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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ohyun Hwang Jun 12. 2019

미국의 남북전쟁

158년전, 1861년 발발한 남북전쟁은 여전히 미국에게는 큰 상처로 남아있다. 대서양 연안의 어디를 가더라고 언제 어떤 전투에서 누가 싸웠고 몇명이 전사하였으며 몇명이 부상을 당했는지 그 기록을 우리는 동판에 새겨진 문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전쟁이 얼마나 치열하고 전국적이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몇가지 통계만 있으면 충분하다.


당시의 전체 인구대비 전쟁에 참여한 군인들의 규모를 보면 전쟁이 얼마나 큰 규모, 전사자 숫자 등이 그것이다. 누군가가 내 할아버지와 아버지와 삼촌과 형제를 죽인 사람이라면 그 상처를 걷어내는 시간이 짧지 않을 것임은 분명하지 않겠나.


전쟁 당시 북부의 총 인구는 대략 2천 2백만명이었다. 이에 비해 남부의 총 인구는 약 9백만명 정도였다고 한다. 이 인구의 차이는 전쟁에 동원할 수 있는 인력의 차이와도 직결된다. 북부군의 총 규모는 2,124,948명이었고, 남부군은 1,082,119명이었다. 전체 인구 대비 10% 조금 넘는 숫자이다. 단순 계산만으로도 성인 남자 3명중 한명은 남북전쟁 참전 용사였을 것으로 추정 가능하다. 사실상 모든 가구에서 누군가는 참전 군인이었던 것이다.  


전사자 숫자는 여전히 연구 대상이다. 뉴욕 빙햄턴 대학 데이비드 해커(David Hacker) 교수의 2012년 연구에 따르면 75만명 정도였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그 이전 미국 학계에서 인정하고 있는 사망자 숫자는 북부군이 360,222명, 남부군이 258,000, 총 618,222명이다. 이 숫자는 전사자, 부상 후 사망자, 전쟁중의 질병으로 사망한 군인을 모두 포함한 것이다. 남북 전쟁을 제외한 미국 독립전쟁부터 1, 2차 대전과 최근의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이르기까지의 나머지 전체 전사자 숫자는 약 644,000명 이라고 한다. 미국 건국이래 총 전사자 숫자의 약 절반이 남북전쟁 4년동안 발생한 것이다. 이렇게 남북 전쟁은 두어집 건너 한집에 전사자 아니면 부상자를 만든 상처 투성이의 전쟁이었다.


서로 총을 겨눈 사이에서 한나라 한백성으로 나아가는 데는 100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참전 용사들이 죽고, 그 참전 용사들의 치열한 이야기를 듣고 자란 아이들이 죽고, 다시 그 이야기를 듣고 자란 아이들이 할아버지가 되었을 즈음에 비로소 상처는 조금씩 아물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니 아직도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총을 맞대고 있는 나라의 상처는 얼마나 더 지나야 나을 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더군다가 누군가가 상처를 자꾸 덧내려 한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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