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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ohyun Hwang Nov 14. 2017

가을비 내리는 아침


가을비는 추적 추적이 제격이다. 한여름의 폭우처럼 퍼 붓는다면 잠기는 낙엽은 어쩔 것이며, 그나마 메달려 흔들리는 나뭇잎들은 또 어쩔 것인가. 이렇게 비가 내릴때 바람은 잠시 비껴주는 것이 예의다. 하늘에서 땅으로 아무런 생각없이 수직낙하는 비, 그것이 가을비다. 여름의 폭우는 우산이 없어도 제법 흥취가 있다. 시원한 청량감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을비는 그 무게가 달라서 우산이 있어야 제대로 즐길 수 있다.


대략 기온이 5도 정도면 금상첨화다. 이보다 추우면 손이 시렵고 몸은 움츠려 들어 가을비를 즐기기보다 추위에 쫓기는 신세가 되기 마련이고, 이보다 따뜻하면 빗물속으로 날려보내는 입김의 즐거움이 반감되는 까닭이다. 아무리 콜드브루를 즐기는 사람도 이럴 때는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찾을 수 밖에 없다. 해질녘이라면 물론 오뎅탕에 소주를 먼저 떠올릴테고.  


월요일 아침, 집을 나서는데 후두둑 비가 떨어지기 시작한다. 일방통행길을 역주행하는 낙엽청소차를 보고 양 손으로 X자를 그려주니 놀라는척 하면서 차를 돌린다. 운전하는 사람은 역주행을 알고 있었으리라. 가을 낙엽 청소는 시에서 하는 일이고 그 일을 맡아서 처리하는 청소 대행사는 우리 지역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일테니 어디가 일방통행이고 어디가 양방통행인지 모를리 없다. 인구 고작 몇만의 조그만 도시에서. 놀라는 척 차를 돌리는 그에게 엄지척 사인을 보낸다. 그도 웃고 나도 웃고.


마음 급한 출근길이지만 천천히 걷기로 한다. 가을비가 내리는 아침 아닌가. 게다가 나는 우산을 들고 있다. 종종걸음으로는 우산이 받아내는 빗소리를 즐길 수가 없다. 그러니 마음은 바빠도 애써 걸음을 늦추는 것이다. 윌비는 이웃집 개 이름이다. 좀 야위었다. 얼굴은 뾰족하니 턱이 앞으로 툭 튀어 나와서 약간 사납게 생겼다. 어깨와 앞발이 늘씬하게 뻗어 있어 등치보다는 키가 조금 커 보인다. 내가 출근할 때면 울타리 안쪽에 컹컹댄다. 반갑다는 인사이리라. 오늘 아침에는 짖는 대신 앞다리를 울타리위에다 올려놓고 나를 쳐다본다. 가을비가 오니 저도 어디론가 뛰어가고 싶은 것일까. 가을비는 사람만 심란하게 만드는 것이 아닌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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