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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ohyun Hwang May 23. 2019

Hotel Pennaylvania

PE6+5000

오늘은 암호로 시작해 봅니다. 음악 매니아들은 아마도 바로 눈치 채셨겠지만 저는 이게 뭔 말인가 했습니다. 글렌 밀러라는 분이 1940년 발표한 곡의 제목입니다. 그렇다해도 무슨 말인지 짐작도 할 수 없는 이런 제목으로 곡을 만들었다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매사가 그러하듯이 분명히 뭔가 사연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은 후 많은 분들이 그 내용에 공감하는 것은 아마도 조르바의 파란만장한 인생살이 덕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긴 인생살이에 소설책 몇권 분량의 사연이 없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사람이나 건물이나 세월이 오래되면 사연의 종류도, 내용도, 깊이도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제가 일하는 곳에서 한블락 떨어진 곳에 펜실베니아 호텔(HOTEL PENNSYLVANIA)이 있습니다. 1919년에 완공된 그러니까 올해 정확히 100년된 호텔입니다. 100년 세월이라면 조르바 정도는 아니라고 벽돌 사이 사이에 끼어 있는 이끼만큼의 사연은 있게 마련입니다. 제가 이 호텔에 관심을 갖게 된 까닭은 아주 단순합니다. 짐 가는 길에 이 건물 로비를 거쳐 가는데요. 지날 때마다 보면 첵인하는 사람들로 로비가 언제나 너무 번잡합니다. 요즘 같은 디지털 시대에 키오스크 10대만 로비에 배치해도 간단하게 해결될 일을 언제나 입국 수속장같이 방치하나 싶어서 입니다.  


PE6-5000은 초기 펜실베니아 호텔의 전화번호입니다. 공식적으로 확인된 것은 아니지만 호텔측의 주장에 따르면 뉴욕에서 번호가 처음 만들어진 이래로 같은 이름으로 같은 장소에서 사용되고 있는 가장 오래된 번호라고 합니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번호 체계는 1947년 AT&T에 의해서 소개된 것입니다. 그 이전에는 통일된 번호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앞쪽에 문자 3개, 그 뒤에 숫자 4개(3L, 4N)를 조합하여 번호를 만들었고, 이것이 후에 문자 2개, 숫자 5개(2L, 5N)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PE는 PENNSYLVANIA의 약자입니다. PE를 오늘날의 번호체계로 바꾸면 73에 해당됩니다. 맨해튼의 지역번호인 212를 앞에 붙여 212-736-5000으로 재탄생한 것이죠.


100년의 역사동안 호텔의 주인도 몇차례나 바뀌었습니다. 이름도 계속 바뀌었습니다. 건물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오피스 빌딩을 짓겠다는 계획도 수차례 제출되었지만 건물을 보존해야 한다는 시민들의 주장과 첨예하게 충돌하기도 했다는데요. 최종적으로 철거 및 재건축 승인을 받았으나 이번에는 맨해튼의 부동산 경기 하락으로 건물주가 재건출을 포기하고 호텔 리노베이션을 통해서 수익을 개선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고 합니다. 기구한 사연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Hotel Pennsylvania는 길 건너 저편에 말없이 버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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