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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ohyun Hwang Sep 17. 2018

어탕 국수

나는 요리를 잘하거나 자주 하는 편은 아니다. 그러나 요리를 하게되면 재미있게 하려 한다. 말하자면 실험적 요리를 시도하는 편이랄까. 어린 시절에 그랬다면 아마도 음식가지고 장난치지말라는 호통깨나 들었을 것이다. 굳이 예를 들자면 이렇다. 냉장고 문을 열고 눈에 띄는 재료들을 쓸어담아서 또 찬장의 각종 재료들을 이것저것 뒤석어서 잡탕찌게를 끓이는 것이다. 이게 요리라기 보다는 청소에 더 가까운 건지는 모르겠지만.


요리가 얼마나 창의적일 수 있는가를 나에게 깨우쳐 준 사람은 내 연수시절의 우리집 주인이었다. 하숙집 여주인으로 상상력을 발휘할 필요는 없다. 나보다 한살많은 총각이었는데 이양반 직업이 요리사였다. 대개의 식당이 그렇듯이 그는 주말은 바빠서 얼굴볼 일이 없었고, 월요일이 쉬는 날이라 그날이 집안 청소도 하고 밀린 빨래도 하고 공과금도 처리하는 날이었다. 어쩌다 내가 집안에서 밍기적거리는 날이면 서로 편한 복장으로 인사를 나누곤 했다.


하루는 이 양반이 나에게 요리를 해주겠다는 것이다. 저나 나나 혼자살이니 그 고달픔이야 굳이 말로 하지않아도 이심전심이었을 것이다.무엇보다 그는 직업이 요리사니 적어도 먹는 것 하나는 나보다 나았을 것 아닌가. 맨날 라면에 피자에 햄버거로 떼우는 내가 좀 불쌍해 보였는지도 모른다. 햇반은 세상에 나오기 전이었다. 그러면 요리값으로 내가 낼테니 밥먹고 영화나 같이 보러가자고 얘기가 잘 되었다. 나는 모처럼 집에서 요리사가 해주는 요리를 먹게 되어 약간 흥분했던듯하다.  


그러나 흥분도 잠시. 이친구가 기껏 한다는 요리가 라면 아닌가. 뭐야, 내가 맨날 먹는게 라면인데. 속으로 투덜투덜 하면서 에이 영화값만 날리게 생겼네 하고 있었다. 그런데 물 끓이고 면넣고 스프 넣으면 끝날 라면을 30분이 기다려도 아무 소식이 없는 것이다. 게다가 두닥두닥하는 도마소리는 또 얼마나 요란한지. 배가 고프기도 하고 뭘하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해서 부엌으로 갔다.


이형, 지금 뭐 만드세요?
라면 끓입니다.
라면 끓이는데 뭔 준비가 그리 복잡합니까?
아 나만의 라면요리입니다. 황형한테 솜씨자랑 좀 할라고요.


순간 아 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나만의 라면 요리, 그렇구나. 요리는 저렇게 하는 것이구나. 라면이라면 봉투 뜯어서 끓는 물에 끓이면 되는 줄 알았는데. 요리야 말로 인간 상상력만큼 독창적일 수 있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


지난 8월, 잠시의 서울 출장기간 중 뉴욕에서는 절대 맛볼 수 없는 요리를 먹어러 갔다. 뉴욕 한인사회 규모가 적지 않아서 왠만한 한국 음식은 다 먹을 수 있다. 그친구의 제안으로 찾아간 곳이 '어탕국수'. 내가 처음 먹어본 음식이다. 민물매운탕 국물에 국수를 넣어 끓인 요리다. 왜그런지 모르겠지만 이런 음식은 흐름한 집에서 먹는 것이 제격이다. 땀을 뻘뻘 흘리며 어탕국수 한그릇을 후다닥 비웠다. 상상력이 가미된 요리가 맛도 뛰어나면 기억에 오래 남는 법이다. 요리사 친구의 라면 만큼이나 두고두고 생각이 날 것 같다. 나에게 어탕국수를 소개해준 그 친구에게 새삼 고마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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