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위기는 소련이 미국의 턱밑인 쿠바에 미사일 기지를 건설하려는 것에서 촉발되었습니다. 케네디 대통령은 전쟁 불사의 강력한 의지로 호루시초프의 기를 꺾었고, 이후 두 강대국간은 냉전속 데탕트의 시대를 열게 됩니다. 소련은 동구권 국가들의 대장 노릇을, 미국은 민주 진영 국가들의 대장 노릇을 하는 시대가 시작된 것입니다.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이유도 나토의 동진을 꼽았는데, 이것은 사실 쿠바 사태때의 미국의 반발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미국이 소련에 전쟁 불사 경고로 소련을 주저앉히는데 성공했다면 러시아는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푸틴이 미국에다 얼마나 강력한 경고 혹은 협박을 했는지 모르지만, 그것은 미국에게 전혀 통하지 않았고, 결국 나토동진 방지라는 명분으로 지금 양국 합쳐 적어도 5만명 이상이 사망한 전쟁을 일으키고 만 것입니다.
이번 침략 전쟁을 통해 푸틴은 나토 동진 방지라는 그의 전략적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까요? 아마 그럴 것 같습니다. 나토만 놓고 보면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 댓가로 러시아는 미국 무기로 무장한 매우 강력한 군사 대국과 국경을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미국은 과거 바르샤바 조약기구 소속이었다가 나토 회원국이 된 폴란드, 루마니아, 헝가리 등 국가들의 무기체계를 바꾸기 위해 십수년간 노력해 왔으나 이들 국가는 여전히 러시아제 무기를 버리지 않고 있었습니다. 나토 회원국이 아닌 우크라이나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것이 이번전쟁을 통해 한순간에 바뀌어 버렸습니다.
우크라이나를 제외한 국가들은 구 소련제 무기를 지원이라는 명목으로 우크라이나로 보냈고, 그 공백을 차지한 것이 미제 무기들입니다. 사실 이것은 큰 변화이기는 하지만 결정적인 변화라 하기에는 좀 무게감이 떨어집니다. 시간이 지나면 어차피 미국 무기로 대체될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우크라이나 군 정보국장이 8월이 되면 전쟁의 양상이 바뀔 것이라고 발표한 것은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새로운 무기체계, 즉 미국 무기에 대한 적응과 운용기반 확보가 그무렵쯤 끝난다는 의미로 들리기 때문입니다. 무기 사용법 숙지는 물론, 그 무기를 유지보수하는 지원체계, 무기에 필수적인 대포 등 소모품 수급체계등이 완료되면 본격적으로 공세적 작전으로 전환하겠다는 것입니다.
러시아제 무기만 쓰던 동구권 국가들이 이제 완벽하게 미국제 무기만 사용하는 국가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무기 시스템을 공유한다는 것은 단순히 무기를 사고 판다는 것과는 그 의미가 다릅니다. 군사동맹은 아니지만 거의 그에 준하는 상호간의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우크라이나는 인구가 4천 4백만명, 국토 면적은 유럽에서 두번째로 큰 나라입니다. 경제적으로는 조금 발달이 늦은 편이나 천연자원과 밀의 세계적 생산국가로 잠재력이 결코 작은 나라가 아닙니다. 이런 나라가 러시아와는 철천지 원수가 되어 버렸고, 그것도 모자라 미제 무기로 무장하게 된 것입니다. 푸틴은 혹 떼려다 혹을 붙인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