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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ohyun Hwang Feb 07. 2020

들깨 강정 씹는 아침

들깨는 밭농사의 곁가지 정도였습니다. 아무래도 밭에 주로 심는 것은 콩, 감자, 고무마, 고추, 배추, 무우 같은 것들이었고, 간혹 참깨도 두어 이랑 심었는데, 유독 들깨만 밭 가운데 자리 잡지 못하고 가장자리로 죽 둘러쳐져서 마치 밭을 지키는 담벼락같은 존재였습니다. 농사일을 거드느라 밭에 자주 다녔던 어린 시절, 저는 그래서 들깨는 밭에 심어놓은 농작물들을 들짐승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장애물 정도로 생각했었습니다. 이름도 '들'깨라니, '참'깨와 비교하면 왠지 급이 낮은 듯 하지 않습니까.


참깨는 씨알의 크기가 아주 작아서 제법 긴 이랑을 모두 추수해도 한되박이 나올까 말까하는 정도였습니다. 어느정도 익으면 낫으로 벤 다음 두 손으로 잡을 정도의 크기로 묶어서 말리는데, 비닐 천막같은 것을 바닥에 깔고 그 위에서 이 말린 것들을 방망이로 두들겨 추수합니다. 도리깨로 추수하는 콩과는 조금 다릅니다. 참깨는 볶아서 가루를 낸 다음 음식에 넣어 먹기도 하고, 참기름으로 빼서 먹기도 했습니다. 기름을 뽑아주는 기계는 모양새도 신기했을뿐만 아니라 천천히 압력을 가하면 노르스름한 참기름이 조금씩 나오는 것도 참으로 신통방통했었습니다. 이때 고소한 향기가 사방으로 퍼져 나갑니다.  


그런데 들깨는 벌써 그 생김새에서 부터 참깨에 한참 밀립니다. 씨알도 참깨보다는 훨씬 굵어서 귀하다는 느낌이 통 들지 않습니다. 들깨를 음식에 넣어 먹는다거나, 기름을 빼서 먹는다거나 한 기억이 거의 없습니다. 별로 먹지도 않을 것을 늘 밭 주변 심고 거두는 것이 저는 좀 불만이었습니다. 일거리만 늘어났거든요. 가끔 들깨를 벌꿀에 버무려 구슬크기만하게 만든 다음 강제로 먹게 했었는데 저는 아주 질색을 했었습니다.


그런 들깨가 뼈와 혈관의 건강을 지켜주고, 빈혈과 우울증에도 좋으며, 알러지 억제, 노화 방지, 치매 예방도 도와주는 말하자면 나이들어가면서 반드시 섭취해야할 건강식품이라는 것입니다. 들깨 순두부는 제가 점심때 즐겨 먹는 음식입니다. 들깨도 순두부도 몸에 좋다니 꿩먹고 알먹고 하는 심정이 없지는 않습니다. 지금 제 사무실 책상에 들깨 간식이 놓여 있습니다. 출출하거나 한참 일을 하다가 갑자기 초코렛이 생각날 때, 두, 세개를 씹어 먹습니다. 그럴때마다 입안 가득한 들깨향이 여러 생각을 불러 일으킵니다. 벌써 절반을 먹어버렸다니, 좀 아껴가며 먹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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