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당신이 찾던 천국
반짝거리던 20대 초반을 지나고 어느덧 20대 중반의 막바지를 바라보며, 나는 네팔 여행을 결심했다.
여행에는 항상 계기 또는 핑계가 필요한 법인데,
나의 경우에는 REFRESH라는 단어가 적절하겠다.
길어지는 취준 생활에 계속해서 좌절이라는 단어를 가슴에 새기게 되었고,
푸르게 빛나던 나의 미래는 점차 회색빛으로 짙어져 갔다.
어느 날, 깊은 새벽에 눈을 뜨고는 나의 시시한 현실이 서글퍼 엉엉 우는 날도 있었다.
그런 나 자신을 보며 어디든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쉼표, 어쩌면 도피.
그렇게 나는 네팔행 비행기 티켓을 끊고야 말았다.
유일하게 직사각형 국기를 사용하지 않는 나라.
세계의 지붕이라 불리는 히말라야의 나라.
왕복 37만 원 항공권으로 쉼터를 찾으러 간다. 고마워요 스카이스캐너!
이번 여행지를 결정하는 데는 두 가지 조건을 고려했다.
첫째, 저렴한 항공권을 찾을 수 있는가
둘째, 뻔하지 않은 여행을 '안전하게' 할 수 있을 것인가
네팔은 이 두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시키는 여행지였다.
물론 대한항공 직항으로는 왕복 100만 원이라는 큰 금액이 필요하지만, 남는 게 시간과 에너지뿐인 나에게 이는 그저 사치일 뿐이었다.
스카이스캐너로 저렴한 항공편을 검색한 끝에 왕복 37만 원의 항공권을 찾아냈고, 중국 쿤밍에서 19시간의 경유에도 감사하며 나는 네팔로 떠났다.
저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히말라야 설산과 중국 동방항공의 오묘한 기내식
그렇게 도착한 카트만두 공항은 마치 우리네 시골 지방의 버스 터미널과도 같았다.
버스표 사듯 30일짜리 비자를 40달러에 구매하고, 입국 심사를 받으러 가니
직원은 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에 호감을 나타냈다.
이는 네팔 여행 내내 계속되었는데, 네팔인들은 한국인들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중국인과 헷갈려하다가도
"노! 아임 어 코리안!"이라고 반응하면 "오! 안녕하세요!"하고 서툴게 인사했다.
이후 수화물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는데, 갑작스럽게 정전이 되며 컨베이어 벨트가 멈춰 섰다.
모두들 당황하고 있는 바로 그때,
한 네팔리가 어둠 속에서 외쳤다.
"Welcome to Nepal!"
그제야 나를 포함한 사람들은 웃으며 여유를 되찾았다.
'내가 정말 네팔에 왔구나'실감했던 순간.
공항에서 나오니 수많은 호객꾼들이 다가와 택시를 권했다.
카트만두 중심으로 가기 위해서는 '터멜'이라는 곳으로 가야 했는데, 나는 첫 흥정에 진지하게 임했다.
'처음부터 바가지 쓰지 않으리.'
덕분인지 700루피를 부르던 기사와 아웅다웅하며 450루피로 극적인 합의를 보았고,
터멜 거리로 향할 수 있었다.
처음 접한 카트만두의 거리는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었다.
수많은 오토바이와 차들이 얽혀있고, 끊임없이 경적을 울려댔다.
신호등은 찾아볼 수 없었고, 사람들은 차 사이를 아무렇지 않게 지나다녔다.
그리고 그 모습은 나에게 너무나 낯설고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여기저기 향을 피운 흔적들, 사람들 이마에 찍힌 붉은 티카. 적나라한 승차감을 느낄 수 있는 티코 택시.
그때부터 나는 너무나 이국적인 이 나라를 사랑하게 되어버렸다.
카트만두에서 묶었던 숙소는 네팔어로 '사랑합니다'를 뜻하는 <마야 거르츄> 게스트하우스
한국어를 너무나 유창하게 하시는 네팔리 사장님이 운영하는 곳이었다.
숙소에 도착한 뒤 나는 내 유심칩을 잃어버렸음을 깨닫고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1층 거실로 내려왔다.
밑에는 또 다른 한국인 게스트가 사장님과 담소를 나누고 있었는데,
나도 어느새 잃어버린 유심칩에 대해 까맣게 잊고, 함께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다 사장님이 꺼내 든 네팔의 전통주 락시.
우리나라의 소주와 비슷하기도 하고 고소한 맛이 있어, 네팔 여행 내내 거의 매일 마셨던 것 같다.
처음 만난 한국인 오빠(라고 부르고 아저씨라고 쓴다)와 네팔리 사장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여행의 시작에 흠뻑 젖어들었다.
오빠는 오랫동안 다닌 회사를 퇴사하고 세계여행을 시작했다고 한다.
현실적인 고민과 이상에 대해 이야기하며 술잔을 기울였다.
이후 이 오빠와는 다음 날 함께 원숭이 사원에도 갈 정도로 가까워졌는데, 카트만두를 떠나던 날 인사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그런데 사람 인연이라는 것이 신기하게도
트래킹을 위해 포카라라는 지역으로 이동한 뒤 그곳에서 또 같은 숙소를 쓰게 되었다ㅋㅋㅋㅋㅋ
지금은 친해져서 띠동갑의 차이에도 불구 막말도 서슴지 않게 되었다ㅋㅋㅋㅋㅋㅋㅋㅋ
(이름을 부르는 게 어색해 카트만두 오빠라고 부르고 있다)
다음 날 카트만두 오빠와 나는 둘 다 정해놓은 일정이 없어 함께 터멜 거리로 구경을 갔다.
'시끄러움'이라는 단어가 완벽하게 맞아 드는 터멜 거리는 사람들과 인력거, 차와 오토바이, 개, 소 등이 얽혀서 말 그대로 혼돈 그 자체였다.
그 속에서 소지품을 넣고 다니기 위한 작은 가방을 하나 사고 여기저기 구경을 다녔다.
카트만두의 거리는 복잡하지만 그 속에 질서가 있었고, 거기에 적응하다 보니 모든 것들이 재미있었다.
여행이 끝나니 그때의 느낌만이 어렴풋이 남아있는데 이를 단어로 표현하면 '낯선 즐거움'쯤이 적당하겠다.
맛있었던 네팔식 요구르트 라씨(Lassi)와 네팔식 만두 모모(momo)
원숭이 사원(스와얌부나트)에서 만난 친근한 한국어 문구 티셔츠 '환경감시단'
그리고 원숭이이게 강탈당한 오렌지
즐거운 카트만두 나들이로 네팔 여행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후의 20여 일간의 여행은 첫날 일정보다 딱 2560배 정도 행복했다.
덜컹거리는 도로를 8시간 넘게 이동한 일도, 흙먼지를 잔뜩 먹어 까만 콧물이 나온 일도,
힘들어 죽을 것 같다가도 경치로 사람을 취하게 하던 히말라야 트래킹도,
세상 가장 여유롭고 평화로웠던 포카라에서의 휴식도
아마 나는 천국에 다녀왔나 보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부디 내가 느낀 행복이 전해지기를 바라며
나의 네팔 여행기를 시작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