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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ohyun Hwang Jun 18. 2019

애매한 중국어

한국에 있을 때도 드라마는 잘 보지 않았습니다만 지금은 더더욱 드라마 접할 기회가 거의 없습니다. 제가 드라마를 좋아하면 유투브를 뒤져서라도 열심히 볼텐데 시큰둥한 편이라 간혹 점심시간에 친구들이 하는 얘기를 들을 때면 참 드라마가 신기하게 진화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그런데 제가 인터넷 검색으로 가끔 보는 드라마가 있습니다. 바로 중국 고전극들, 특히 주요 역사적인 사건이 얽힌 영상물들입니다. 이 중국 고전극들은 물량 동원이나 극적 구성이나 역사적 사건의 해석에서 시선을 멈추게 하기에 충분합니다.


고백하자면 저의 이 습관은 중국 생활 5년에서 길러진 것입니다. 오락거리도 별로 없고, 당시만 해도 한국 방송을 인터넷으로 잘 볼 수 있던 시절도 아닌 지라 불법 DVD로 영화를 보든지 스타 스포츠에서 중계해주는 EPL을 보든지가 여가의 대략이었습니다. 어느날 채널을 돌리다가 중국 채널에 잠시 멈췄는데 마침 어전회의 장면이 나오는 것입니다. 신기하기도 하고 중국어도 단련할까 해서 채널을 고정했습니다.  


우리나라 사극을 보면 임금은 단상에 앉아 있고, 신하들은 단 아래 무릎을 꿇고 엎드려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중국 사극에서는 신하들이 좌우로 도열하여 선 채 황제와 어전회의를 하고 있더군요. 한국 방식에 젖어 있던 나는 그 장면이 처음에는 참 신기했습니다. 바로 이어지는 장면이 더 놀라왔습니다. 한 신하가 앞으로 나와 황제를 마주보며 일장 연설을 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 장면에서 저는 아 하는 감탄이 저절로 나왔습니다.


신하가 황제한테 고개를 쳐들고 일장 연설을 해서가 아니라 중국어의 음악적 감성에 귀가 번쩍 뜨였기 때문입니다. 중국어는 참 음악적이며 웅변적인 언어입니다. 우리는 사성 때문에 배우기 어려운 언어라는 선입관이 있는데 이 사성 덕분에 중국어는 듣고 있으면 때로는 저절로 흥이 나기도 합니다. 이것이 제가 중국 사극을 즐겨보게된 계기입니다.


그런데 문자로서의 중국어는 좀 애매한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문장의 의미가 명료하지가 않고 이런 저런 해석의 여지가 많은 것입니다. 물론 저는 중국어 전공자도 아니고, 중국어가 유창하지도 않아서 중국어에 대해 가타부타할 처지는 아닙니다. 다만 제가 현장에서 느꼈던 점을 말하고 있는 것인데요.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서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나중에 문제가 생겼을때 빠져나갈 구멍이 있으니 다행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힘 있는 사람이 자기 마음대로 해석해버릴 가능성도 없지 않은 것입니다. 변란을 많이 겪은 중국인들의 지혜가 문자속에 스며들어 있는 것일까요? 중국이 미국과의 협정문에 반드시 중국어를 고집하는 것도 중국어의 이런 특징을 잘 활용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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