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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효 Mar 31. 2024

파출소를 나와 도쿄 에르메스 직원과 친구 되기까지.

도쿄, 얼마면 되니?

소비의 제일: 잃어버리지 않는 것.


나도 몰랐다. 이번 도쿄 여행에서 경찰서를 방문하게 될 줄은. 일본에서는 파출소를 코반(交番, こうばん, KOBAN)으로 호칭한다. 내가 갔던 긴자의 코반은 10평 남직한 공간으로, 문을 열고 들어가자 5명의 경찰관이 일제히 쳐다보았다.


"저.. 여권이 든 가방을 잃어버렸어요."


망연자실한 표정이 보였는지, 얼른 자리에 앉으라며 경위를 묻고는, 분실신고서를 작성할 수 있도록 종이를 주었다. 분실 목록에 여권, 카드, 현금, 그리고 선글라스까지... 가방 안에 있던 물품 목록을 써 내려가는데 꽤나 많은 것이 가방 안에 있었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긴자에 있는 운동화 매장에 들렀다가 저녁 예약시간이 되어 서둘러 레스토랑에 갔는데, 다 먹고 계산하려고 보니 가방이 없는 것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매장으로 갔지만 이미 문을 닫은 시각이었다. (사람이 많은 매장에서 더 정신없었던 것은 내 정신..)


가방을 찾지 못하면 대사관에 가서 임시 여권을 발급받아야 했다. 뭐라도 살까 싶어 현금도 두둑이 챙겼었기에 무사하길 바랐다. 도쿄에 살았던 한 친구는 일본에서는 주인 없는 물건에 대해 함부로 손대지 않는다며 너무 걱정 말라고 했는데, 정말 다음날 아침 매장에 가니 나의 분홍색 가방이 있었다. 가방만 무사하다면 매장에서 운동화라도 살 기세였는데, 다행히도(?) 내 사이즈가 품절이었다.

그렇게 진짜 도쿄 여행이 시작되었다.  


첫 번째 소비. 돈가스에 얼마나 쓰시겠어요?


미식의 도시이기도 한 도쿄에는 유명하고 오래된 돈가스 맛집들이 많다. 가방도 잊을 만큼 서둘러서 갔던 저녁 장소는 '카츠카미'라는 긴자의 돈가스 오마카세 집이었다. 돈가스 치고 비싼 가격이었지만,  직접 경험해보고 싶어 'tablecheck'라는 앱을 통해 풀부킹을 뚫고 예약에 성공했다.


일본은 한동안 육식을 금지했던 국가이다. 7세기경 불교를 받아들이면서 약 1000여 년간 육식을 먹지 않으니, 그만큼 일본인들의 체구도 상대적으로 왜소해졌다고 한다. 이에 메이지유신 이후에는 천황이 직접 육식을 권장하기 시작했는데, 고기를 먹을 줄 몰랐던 일본인들을 위해 고기를 튀김옷으로 감싼 것이 지금의 돈가스라고 한다.


카츠카미: 돈가스 오마카세

런치 3,800엔, 디너 7,900/9,900/16,500엔~

스시 오마카세처럼 돈가스도 딱 먹기 좋은 타이밍이 있다니? 카츠카미는 긴자에 새로 생긴 돈가스 오마카세 집으로 bar 형태로 앉아 매번 갓 튀겨져 나온 돈가스를 즐기는 곳이다.

안심으로 만든 히레카츠가 나왔는데 육즙부터 마시고, 그다음 소금과 소스를 찍어 먹어보라고 했다. 등심으로 만든 로스카츠, 윗등심 부위인 상카츠, 미니 버거 모양의 멘치카츠도 연달아 나왔다. 나는 여러 부위 중에서도 와사비를 잔뜩 얹은 로인카츠를 맛있게 먹었는데, 와사비가 느끼함을 잡아주면서 돈가스 본연의 고소함을 느낄 수 있는 맛이었다. 맥주 곁들임도 좋았는데, 마지막 디저트로 나온 거대한 빙수까지 야무지게 먹었더니 배가 터질 것 같은 저녁이 되었다. (그러고 나서 가방이 사라진 걸 알았던 것이다.. 사방팔방 다닌 덕분에 소화가 다 되었다.)


