툴이 디자인하지 않게

관성에 젖지 말자

by 효그

요즘 3D를 활용한 그래픽 디자인이 많이 보인다. 특히 일러스트레이터의 3D 기능을 사용한 듯한 디자인이 두드러진다. 이 기능이 생기면서 3D 그래픽을 개발하기에 한층 더 손쉬워졌다. 하지만 때론 '일러스트레이터를 활용한 3D 디자인'이라는 획일화된 느낌을 피할 수 없다.

학생 시절 모델링 수업에서 교수님은 항상 프로그램이 디자인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고 당부하셨다. 디자이너의 의도를 툴을 통해 구현하는 게 아닌, 사용하는 툴에 표현을 맞추는 걸 경계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당시에는 툴에 익숙지 않았기 때문에, 구현되는 대로 디자인을 완성할 때가 있어 유난히 찔리는 말이었다. 지금도 익숙한 툴에서 구현이 어려우면 포기하고 싶거나, 툴 안에서만 할 수 있는 표현을 선호할 때가 있다. 그래서 항상 이 말을 간직하고, 툴에 디자인을 종속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툴에서 벗어나는 가장 쉬운 방법은 그저 다른 툴을 찾는 것이다. 몇 가지로 디자인 툴이 특정됐던 예전과 달리 요즘에는 정말 다양한 프로그램과 서비스가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당장 생성형 AI만 해도 몇 가지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새로운 툴을 찾고 사용하다 보면 특정 툴과 표현해 익숙해진 관성을 깰 수 있다.

최근에는 디자이너나 개발자가 크리에이티브 코딩을 활용해 자체적인 이미지 효과를 주는 툴을 제공하는 사례도 많아졌다. 실제로 요즘에는 tooooools.app이나 dither me this 같은 툴을 요긴하게 써먹고 있다. 혹은 디지털이 아닌 아날로그 환경에서 직접 만들어 사용하는 것도 또 다른 방법이 될 수 있다. 휴대용 스캐너를 활용해 길거리 곳곳을 스캔해 활용하는 영상은 좋은 사례를 보여준다.

덧붙여 기존에 쓰던 툴이라도 생각보다 숨겨진 기능이 많을 수 있다. 특히 어도비 프로그램들은 매년 기능이 업데이트되어 이전 버전보다 더 풍부한 표현이 가능하다. 결국 해보지 않은 시도를 이어가며 툴 사용의 경계를 확장하는 것이 중요하다.


조금 난이도 있는 방법은 스스로 툴을 만드는 것이다. 이전에 기존 거대 기업에 대항해 스스로 툴을 만들어 사용하는 디자이너의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보편적인 편집 프로그램을 사용하지 않고, 텍스트만 넣으면 자동으로 책으로 편집해 주는 툴이었다. (능력만 된다면) 이렇게 툴을 만드는 것이 자신의 의도를 정확히 반영하고, 효율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도구를 만드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기에, 터치 디자이너와 같은 시각적 프로그래밍 언어를 활용하는 것도 대안일 수 있다.


물론 익숙한 툴은 가장 보편적이고 다양한 구현이 가능하며, 편리하기 때문에 사용하는 것이기도 하다. 또 새로운 툴과 표현이 항상 디자인을 좋게 만드는 것 또한 아니다. 중요한 건 툴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표현하려는 바를 분명히 하고 그에 맞는 도구를 선택하는 일이다. 어떤 요리를 만들지 알아야 재료와 도구를 고를 수 있듯, 디자인에서도 먼저 의도를 명확히 하고 그에 맞는 툴을 선택해야 한다. 툴이 아닌 내가 디자인하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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