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에 기록하는 200만 원짜리 소백산 일출산행

설산에서 핸드폰을 잃어버리면 찾을 수 있나요?

by 효효

2025년 새해맞이 소백산 산행을 다녀왔다. 새해가 되면 한 번씩 산에 오르곤 하는데, 이번 소백산 산행은

달발골에서 출발해 해발 1,439m 정상을 찍고, 제2 연화봉 대피소에서 일출을 보는 일정이었다.


DAY-1.


대피소 산행은 처음이었기에, 등산용품의 메카로 불리는 종로 5가를 방문했다. 웬만한 건 인터넷 최저가보다 조금 더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는 곳으로, 이번에는 대피소에서 사용할 간이매트를 살 예정이었다. 직접 누워보기도 하고 가격도 비교해 보면서 적당한 제품을 골랐다. 감기로 몸상태가 좋지 않아 살짝 고민이 됐는데, 사장님의 추천에 핫팩까지 야무지게 챙겼다.


새로 장만한 간이매트와 간식, 세면도구, 그리고 대피소에서 입을 잠옷을 챙겼더니 배낭이 금방 불룩해졌다. 생각보다 무거운 무게에 당황했는데, 대피소에 도착하면 옷 갈아입을 여력도 없을 것이라며 잠옷은 불요하다는 통보를 받았다. (대부분 등산복을 입은 채로 잠시 눈을 붙였다가 일출을 보고 하산한다고 한다.)


소백산은 사계절 모두 아름답지만, 특히 겨울 설산이 절경이다. 2018년 처음 올랐던 소백산의 겨울 :)


D-DAY


금강산도 식후경

아침 일찍 동서울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풍기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하자마자 향한 곳은 칠백식당이다. 파란 슬레이트 지붕과 빨간 간판이 대조를 이루는 시골집이었는데, 마당을 지나자 맛집 향기가 물씬 났다. 밑반찬이 먼저 나왔는데, 가지무침에서 어향가지 맛이 난다며 다들 난리였다. 돼지주물럭과 소불고기, 그리고 직접 짠 들기름에 밥까지 볶으며 맛있게 먹었다. 아주머니가 흐뭇하셨는지, 대피소에서 먹을 쌈장까지 야무지게 싸주셨다.



1,439m 소백산 정상


겨울산을 오를 땐 눈에 미끄러지지 않게 아이젠도 끼워야 하고, 스패츠, 귀마개, 모자 등으로 몸을 따뜻하게 유지해야 한다. 땀이 났다가 식으면 체온이 금방 내려가기 때문에 너무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적당한 속도로 산을 오르는 것도 중요하다. 칠백식당에서 점심을 잔뜩 먹은 터라 몸도 느리고, 간식까지 한아름 챙겼던 가방이 얼마나 무겁게 느껴지는지, 잠옷이라도 안 뺐으면 정말 큰일 났겠다 싶었다.


소백산 정상에 다다라 너른 능선이 나타나면 칼바람이 거세게 분다. 가방에 넣어두었던 두꺼운 패딩을 껴입고 1,439m 정상에 올랐다. 정상을 지나고나서부터 제2 연화봉 대피소까지는 끝없는 능선길이라, 중간에 간이초소가 있어서 차를 마시며 잠시 몸을 녹였다.

그런데..한참을 걷다가 문득 핸드폰이 없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분명 초소를 나설 때 마지막으로 사진을 찍고 주머니에 넣었는데 주머니에도, 가방에도 없었다. 처음엔 장난인 줄 알았던 친구들이 심각함을 깨닫고 전화하기 시작했는데, 어디서도 진동이 느껴지지 않았다.


구매한 지 한 달된 아이폰 16프로를 소백산 정상에서 잃어버릴 줄이야. 이것은 실화인가.



그렇게 시작된, 핸드폰 찾아 삼만리


산행을 리드하던 용&공의 빠른 판단으로, 나와 공이 왔던 길을 되돌아 핸드폰을 찾아보기로 하고, 다른 친구들은 대신 배당을 들고 길을 계속 가기로 했다. 초소로부터 30분가량 걸어온 길을 되돌아가는데, 흰 눈길 위에 금방 보일 것 같던 핸드폰은 보이지 않았다. 아픈 것도 잊고 초인적인 힘으로 두 번이나 길을 살펴보았지만, 결국 수색을 포기했다. 대피소까지 3~4시간 정도를 더 걸어야 했는데, 가방이 없으니 빠른 걸음으로 갈 수 있었지만 물도 간식도 없고, 날이 저물 경우를 대비한 헤드랜턴도 없었다.


