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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ohyun Hwang Jun 21. 2022

콜럼부스 가는 길

여섯시 반에 나서기로 한 것이 우물쭈물 하다가 일곱시. 누구 한사람의 우물쭈물이 아니라 모두의 우물쭈물이 조금씩 톱니가 빗나다가보니 30분이 되어버린 것이다. 혹시 빠뜨린 것은 없나, 열쇠는 제대로 챙겼나, 충전기는, 새벽 달리기 해야하는데 신발은, 돌아올때는 비행기 타야 하니 신분증도 확인하고... 이러다 보니 지체된 것인데 사실은 그런 것보다 이제 본격적으로 독립하는 아이나 떠나보내는 우리 모두 마음을 미쳐 다잡지 못해 우왕좌왕했던 것이 더 큰 이유다. 아무리 지체하더라도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시각. 우리는 일곱시가 지나는 것을 보고 마침내 혹은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출발했다.


먼길이니 아침은 먹고 가자고 다들 이심전심,  스타벅스에 들렀다. 마음 급한 나는 차에서 먹으면서 가자 했는데 아이는 의자에 앉아 좀 편히 먹고 가자고 한다. 그러자고 했다. 각자 커피와 아침용 샌드위치를 주문했다. 코비드 때문에 참석못한 큰 아이를 제외하고 정말 오랜만에 온 식구가 장거리 로드 트립을 하는 것이라는  너스레. 큰 웃음의 유쾌함과 약간의 허전함. 그렇게 다시 30분의 지체. 결국 우리는 예정보다 한시간 늦게 대장정에 나섰다. 오늘 가야할 길은 550마일(880KM). 내가 앞에서 유하울(Uhaul)트럭을 몰고 둘째는 자기차를 운전해서 뒤에 따라오기로 했다. 둘째는 이정도 장거리 운전이 처음이다. 나는 긴장하고 있는 아이에게 장거리 고속도로 운전이 꽤 익사이팅할 것이라고 말해줬다.


우리는 출발하기전에 어떤 길로 갈 것인지 미리 의논했는데, 가장 간단하게 갈 수 있는 코스를 골랐다. 80번 고속도로를 타고 오하이오까지 간 다음 거기서 71번 고속도로를 통해서 콜럼버스로 가는 길이 그것이다. 80번 고속도로는 뉴욕과 샌프란시스코를 동서로 연결하는 고속도로이다. 중간에 콜럼부스와 시카고를 경유한다. 뉴욕과 샌프란시스코를 연결한다고 하지만 실질적으로 이 고속도로는 뉴욕이 아니라 뉴저지주에서 시작한다. 우리 여정은 펜실베니아주를 거쳐가는데 이 주의 동서 길이가 대략 310마일, 약 500km 정도다. 펜실베니아만 지나면 큰 고비는 넘기는 셈이다.


나는 트럭 운전 경험이 없다. 그런데도 덜컥 트럭을 렌트한 것은 아이의 짐이 전문 이사짐 회사에 의뢰하기에는 좀 적고, 그렇다고 애 차에 싣고 가기에는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저런 고민을 하다가 아예 트럭을 빌려 내가 운전해가기로 했다. 이사짐용 트럭 전문 렌트카 회사가 유하울이다. 이 회사외에도 많은 회사가 있지만 나는 눈에 자주 띄는 유하울을 선택했다. 이사짐 부피에 따라 트럭 크기를 고를 수 있다. 그리 많지 않은 짐을 고려하여 제일 작은 사이즈를 골랐다. 장거리 이사용 렌트는 기본 옵션이 4일이다. 싣고 이동하고 내리고 하는 과정을 생각하면 상당히 합리적이다. 렌트비, 보험료, 로드사이드 어시스턴스를 모두 합해서 $722.00 여기에 기름값을 더하면 대략 천불 가량. 톨비도 상당할 것이라 예상했지만 신기하게도 뉴저지에서 콜럼부스까지의 그 긴 고속도로가 공짜였다.


뉴저지와 펜실베니아 주는 델라웨어 강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맞닿아 있다. 주말에 가끔 델라웨어 강까지 다녀오기도 해서 뉴저지 쪽의 80번 고속도로는 꽤 익숙한 편이다. 그러나 강건너쪽은 미지의 세계. 아마도 애팔래치아 산맥 건너편은 더 넓은 대지가 있지 않을까 하는 정도의 상상으로 펜실베니아로 들어섰다. 산은 언제 끝날까, 확 트인 지평선은 언제 나오나 운전 내내 이 생각이 가득했지만 80번 고속도로는 산으로 산으로만 뻗어 있었다. 간간이 분지가 나타나 마음이 혹하기도 했는데 분지 너머는 또 산. 펜실베니아가 끝나는 지점에서야 비로소 산은 끝났다. 500km 내내 산이라니...


오하이오 주가 시작되었다. 80번 고속도로는 약간 북서쪽으로 구부러져 클리블랜드로 향한다. 우리는 남서방향으로 가야해서 이제 80번 고속도로와 헤어져 76번 고속도로로 올랐다. 원래 계획은 80번에서 71번으로 갈아타는 것이었으나 중간에 점검을 해 보니 이 길이 약간 지름길이었기 때문이다. 굳이 복잡한 클리블랜드 근처로 가지않고 남쪽으로 크게 우회해서 갈 수 있는 길이다. 71번은 클리블랜드, 콜럼부스, 신시내티를 연결하는 오하이오주의 기간도로인데 주도인 콜럼부스는 다른 두 도시의 가운데쯤 위치하고 있고 양쪽 도시까지는 대략 1시간반에서 두시간 거리. 한 때 이 세도시는 경쟁관계였으나 이제는 오하이오주의 주요 관공서, 오하오주립대, 네이션와이드 보험회사와 네이션와이드 어린이 병원, 인텔 연구소, 혼다자동차 등이 있는 콜럼부스의 성장세가 확연하다.


출발한 지 9시간여만에 우리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트럭은 시속 75마일을 넘지 못하게 세팅 되어 있는 것 아닌가 싶게 아무리 엑셀러레이터를 밟아도 속도가 오르지 않았고 특히 내리막길에서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엔진 브레이크가 걸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짐칸 때문에 룸 미러로 뒤를 볼 수 없는 점이 좀 불편했다. 사이드 미러도 수동으로 조정해야 했는데, 방향각이 세단이나 SUV와 조금 다르게 되어 있어서 적응하는데 시간이 필요했다. 창문도 수동으로 열고 닫게 되어 있었고, 문 잠금장치도 키를 꽂아서 열고 잠그게 되어 있었다. 계기판도 완전 아날로그 방식. 특히 기름 계기판은 잔여마일을 알려주지않아서 화살이 마지막 눈금을 가리킬때 부리나케 넣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에어컨 성능은 탁월했고, 의자 쿳션도 훌륭해서 그 긴 여행에도 허리가 아프지 않았다. 운전석이 높은 트럭 특성상 시야가 탁트여 운전하는 즐거움이 제법 괜찮았다.


돌아오는 길에 40여년전 서울로 가는 나에게 '청운의 꿈'을 품고 열심히 해라고 하시던 아버지가 문득 떠올랐다. 어려운 학습의 긴 과정을 잘 마치고 새로운 시작의 긴장과 흥분이 함께할 아이가 더 좋은 세상 만들기에 보탬이 되는 의사가 되어 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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