보드를 바꾸면 글이 더 잘 써지지 않을까?’ (라고 썼지만 내심 ‘좋은 키보드를 한 번 눌러 봤더니 내 키보드로는 글쓰기 싫어졌어’라는 마음이었습니다) 라는 생각에 키보드를 하나 들이게 되었습니다.
기존에 제가 쓰던 키보드는 멤브레인 방식의 쫀득쫀득한 키보드였습니다. 물론 지금까지 쓴 글은 대부분 그 키보드로 쓴 겁니다. l사에서 만든 아주 유명한 스테디셀러죠. 숫자키가 없지만 AAA배터리 2개만 넣어주면 몇 년 동안 밥 달라는 소리도 하지 않는, 너무나 감사한 키보드였습니다.
그러다가 최근, 새로운 키보드를 장만했는데요. 만족도가 상당히 좋습니다. 키보드를 치고 있으면 된장찌개 끓을 때 나는 보글보글 소리가 들립니다. (미쳤다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만, 청력은 아주 정상입니다^^)
키보드를 연결하고 글을 쓰다 보니, 위의 조정래 선생님이 생각났습니다.
저분은 펜과 원고지만 있으면 얼마든지 엄청난 작품을 만들어 내시는데, 나는 타이핑 칠 때의 느낌 때문에 글을 쓰기 어렵다는 핑계를 대고 있지 않는가?라는, 질문들이 마음속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네요.
이런 비슷한 내면의 질문은 일상에서 종종 다른 소재로도 발생합니다.
'우리 집에 착즙기가 필요할까?'
VS '새해가 되었으니 살아있는 채소를 더욱 많이 섭취하려면 있어도 돼, 그리고 그거 가진 사람들은 다 좋다고 하더라'
'우리 집에 영국에서 수입한 가운데 뻥 뚫린 드라이기가 필요할까?'
VS '그게 처음에는 적응하기 힘든데 적응하면 너무 좋다고 하더라. 그리고 주변 언니들은 다 그거 쓰더라'
이런 고민이 몰려올 때 어떤 식으로 대응하시나요?
대부분 상당히 고민을 많이 하고, 살까 말까를 여러 번 생각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고민들은 '기회비용'에 대한 고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를 얻기 위해서 포기해야 하는 다른 것들이 있는 것이죠.
무얼 사기 위해 쓴 비용 對 만족도도 기회비용이고, 고민하는 시간 對 행복감도도 기회비용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도 최근까지는 이런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태블릿을 살 때도, 핸드폰을 바꿀 때도, 심지어 마트에서 정육코너에 가서도 말이죠.
예전에는 이런 상황을 '내가 알뜰하기 때문이야'라고 많이 생각했는데요.
요즘은 '이거 고민하는 시간에 그냥 사는 게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기존에 얻지 못하는 부가적인 가치는 무엇인가?'와 '이걸 고민하는 시간에 차라리 구매하고 그 시간을 다른 업무에 집중하면 이득이 있는가?'를 생각하는 거죠.
비용에 대한 부담보다 시간을 과도하게 구매를 위해 쓰는 것의 가치가 올라간 겁니다.
리더는 일상에서 많은 것을 결정합니다.
'전략적 의사결정'이라고 하죠. 이때 고려해야 하는 것은 비용, 만족도, 이익, 임직원 피로도 등등 다양한 것들이 있습니다. 과거에는 '비용'이 의사결정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는데요. 지금은 비용도 중요하지만, 임직원의 내면을 만족시키는, (최소한 의사결정으로 임직원들의 신뢰가 떨어지지 않는) 부분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이 가장 효용 높은 의사결정을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무엇을 고민해서 구매하셨다면, 120% 활용하면 정말 잘한 결정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P.S.
물론 그렇다고 새로 산 키보드를 반품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 키보드는 반복되는 일상에 기존에 느끼지 못하던 활력을 제공했으며, 반품이라는 추가적인 일을 하기에는 너무나 그 시간이 아깝기 때문입니다. 부가적으로 기존의 키보드보다 훨씬 오타가 적으니 더 기분 좋게 글을 쓸 수 있지 않는가!라는 마음의 안위를 스스로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