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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ohyun Hwang Oct 16. 2018

염색의 변

대략 1년전, 한국 출장을 앞두고 뭔가 스스로에게 변화를 주고자 평생 처음 염색을 했었다. 주변 분들이 내 힌머리를 두고 인사치레로 좋은 말씀들을 해 주실때 나도 건성건성 고맙다는 말씀을 드렸지만 한편 스스로 은근히 백두와 흑두가 조화를 이루고 있는 머리카락에 나름의 자부심도 없지 않았다. 그런데 백두의 밀도가 늘어남에 따라 한번쯤 변화를 시도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일단 한번 해보자는 새벽 물안개처럼 피어오르는 유혹에 출장을 핑계로 넘어간 것이다.


내가 염색을 망설였던 가장 큰 이유는 염색후 일정 시간이 지나면 보이는 검은 머리 부분과 힌 머리의 대조라인 때문이었다. 머리카락이라는 것이 소리소문없이 자라나는 것이라 뿌리까지 바꾸지 않는 한 뻗쳐나오는 힌머리를 감당할 방법이 없다. 염색을 아예 하지 않으면 몰라도 염색을 하게 되면 이 힌 라인은 감내해야할 숙명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이 힌 라인을 감추기 위해 쫓기듯이 미장원을 찾느니 차라리 백두를 고수하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미장원에 가지 않고 집에서도 염색을 편하게 할 수 있다는 애들 엄마의 말에 귀가 솔깃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눈뜨면 오늘 해야지 하다가 퇴근하면 에이 까짓것 하기를 2, 3주. 출장은 다가오고 결단을 내려야할 때가 왔다. 출장 2주전쯤이었으니 얼추 작년 이맘때였을 것이다. 용기(?)를 내서 도전에 나섰다. 약을 머리카락에 칠하고 7분을 기다려라고 해서 범생이 기질을 발휘하여 족히 10분은 더 기다린 것 같다. 샴푸로 염색약을 깨끗이 씻어내고 시키는대로 짙은 색 타월로 물기를 닦아냈다.


거울앞에 선 나를 보는 순간, 헉 저게 누구야. 거기엔 나 아닌 내가 서 있었다. 바로 그 순간 내가 몹쓸 짓을 했구나 라는 것을 깨달았다. 다시는 염색하지 않으리... 그러나 기왕에 엎질러진 물, 이제 관객 반응을 살필때다. 화장실 앞에는 대단히 날카로운 4명의 평가단이 호기심 반, 걱정 반으로 대기중이었다. 문을 여는 순간 4명 모두 헉! 이게 가장 진실한 반응이다. 그래 나도 헉인데 니네들이야 오죽 하겠나. 순간의 정적이 흐른 후 이성을 되찾은 평가단은 진실한 반응의 미안함을 감추기 위해 나름대로 합리적 칭찬을 쏟아붓기 시작한다. 그래 염색은 아냐.


염색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눈이 문제다. 우리는 익숙한 것에는 너그럽지만 생소한 것은 불편해한다. 이방인이 마을에 나타날때 보이는 반응과 다르지 않다. 나와 내 가족이 멈칫할 정도라니 익숙함의 뿌리가 얼마나 깊고 생소함의 파괴력이 얼마나 큰 지 알겠다. 출장에서 만난 분들의 한결같은 반응은 와 젊어지셨네요 였다. 생소함을 감추는 말로 이보다 좋은 것은 없다. 한편 우리 의식속에 자리잡은 흑두와 젊음, 백두와 늙음의 고정관념은 좀 씁쓸하다.


달포전 새 샴푸를 구입했다. 머리를 감으면 점짐적으로 염색이 되어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머리 색깔을 바꿔준다는 제품이다. 염색겸용 삼푸인 셈이다. 이 광고를 보고 저거 한번 사용해봐야겠다고 생각한 것이 올 봄. 그러니까 힌머리 라인이 내 염색머리를 한참 밀어내고 있던 때이다. 몇달을 망설이다가 집사람 몰래 아마존에서 하나 구입했다. 2,3일에 한번씩만 하면 된다는 것을 첫 일주일은 마음이 급해 매일 해댔다. 그런데 검어지는것은 머리카락이 아니라 손톱이다. 아 이게 물이 들기는 드는구나. 그 다음부터는 비닐 장갑을 끼고 사용법대로 3일에 한번씩 하기를 한달. 힌머리와 검은 머리가 여전히 섞여 있어 매일 만나는 사람은 나의 머리색깔 변화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내가 원하는 바다. 나이들면 숱이 적어질뿐만 아니라 남아있는 모발도 가늘어져 힘이 없어진다. 이 염색 샴푸를 사용한 이후 머리카락에 힘이 좀 들어간 것은 덤으로 얻은 효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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