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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ohyun Hwang Nov 16. 2019

HIP

저는 버스로 출퇴근합니다. 우리집 바로 앞에 버스 정류장이 있고, 여기서 버스를 타면 곧이어 고속도로이기 때문에 매우 편리합니다. 버스 앱으로 몇분쯤 후에 도착하는가를 보고 집에서 게으름을 피다가 후다닥 나가도 차를 탈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아쉬운 점은 고속도로 직전 정류장, 그러니까 뉴욕향으로는 제일 마지막 정류장이라 좌석이 없다는 점입니다. 한시간여 좁은 버스안에서 시달릴 것을 생각하면 이 입석은 거의 지옥이나 다름없고, 이렇게 진을 빼고 나면 사무실에 도착해도 한동안 멍해집니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입석만 있는 버스는 그냥 보내고 자리가 있는 버스가 올때까지 기다립니다. 어떤 때는 30분을 기다리기도 하고 어떤 때는 지쳐서 그냥 입석을 타기도 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시커먼 전세버스가 버스정류장에 멈추더니 저더러 타라는 것입니다. 나 뉴욕 가는데? 응 이것도 뉴욕 가. 걱정말고 타. 뉴욕 어디? 포트 오소리티.(버스터미날) 그래? 냉큼 탔습니다. 알고보니 출퇴근 시간에만 운영하는 HIP이라는 전세 버스였습니다. 정확하게(사실은 약간 들쭉 날쭉) 시간에 맞춰 운행하고 미리 예약을 해야하기 때문에 좌석이 언제나 확보되는 장점이 있습니다. 대신 일반버스보다 약간 비쌉니다. 저같은 사람을 위한 틈새 시장을 정확히 겨냥한 것입니다.


저는 버스 운송 사업 인허가가 어떻게 이뤄지는지 잘 모릅니다. 이 회사도 사전에 충분히 시장조사를 했을테고 사업성이 있다고 판단되자 아마도 관련 인허가를 받은 다음 사업을 시작했을 것입니다. 그 인허가 과정이 전례가 없다든지, 적용할 규정이 없다든지와 같은 이유로 지연된다든가 하는 경우는 없는 듯 합니다. 새로운 사업 모델이라면 당연히 전례가 없는 것이고, 전례가 없으니 그와 관련된 규정도 없을 것입니다. 사실 우버 같은 사업 모델도 미국이니까 쉽게 시장에 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버나 리프트가 너무 많아서 문제가 생기자 뉴욕시에서는 이를 규제하기 위한 방안을 만들고 있습니다. 전례가 없다면 우선 허가를 먼저 해 주고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를 먼저 보는 것이죠.


사업자들이 사업을 더 잘 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방법은 이와 같아야할 것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새로운 기회가 만들어지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인허가권을 쥐고 있는 사람들이 산업화시대의 사고로 이 시대를 재단하려하는 것은 그런 기회의 싹을 잘리버리는 대단히 무모한 발상입니다. 우리가 멈칫하는 사이 경쟁국들은 저만치 앞서가 버리기 때문입니다. 우리 청년들의 창의적 사업 아이디어를 벤치마킹하기 위해 우리나라를 모니터링하는 것은 선진 IT기업들의 일상적인 활동중 하나입니디. 그 정도로 우리는 독창적 열정이 넘치는 나라입니다.


저는 오늘도 HIP을 타고 편안하게 출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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