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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ohyun Hwang Sep 16. 2021

테일러 목사님


최루탄 가득한 서울에서 내가 근근이 대학생활을 이어가고 있을때 그는 세계의 중심 뉴욕에서 패션을 전공하고 있었다. 그 시절, 그와 나의 37,8여년 후 미래는 공통점이라고는 전혀 없어서 우리가 세월따라 흐르다 어느순간 만나서 과거를 들추는 일은 절대 일어날 수가 없었다. 그나 나나 그런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마이크는 목에 커다란 목걸이를 하고 있었는데, 흑인들의 과장된 악세사리로만 여기다 좀 더 주의깊게 살펴보니 목걸이에 십자가가 걸려있는 것이다. 그저 신심이 독실한 크리스찬인가보다 했다.


그의 명함에는 '패션디렉터'라고 큼지막하게 박혀 있다. 그런데 의외로 원단에 대해서는 조금 초보적이다. 그는 아마도 디자인쪽 보다는 생산이나 머천다이징 전문가일 것이다. 중국에서 주로 옷을 만든다는데 10월초의 국경절 연휴에 대한 정보도 조금 부족하다. 내가 아는 대로 설명을 해주니 나를 금세 전문가 취급한다.


대뜸 점심을 같이 먹잔다. 불감청인나 고소원 아닌가. P.F.Chang으로 갔다. 그가 앞서가고 나는 내차로 뒤따라갔다. 그는 소렌토를 몰았고, 내가 렌틀한 차는 K5. 그 식당을 고른 이유는 순전히 내가 아시안이었기 때문일텐데 그 나름의 호의라고 봐야겠지. 한국 식당이 근처에 있었다면 아마 그리로 데려갔을 것이다.


수다가 시작되었다. 그가 주로 말하고 나는 주로 듣는데, 가끔 추임새로 질문을 던져본다. 그가 스스로 밝힌 바에 따르면 나와 같은 해 파슨즈에 입학했고, 졸업후 뉴욕에서 17년 살았단다. 그러나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고향인 리치몬드로 돌아와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는데, 또다시 하나님의 명에 의해 목회의 길로 들어섰다는 것이다.


패션디렉터가 되기 전 그는 이미 목사였다. 그러니까 지금은 투잡을 뛰는 셈.


나는 팬데믹 이후 뉴욕이외의 고객을 방문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유명하지도 않고, 대도시도 아닌 곳의 패션 스타트업을 찾아온 이유가 뭐냐고 그가 물었다. 나도 모르겠다고 했다. 그냥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왔을 뿐이라고. 그러자 그는 땡갓을 연발한다. 신의 섭리라는 것이다. 갑자기 나는 신이 마이크에게 보낸 사람이 되어 버렸다.


이유를 알 수 없을 때는 그것이 하나님의 부름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이것보다 확실한 이유가 어디 있을까. 끝까지 내가 무신론자라는 것을 말하지 않았다. 그가 나를 만나러 뉴욕으로 오겠다고 한다. 인생이란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의 연속이다. 아마도 마이크는 신의 섭리라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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