Tip: 예약제로 운영된다. 테이블체크라는 앱을 통해 미리 예약하기를 권장한다.

https://www.tablecheck.com/shops/katsukami/reserve?utm_source=google

@hyohyo


이마카츠: 닭가슴살 돈가스

히레/로스/사사미카츠 정식 1,700~2,300엔

도쿄에 머무는 동안 갔던 또 다른 돈가스집은 '이마카츠'라는 곳으로, 롯폰기 본점과 긴자, 아사카사에 위치해 있다. 부드러운 닭가슴살 돈가스로 유명한 곳으로, 퍽퍽하지 않고 부드러운 식감에 왜 유명한지 알 것 같았다. (이것이 운동할 때 먹는 그 닭가슴살이라구?) 로스카츠와 사사미카츠 외에 단품으로 주문한 왕새우튀김과 굴튀김도 맛있었고, 정식에 포함된 밥과 미소시루, 양배추 맛도 좋았다. 밥과 양배추는 무료로 리필도 가능하다.


Tip: 보통 워크인으로 가면 웨이팅을 많이 하나, 로컬로 전화 예약이 가능하다.

https://www.grasseeds.jp/imakatsu/menu.html

@hyohyo


두 번째 소비. 입장료 두 번 내고 볼 만큼 좋나요?


네즈미술관

입장료: 어른 1,300엔, 어린이 1,100엔
https://www.nezu-muse.or.jp/

오모테산도 길 끝에 위치한 네즈미술관은 구마 겐고가 설계한 건축으로 도쿄 도심 한가운데에 위치해 있음에도 고즈넉한 공간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특히, 미술관 입구에서 본관까지 이어지는 대나무길과 본관에서 정원으로 나가는 길이 기억에 남았다. (구마겐고의 건축 세계는 흙, 물, 빛, 바람, 목조 건축 등으로 이야기되는 만큼 네즈미술관은 자연 친화적인 곳이다.) 

본관에서는 동양의 고미술품들을 볼 수 있고, 통유리창으로 연결된 외부로 나가면 연못을 품은 일본식 정원으로 이어진다. 이 정원을 다시 오고 싶었기에 찾은 네즈미술관이다. 네즈미술관에 입장해야만 방문할 수 있는 '네즈카페'도 사방이 통창으로 뚫려 있어 인기가 많다. 바람에 산들거리는 정원을 바라보면서 차 한잔 하며 체력을 충전했다.(매일 하루 이만보씩 걸었다.) 


팀랫플래닛 Teamlab Planet

입장료: 성인 3,800엔(주중), 4,200엔(주말), 학생 2,800엔, 어린이 1,500엔
https://www.teamlab.art/e/planets/

'도쿄 팀랫플래닛'은 관객이 오감으로 전시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2018년 친구와 처음 방문했을 때, 생소했던 체험형 전시에 신기해 했는데, 이후 한국에서도 비슷한 전시들이 생겼다. (2020년 팀랩 그룹이 동대문 DDP에서 미디어아트 전시를 열기도 했다.)

팀랩 그룹의 전시는 역시나 스케일이 달랐다. 처음 입장부터 심상치 않았던 것이, 가방 등 개인소지품을 포함한 신발과 양말을 사물함에 넣어두고 맨발로 물살을 헤치며 전시장에 들어가게 된다. 울퉁불퉁한 땅을 밟거나, 누워서 360도 회전하는 공간을 체험한다던가, 무릎까지 찬 따뜻한 물속을 걷기도 했다.

