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도시와 시간을 이어주는 일이다. 그러나 내게 가장 아름답고 철학적인 여행은 그렇게 머무는 사이 생겨나는 틈에 있다. – 시인, 폴 발레리
해가 지기 전, 안목해변 산책을 마치고 다시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오니, 낮에 마셨던 막걸리의 술기운 때문인지 조금 쌀쌀해진 바닷바람 때문인지 으슬으슬 몸이 떨리고 피곤해졌다.
어차피 이후 계획을 세워놓지 않았으므로 아무도 없는 도미토리 룸 욕실에서 따뜻한 물로 샤워하고 아무 생각 없이 한숨 푹 잘 수 있었다.
그렇게 자고 일어나 저녁 식사를 고민하던 중 바로 근처에 유명한 수제버거집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름은 '폴 앤 메리'
저녁을 먹고 바로 옆에 있는 경포해변 근처로 발걸음을 옮겼다. 바로 옆에 있는 해변이지만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다양한 술집이 늘어져있는 유흥가. 비수기에도 이 정도인데, 여름 성수기에는 얼마나 시끌벅적할지 상상해보았다. 잠깐 밤바다 구경을 마치고 다시 게스트 하우스로 돌아와 잠을 청했다.
아침 8시쯤, 게스트하우스 주인아주머니께 문자가 와있었다. "간단한 조식 준비됐어요~~^^"
하룻밤 묵고 지나가는 여행객에게 아침을 챙겨주려 보내주신 문자가 따뜻했다.
그렇게 아주머니와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며 조식을 먹고, 다시 바로 앞바다로 나갔다.
조식을 먹는 동안 조금씩 비가 내려 걱정했는데, 오히려 비를 머금고 있는 구름과 그 사이에 내리는 햇빛은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장면을 연출했다.
바로 옆이 군사 지역으로 출입이 통제되어 있어 더 들어가 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곳에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황홀한 풍경이었다.
아직은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어서 고민했지만, 결국 다시 자전거를 빌려 이번엔 반대편에 있는 허균, 허난설헌 남매의 생가를 가보기로 했다.
비를 피하려고 처마 밑에서 쉬고 있는데 초등학생들이 단체로 우르르 몰려들었다. 아마 체험학습을 온 듯했다. 그런데 담임 선생님으로 보이는 분이 갑자기 내게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시길래 얼떨결에 '네, 안녕하세요.'하고 대답했다. 나를 문화재 해설사로 착각한 듯해서 급하게 자리를 비켜주었다.
그렇게 자전거를 타고 다시 뒤편으로 나가려 하는데 안내판을 보니 조금만 더 가면 경포호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기까지 온 김에 나가 보자는 마음으로 계속해서 페달을 밟다 보니 커다란 소나무가 가득한 숲길로 들어가게 되었다.
강릉은 곳곳에서 Pine City라는 문구를 볼 수 있는데, 정말 이름에 걸맞게 바닷가에도 길가에도 크고 아름다운 소나무들이 종종 눈에 띄었다.
그렇게 아름다운 숲길을 지나고 작은 다리 2개를 지나고서 발견한 경포호는 동유럽 호숫가처럼 느껴졌다.
원래 여행에서 사진에 집착하지 않는 편이라 이번에도 눈으로 보고 마음 가득 풍경을 담았다. 하지만 이번 여행은 유난히 '사진을 좀 더 찍을 걸'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