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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ohyun Hwang Mar 31. 2020

재택근무 2

뭔가 외식을 해야만할 것 같은 토요일 저녁인데 어디 가서 먹을 식당이 없습니다. 모든 식당들이 테이크 아웃만 서비스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우중충한 날씨를 이길 수 있는 얼큰한 묵은지 등뼈찜을 먹기로 하였습니다. 주문과 계산과 픽업은 제 몫입니다. 전화로 주문한 후 집에서 출발하면 식당 도착할 때쯤에는 준비가 다 되어있을 만한 거리입니다. 지금 길거리는 주말이라도 모두 비어 있어서 평소보다 시간도 덜 걸리고 주차도 원활합니다.


묵은지 등뼈찜을 부르스타에 올려놓고 와인을 정성스럽게 개봉하였습니다. 사람마다 와인을 개봉하는 방식이 다를텐데 저는 먼저 오프너에 달려있는 조그만 칼로 병뚜껑을 덮고 있는 덮개를 완전히 벗겨냅니다. 그런 다음 스크루를 코르크 정중앙에 맞춰 조심스럽게 돌리다가 일단 스크루가 안정이 되면 힘을 주어 획획 돌립니다. 코르크를 빼고 나면 테이블 티슈를 한장 꺼내서 병목을 감싸는 스카프를 만듭니다. 멋있어 보이려고 그러는 것이 아니라 와인을 따를 때 병으로 흘러내리는 것을 막기 위한 것입니다.


감자탕과 김치찜은 맛이 좀 다릅니다. 감자탕과도 잘 어울리지만 제 입맛에는 김치찜과 와인이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하긴 제 입맛에 와인과 어울리지 않는 음식이 있겠습니까. 음식을 먹기 위해 와인을 마시는 건지 와인을 마시기 위해 음식을 먹는 건지 저도 헷갈립니다. 그러니 1/3쯤 부어져 있는 와인잔은 저의 저녁식사에 물이요 소금입니다.


젖가락으로 조심스럽게 등뼈에 붙은 고기를 발라먹다가 결국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손으로 뼈를 덥석 잡았습니다. 잘 숙성된 김치가 펄펄 끓는 탕에 익혀져 부드럽게 씹히면서도 짭짜롬한 묵은지의 맛은 그대로입니다. 한입 먹고 한모금 마시고, 또 한입 먹고 한모금 마시고. 이렇게 마시는 와인이 특별히 더 맛있는 것은 음주운전 걱정을 안해도 되기 때문입니다. 두잔을 마시고 나머지는 내일 저녁을 위해 남겼습니다. 코로나가 선물한 저의 토요일 저녁 특식은 이렇게 끝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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