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yohyun Hwang Oct 30. 2018

정치인의 용기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임종석 비서실장을 만났다고 한다. 임실장이 남북정상선언 이행추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언론은 이 만남을 매우 이례적인 것으로 평가하는 것 같다. 대북관계라면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나 강경화 외교부 장관 혹은 조명균 통일부 장관을 만났어야 하는데 왜 하필이면 임실장이냐는 의문이다. 이런 문제제기는 매우 적절해 보인다. 뭔가 앞뒤가 맞지않아 보이는 부분에 대해 의문을 가지는 것이 언론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의문에 대한 후속보도는 그야말로 태산명동에 서일필 격이다. 한시간 정도의 면담에서 양 당사자는 남북이 추진중인 현안에 대해 한미간 이견을 조율하고, 임실장은 미북 정상회담의 성공을 당부했고, 비건 특별대표는 한국 정부의 지원을 요청했다는 것이 전부다. 격리된 공간에서 제한된 사람들끼리 나눈 대화를 엿듣지 않는 한 있는 그대로를 취재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러니 발표하는 대로 받아적을 수 밖에 없다. 그런 현실적 제약을 인정하더라도 문제제기의 시선에 비해 답을 수용하는 자세는 안일하다.  


나는 서로 협력해서 잘해보자, 이런 거 저런 거 좀 천천히 가자 그런 대화를 나누기 위해 그 바쁜 비건 대표가 청와대로 임실장을 찾아갔으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도대체 미국은 궁금한 것이다. 과연 임실장은 주사파인가 아닌가 하는 점이. 아직도 북의 사상을 염모하는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 직접 확인해 보고싶은 것이다. 남한 정부가 강하게 추진하는 평화 모드에 또다른 동기는 없는지 검증하고 싶은 것이다. 이는 전대협 의장으로 임수경을 북에 보낸 그의 전력과도 일정부분 연계되어 있다. 임실장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상당수 국민들은 그가 아직 주사파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CIA가 그런 국내 여론을 본국 정부에 당연히 보고했을 것이다. 미국은 그 사실을 직접 당사자로부터 확인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기자는 이 내용을 확인했어야 한다.


우리가 가는 평화의 길은 이렇게 수많은 장애가 도사리고 있다. 임실장이 비건 대표에게 나 주사파 아니오 라고 했다고 문제가 일사천리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은 한국과 협력하는 것이 자국이익에 유리하다는 판단이 내려질때까지 시간을 질질 끌 것이다. 현상 유지가 더 유리하다고 판단하면 어떻게든 훼방을 놓을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이 불리와는 상관없다. 국내의 멸공통일 지지층도 설득해야 한다. 미중 갈등의 불티가 우리쪽에 튀지 않도록 해야 한다.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냐는 북의 무례함, 그들의 내부 여론도 살펴야 한다. 이런 역경과 모멸을 감당할 수 있을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평화는 지켜낼만한 가치가 있다. 그런 가치를 지키기 위한 인내가 진정한 정치인의 용기다.

작가의 이전글 뇌의 공회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