'Crystal Universe'는 전체 공간이 크리스탈로 빛나는 곳으로, 빛과 조명, 거울을 통해 무한히 확장된 공간을 느낄 수 있다. 사진 찍기도 좋아서 많은 시간을 보낸 곳이기도 하다. 'Floating Flower Garden'은 말 그대로 꽃들이 공중에서 떠다니는 공간이다. 공중에 있던 난초과 꽃들은 흙이 없는 곳에서도 살 수 있는데 공기 중의 수분을 흡수하여 자라난다고 했다. 짧은 시간임에도 충분히 난초과 꽃들의 향을 느낄 수 있었다.


Tip: 팀랩 플래닛은 홈페이지에서 입장 시간을 정해 예약할 수 있으며, 전날까지 변경 가능하다. 최근 도쿄에 새로 생긴 아자부다이힐스에도 '팀랩 보더리스'라는 새로운 전시가 오픈했다!


세 번째 소비. 도쿄 전망대, 신흥강자 vs 전통강자 어디가 좋을까?


시부야스카이(SHIBUYA SKY)

입장료: 2,200엔(웹예약) 2,500엔(창구요금)
https://www.shibuya-scramble-square.com/sky/

시부야스카이는 2020년 도쿄에 새로 문을 연 전망대로 가장 핫한 곳 중 하나이다. 스카이트리, 도쿄타워 등 이미 유명한 전망대들이 있지만, 360도 탁 트인 야외 공간감을 가지는 시부야스카이는 또 다른 느낌이다. 그만큼 워크인으로 가면 마감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 미리 예약을 해야 한다. 특히 도시의 낮과 밤을 모두 볼 수 있는 일몰시간은 예약이 좀 더 치열하다.

곳곳에 포토 스팟이 있는데, 특히 코너뷰가 인기가 많다. 시부야의 유명한 스크램블 횡단보도 인파도 내려다볼 수 있고, 도쿄타워와 요요기 공원도 볼 수 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한 층 아래 실내전망대로 들어서면 또 다른 공간이 나와, 실내에서 전망을 즐길 수도 있다.


스카이트리(SKY TREE)

입장료: 350m전망대(웹: 1,800엔, 현장:2,100엔), 350+450m전망대(웹: 2,700엔, 현장: 3,100엔)
https://www.tokyo-skytree.jp/kr/ticket/individual/

600m가 넘는 스카이트리는 일본에서 가장 높은 건물 중 하나이자 전파 송출용 탑이다. 도쿄의 랜드마크로 전통적으로 대표적인 전망대이기도 하다. 도심에서 살짝 떨어져 있는 스미다구에 위치해 있어, 접근성이 떨어질 수 있지만 그만큼 마천루에 가려지는 것 없이 시원한 전망을 보기에 좋고, 날이 좋으면 도쿄의 해안선까지 모두 보인다.  

350m 전망대와 450m 전망대에 따라서 입장료가 달라지는데, 450m 전망대에는 유리로 되어 있는 발판도 체험할 수 있다. 두 공간 모두 360도 통창으로 되어 있어 원형 공간을 돌며 도쿄 전역을 살펴볼 수 있다.


네 번째 소비. 쇼핑하러 백화점 가자.


도쿄는 맛과 멋의 도시로, 쇼핑하기 좋은 도시로 불리기도 한다. 연말이었기에 엔저와 Tax Free 혜택으로 쇼핑을 목적으로 온 관광객들도 많이 볼 수 있었다. 대표적인 쇼핑 지구는 긴자, 시부야, 신주쿠, 오모테산도 , 하라주쿠 등이다.  

긴자는 도쿄의 고급 쇼핑 지구로 거리를 걷다 보면 유명 브랜드들의 플래그십 매장이나 부티크들을 만나 볼 수 있다. 도버스트릿마켓, 빔즈긴자와 같은 편집샵부터 츠타야 서점이 있는 긴자식스, 80년 전통의 미츠코시, 마츠야와 같은 백화점들도 있다. 특히 일본 백화점의 경우 물건도 다양하고, 게스트 카드로 추가 할인 혜택을 보는 경우도 있어, 진정 쇼핑 천국이라 할 수 있다.


