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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ohyun Hwang Dec 06. 2018

바둑판을 샀다.

바둑판을 주문했다. 대나무를 겹겹이 붙여서 만든 것이라고 하는데 아마존 안내를 보니 두께가 2인치다. 이정도면 제법 묵직한 맛이 있을 것 같다. 바둑 돌과 돌을 담아두는 통, 그 통을 또 보관하는 조그마한 백까지 한세트다. 뭔가 색다른 놀이거리가 필요한 시점이 바둑이 불현듯 따올랐고, 일단 저질러 놓고 보는 성격 탓에 적지않은 금액이지만 덜컥 구매 버튼을 눌러버렸다.


나는 바둑을 정식으로 배워본 적이 없다. 어르신들 내기 바둑을 어깨너머로 배운게 전부다. 20여가구의 시골 동네라 바둑을 둘 수 있는 사람은 매우 제한적이서 맨날 마주치는 사람은 그 사람이 그 사람이었다. 바둑판도 동네 하나밖에 없었고 바둑 돌도 오래되서 반쯤 깨진 것이 절반이었다. 그러니 포석이니 정석이니 사활이니 이런 것을 제대로 알 리가 없다.


동네 친구들과 바둑을 둔 기억보다는 오목을 둔 기억이 더 많다. 아마도 바둑을 둘 수 있는 친구가 별로 없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오목은 사전 지식이 없더라도 금방 배울 수 있고, 승부가 빨리 나기 때문에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적격이다. 게다가 꼭 바둑판과 바둑 돌이 없어도 즐길 수 있는 게임이니 시골 애들의 놀이로는 안성마춤이었다.  


혼자서도 할 수 있는 골프와는 달리 바둑과 오목은 상대가 필요하다. 하지만 누군가가 반드시 내 앞에 있을 필요는 없다. 인터넷에 들어가면 같이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늘려있다. 그런데 나는 굳이 인터넷까지 찾아가며 바둑을 두고 싶은 생각은 없다. 명절때 식구들이 모여 윷놀이 하듯이 다같이 웃고 떠들 수 있는 가족 오락거리 정도만 되어도 충분하다. 우선 애들에게 오목을 가르쳐야지. 그러나 이런 즐거운 상상도 잠시, 불같은 추궁을 생각하니 사활은 바둑에만 있는 것이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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