해는 저물어가는데, 제2 연화봉 대피소는 해보다 더 멀리 있었다. 속은 상하는데 그 와중에 붉은빛으로 물들어가는 세상의 모습이 어찌나 아름답던지, 잠시 걸음을 멈춰 묵상을 했다. 목적지까지 1시간쯤 남은 시점에는 정말 길이 어둑해졌다. 춥고 배고프고 목도 말랐다. 다행히 그즈음 배낭을 다시 찾게 되어, 목도 축이고 간식으로 당보충도 했다. 그때 먹은 양갱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대피소계의 칠성급호텔, 제2 연화봉 대피소


제2 연화봉 대피소는 일명 대피소계의 칠성급호텔로 불린다. (수세식 화장실이 있는 대피소는 고급 호텔이라고 한다.) 대피소는 말 그대로 정식 숙소가 아니다 보니, 최소한의 편의시설로 운영된다. 찬물이 쫄쫄 나오는 화장실에서 겨우 세수를 하고, 여자숙소로 들어가 에어메트를 편 뒤, 취사실로 향했다.


밤 9시면 대피소 전체가 소등되기 때문에, 서둘러 소고기와 돼지고기, 소시지를 휴대용 버너 위에 굽기 시작했다. 취사실은 여러 팀이 서서 식사를 하는 구조인데, 초소에서 만났던 등산객 분들이 핸드폰은 찾았냐며 걱정도 해주시고, 따뜻한 밥도 나눔 해 주셨다. 라면도 끓여 먹고, 믹스커피까지 한 잔 하니 몸이 절로 노곤해졌다.

대피소에서 금지되는 것 두 가지가 있는데 약주와 담배다.(약주는 술의 은어다.) 그리고 모든 쓰레기는 등산객이 다시 가져가야 한다. 최소한의 음식물 쓰레기 정도만 허용하기 때문에 저녁을 하며 생긴 플라스틱, 비닐 등은 다시 챙겨 넣었다.


출처: 국립공원공단 홈페이지(https://res.knps.or.kr)


휴대폰이 없으니 보이는 것.


예보상 다음날 일출을 보긴 어려울 예정이었지만, 밤에 별을 잔뜩 떴다. 휴대폰이 없으니 눈으로 한껏 별을 담을 수 있었다. 잠시 눈을 지그시 감고 소원을 빌었다. 휴대폰 안에 담긴 연락처, 사진들을 생각하니 잠시 멘붕이 오기도 했지만, "This too shall pass", 그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함께 간 사람들에게 큰 걱정을 끼치지 않으면서, 그 순간에 집중하는 것이었다.



DAY+1


그래서 핸드폰을 다시 찾았을까요?


대피소에 도착하자마자 직원 분께 핸드폰 분실을 알리고, 다시 찾는 경우도 있는지 여쭤보았다. 간혹 등산객이 핸드폰을 주워서 가져다주는 경우도 있는데, 눈이 다 녹는 4월쯤에야 희망이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추운 날씨임에도 핸드폰은 밤새 꺼지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자마다 통신사에도 연락해서 휴대폰 위치 추적을 했는데, 산 하나가 통째로 잡혔다. 직원분이 보시더니 여의도만한 면적에서 핸드폰 찾기라고 했다. 이전 휴대폰을 3년 넘게 쓰고, 벼르고 벼르다 산 새 핸드폰이었다. 미국에서 $1,099+tax를 주고 샀으니, 첫 대피소 산행치고 비싼 값을 치렀다. 사실상 마음을 비우고 하산을 하며, 알프스 산행을 했다 치자며 웃어넘겼다. 그래도 아쉬운 마음이 마음인지라, 희망을 버리지 않고 집에 와서도 휴대폰으로 계속 연락을 했는데, 누군가 전화를 받았다!!!


대피소 직원 분이었다. 어떤 등산객이 주워서 맡기고 갔다고 했다. 일행 중 그 누구도 찾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던 휴대폰인데, 기적적으로 다시 품으로 돌아왔다. 세상에 이런 일이. 소백산 정상에서 잃어버린 휴대폰을 찾았다. 돌아올 것은 어떻게든 다시 돌아오게 되나 보다.


착불로 휴대폰을 보내주신 대피소 직원분께 모바일 선물하기로 소소하게 고마움을 표했다. 함께 소백산에 올랐던 친구들에게도 김진목삼 뒤풀이로 고마움을 표했다. "휴대폰을 찾다니, 올해운을 다 썼네!"라는 사람도 있었고, "올해 시작이 좋네, 틀림없이 더 좋은 일이 있을 거야!"라는 사람도 있었다. 뭐든지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 아니던가. 후자로 생각하기로 했다.


무더운 삼복더위에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좋은 기운을 가득 전해 주었으면 좋겠다. 무려 흰 눈이 가득한 소백산 정상에서 휴대폰을 찾은 사람의 기운이다.



H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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