긴자 야마하: 악기의 세계


첫 호텔이 긴자에 위치해 있어 연이어 방문했던 곳이 긴자 야마하다. 12개 층으로 이루어진 본점은 1층에 자유롭게 피아노를 연주할 수 있는 곳도 있고 스크린으로 멋지게 송출도 해준다. 그리고 각 층마다 악기 세션들이 분리되어 있는데, 관악기 세션에서 실제로 연주자와 조율사가 방에서 악기를 조율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초등학생 때 플릇을 배우고 싶은 로망이 있었다. 할머니가 일본에서 야마하 플릇을 사주셨던 것이 계기가 되어 배울 수 있었는데, 이곳에서 플릇을 마주하니 괜스레 반가웠다. 색소폰이 취미인 엄마에게는 직접 악기 연주를 권하였는데, 즉흥 연주에 직원이 브라보를 외쳐주기도 했다. 비록 악기를 사지는 못했지만 색소폰을 불 때 쓰는 액세서리를 기념으로 샀다.


도쿄에서 에르메스 직원과 친구 되기


도쿄에 있는 동안 1일 1 백화점 구경을 했다. 어떤 날은 양말만 사기도 하고, 곧 태어날 조카의 선물을 사기도 했다. 연말이라 사람들이 많았는데도 웬만한 매장은 오픈런 없이 갈 수 있었다. 내친김에 에르메스 매장을 구경하기로 했는데 켄타라는 인상 좋은 친구가 담당 직원으로 배정되었다.

관심 있던 악세사리 문의를 했더니, 보여줄 것이 있다며 잠시 기다려 달라고 한 후 그가 들고 온 것은 실버 목걸이였다. 월드와이드 희귀템이라며, 본인의 에르메스 라이프 중에 몇 번 보지 못했던 물건이 마침 들어왔는데 잘 어울릴 것 같아 가져왔다고 했다. 고심 끝에 또 다른 희귀템이라는 로데오참을 내려놓고 목걸이를 구입하기로 했다.

다만, 현금 인출을 하려 하니 백화점 안에 atm기가 없었다. 켄타는 잠시 고민하는 듯 하더니 헷갈릴 수 있으니 직접 안내해 주겠다고 했다. 근처 은행으로 갔으나 트래블로그 카드로는 인출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고, 30여 분 동안 주변을 돌며 우여곡절 끝에 세븐일레븐에서 인출에 성공했다.

함께 길거리를 누빈 덕분에 켄타와 친구처럼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그는 뉴질랜드에서 유학을 했고 친한 한국인 친구들이 있어 한국에도 가끔 온다고 했다. 삼겹살과 찜질방이 그립다는 켄타와 이야기하며, 미국에 있을 때 친했던 일본 친구들이 생각났다. 마지막에는 명함을 교환하는데 일본에 친구가 한 명 생긴 느낌이었다.


소비가 제일은 아닙니다만,


여행을 좋아하는 나는, 세계 지도를 보다가 훌쩍 떠나는 것을 좋아한다. 작년 가을 방콕과 교토를 다녀온 후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그때의 시간을 활자화하는 과정이 좋았다. 7일간의 도쿄 여행을 어떻게 풀어낼까 하다가, 가방을 분실할 뻔했던 경험을 반면교사 삼아 '소비'를 주제로 나의 걸음들을 기록하기로 했다.

기록 과정에서 생략된 부분도 많다. 오마카세를 즐기기도 했지만, 편의점 음식으로 끼니를 때울 때도 있었고(일본 편의점 음식도 맛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길거리를 걷는 것만으로도 좋은 시간들이 있었다. 밤 12시에 돈키호테에 들려 소소한 물품들을 사는 재미도 있었고, 하코네에서는 무엇을 하지 않아도 머무름 자체가 힐링이었다.

집을 떠나 여행이란 이름 아래서는 무엇을 경험하든 에피소드가 되고 추억이 되곤 한다. 연말의 도쿄에서 느낀 것들이 좋은 자양분이 되길 바라며 다음 여행을 기약해 본다.

비행기에서 바라본 초승달!


H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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